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동면 22

[장동면] 돼지고기 뺏어먹는 도깨비

돼지고기 뺏어먹는 도깨비 ▶ 돼지고기를 얻어 집에 오는데, 늘 다니던 길이 이상하고 자기 집도 찾을 수 없었다. 돼지고기 때문에 도깨비가 장난한다고 생각하고 돼지고기를 버렸더니 그제야 길도 보이고 집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돼지고기를 버린 곳이 나중에 파랗게 변했다고 한다. 그 양반(우리 형님 언니)이 돼지고기를 가방에다 담고 온디, 거 선등이 집 하우스 있는디 삼거리 거기를 온디, 만날 길을 못 찾아서 못 오시겄드라네. 길이 없어져 부러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요리가믄 길인디, 왜 길이 없을까’ 그 양반이 영리해요. 공부는 안했어도. ‘아차, 내가 요것을 들어서 그런갑다’하고 돼지고기 그놈을 후딱 땡겨 부렀다 해. 어디다가 땡겨 불고 난께 지 집이 보이드란디. 그래갖고 오셨다고. 우리 형님 언니..

장동면 2017.10.19

[장동면] 내가 왜 산꼭대기에? 도깨비한테 홀렸구나!

내가 왜 산꼭대기에? 도깨비한테 홀렸구나! ▶ 구술자가 열대여섯 살이었을 때 올케와 조카와 함께 밤길을 가고 있었는데 한 참을 가다 보니 가운데서 걷던 구술자가 사라졌다고 한다. 동네사람들이 찾아 나섰는데 산꼭대기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구술자는 다른 상황은 다 기억나는데 산꼭대기에 올라간 기억은 없다며 도깨비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열여섯 살이나 먹어서 그런 것 같어. 오빠 집에를, 사촌오빠 집인디, 오빠 집에를 갔는디, 우리 오빠가 인자 지름길로 가신다고 가신 양반이 밤이 되도 안온께 우리 올케하고 조카하고 마중을 가신다고. 여기서 말하자믄은 시방 전꼴맹기로 그렇게 생긴디로 산길로 가. 그란디 나도 따라갈란다 하고 따라갔어. 서이 간디 내가 가운데 갔단 말이여. 내가 무서움을 잘 타. 우리 조카딸이..

장동면 2017.10.19

[장동면] 사내아이를 인신공양한 선들보

사내아이를 인신공양한 선들보 ▶ 보성강이 흐르는 조양들에 ‘선들보’가 있는데, 보를 쌓으면 자꾸 터져 선들이라는 사내아이를 항아리에 넣어 보를 쌓았다. 그 이후로는 보가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몇 십 년 전에 보가 터져 가서 보니 선들이를 넣었던 항아리가 두껑이 덮인채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여그 저 관오1구마을이 있는디, 보 있어라. 거기 올라가믄. 그란디 옛날에 보가 물 막으믄 터진디, 인자 언제는 거그를 막을라고 사람들이 있는디, 인자 도사 같은 사람들이 오더니 그라더라 해. “여그를 조금 있으믄 뭔 여자가 애기를 데꼬 올꺼인게 머시매를 데꼬 올꺼인게, 오믄 그 애기를 잡아넣어라. 그래야 보가 안 터진다.” 조금 있으니까 여자가 애기를 데꼬 내려오드라 해. 그라더니 무담시 남자 있는디 갈라믄..

장동면 2017.10.19

[장동면] 굴바위, 칼바위, 벼락바위, 정바위…

굴바위, 칼바위, 벼락바위, 정바위… ▶ 마을 뒤 상봉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굴이 뚫려 있어 굴바위라고 부르는데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이후 바위들이 굴러 내려와 칼바위가 되고, 벼락바위가 되고, 정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굴바위란 바위가 있어. 산 상봉에가 몇 천 톤씩 되는 바위가 여러 덩어리가 모여 있었어. 그 바위를 보고 뭐라고 칭했냐 하면, 마을에서 굴바위라 칭을 했어. 거기서 호랭이도 살고 그랬다고 그래. 근디 언제 궁굴러 내려 왔는디 모른디 궁굴러 내려와 군데군데 멈춰 있는디, 칼바위가 있기도 하고 벼락바위가 있기도 하고 정바위가 있기도 한다고. 벼락바위는 벼락 맞아 쪽 쪼개져 있고. 정바위는 왜 정바위가 되었냐하면, 정씨 문중에서 보검출갑 잘 들라고. 숯돌바위도 있는데 정씨 문중에서 보검출..

장동면 2017.10.19

[장동면] 장항마을 돌화살촉과 돌칼

장항마을 돌화살촉과 돌칼 ▶ 과거 장항마을 야산에 돌로 만든 화살촉과 칼이 흔히 발견되곤 했다. 어린아이들이 그 같은 유물로 놀이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관계기관에서 조사를 실시하거나 수거한 적이 없으나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 (돌로 된 칼이랑 화살촉이 산에서 발견 되었다고요? ) 어려서 나무 하로 다니면서 주워 가지고 뭐 요런 것이 있다고 어쩌 가지고 활촉이라고 하고 칼이라고 그라고 그러기만 했제. 어른들에게 물어보지는 안했고여. - (돌로 만든 것이었어요?) 네 돌로 된거요. - (어떻게 생겼어요?) 화살촉은 우에가 삼각형 모양으로 생겼고 칼은 지금 칼 식으로 돌로 생겼는데 자루는 없고 자리 찡긴 데만 요만큼이나 불거져 가지고 요런 식으로 있더라구여. - (그거 가지고 뭐하셨어요) 그거 ..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바위등 호랑이와 산신제

바위등 호랑이와 산신제 ▶ 마을 뒷산에 작은 바위가 있는데 바위 등에 호랑이가 자연적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구술자의 양할머니 되신 분부터 그 바위가 영험하다 하여 그곳에 산신제를 지내오고 있다. 할머니가 산제를 지냈어요. 그래 갖고 인자 생사를 못해갖고 산제를 지냈는디. 자손을 못 낳고 앞으로 뭐시대 해갖고 점을 했어. 그 양반이 그래갖고 산신을 모셔라 갖고. 호랭이가 그래 졌다고 합디다. 독에가 자연적으로. 그래갖고 영금이있다며 소홀히 말고 그라 더라구여. 할머니가. - (할머니가 무기가 있었어요?) 그라지요. 염기가 있었지. 마을 어디로 가시면 많이 맞힌다 하고 어짜고 그랬던 갑디다. - (할머니가 자손이 없었다면서요?) 없어. - (그럼 어르신은 직계는 아니세요?) 그랑께 말하자면 우리 할아버지..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비가 오면 울부짖는 선들보

비가 오면 울부짖는 선들보 ▶ 보성천이 흐르는 조양마을에 돌로 쌓은 큰 보가 있었는데 큰 비가 내리면 자주 무너져 내려 인근 주민들이 선들이라는 아이를 제물로 삼아 보를 쌓을 때 함께 묻었다. 이후 보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큰 비가 와 물이 넘치면 보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났다. 주민들은 제물로 바친 선들이가 우는 것이라 생각해 이 보를 ‘선들보’라 부른다. - (보가 있는데 얽힌 사연이 많다고요?) 그 하천이 보성천 인데요. 보성에서 웅치에서 제암산 쪽으로 내려오는 물인데 큰 하천이었어요. 어려서는 거기서 여름철에 목욕도 하고 고기도 잡고 매운탕도 끓어 먹기도 했어요. 거기 어르신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요 보가 ‘선들보’다”고 해요. 큰 보였어요. - (그 보가 어디에 있어요?) 여그 가면은 조양마을이 있어..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자손이 번성하고 부유했던 우봉마을

자손이 번성하고 부유했던 우봉마을 ▶ 우봉마을 설촌 설화로,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길에서 잠이 들었는데 어미돼지가 우봉 아래 새끼를 낳아 키우는 꿈을 꾸고 그곳에 집을 지었다. 처음엔 가난했는데 손이 번창하고 부가 축척되어 우봉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어르신들한테 전해들은 그런 이야기거든요. 그전에 우리 마을의 안창주씨라고 저희보다 훨씬 더 어르신이셨는데 지금은 진작 돌아가시고 안계십니다만. 그분이 식견이 높으시고 그래서 제가 그 분을 가까이 많이 모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저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또 좋은 말씀도 해 주시고 그래서 거기서 그 양반한테 듣는 이야긴디. 우리 마을이 약 오백년 전에, 거 어느 분이었던가는 모르겄습니다만은, 저쪽에 가믄 높은 봉우리가 하나 있어요. 매봉이라고 매가 날아와서 ..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술잔 모양의 배산마을

술잔 모양의 배산마을 ▶ 잔 [배] 자를 써서 마을이름이 배산인데, 그래서인지 배산마을에는 술장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현재는 술장사 하는 사람이 없다. 배산이라는 말이 잔 [배]자를 써서 배산인데, 여기 지형이 술잔 모양같이 생겼다 해서 누가 옛날 양반이 지었는지 몰라. 그란디 술 [배]자 그것이 무슨 연관이 된가는 몰라도 여그가 술하고 관계되는 부락이 되았어. 우리 어렸을 때는 여기가 전부 술장사들. 구사거리 거기가 줄줄이 요쪽 저쪽이 전부 술장사였어. 그래서 장평사람들도 교통이 안좋아. 그래갖고 지금 같으면 광주로 가는 차가있었지만, 장평사람들이 광주 갈라면 부산이나 여수 갈려면 장동으로 와야써. 해남이나 목포를 갈라도 장동으로 와갖고 차를 타고가. 교통이 장평보다 훨씬 좋았어. 그러기 때문에 여기가..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산동마을 7개 절터와 신비로운 거대 석축

산동마을 7개 절터와 신비로운 거대 석축 ▶ 산동마을은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고터인데 마을 주변으로 7군데에 절터가 남아 있다. 7군데 모두 집채만 한 돌로 석축을 한 흔적이 있는데 마을주민들은 이를 신비롭게 여긴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석축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7개의 절과 거대석축물에 대한 내용은 구전되지 않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이조 때로 알고 있는디, 절이 일곱 군데가 있어요. 그 절터가 농짝만한 돌로 싼 터가 있어요. 일곱 군 데 다가. 지금을 다 철거 되야부렀지만. 그런데 지금 암자를 지어놓고 지주 한 분이 살고 있거든요. 그분이 절을 지을라고 시주를 할라고 지금 애를 많이 쓰고 있거든요. 잘 된란지 모르것습니다. - (절터가 한 군데 모여 있어요?) 아니, 군데군데 따로..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며느리바위가 던진 수건… 만수재 어르신의 태몽

며느리바위가 던진 수건… 만수재 어르신의 태몽 ▶ 조선시대 만수재란 어르신이 있었는데, 억불산 며느리바위가 수건을 벗어 던지고 용이 승천하려다 끝내 못한 태몽을 꾸고 태어났다. 만수재 어르신은 학식이 뛰어 났으나 끝내 벼슬길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8대 조상이 이름이 민자 기(이민기)로 호는 만수재여. 장흥 관산에서 태어났는데. 그 양반 어머니 꿈에 억불산에 가믄 며느리바위가 있어. 그 며느리가 수건을 벗어서 던지더라요. 수건이 그 할머니집 마당에 떨어졌다. 태몽인디 그래서 그 꿈을 꾸고 또 용이 나타나더니 하늘로 승천하려다가 못하고 또 승천하려다가 못하고 그랬어요. 꿈을 꾸고 만수재 할아버지가 태어났는데 그 양반이 진사는 합격을 하고 더 이상은 등용은 못하시고 시골에서 선생으로 일생을 마쳤다. 그 ..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만년대기 명당터에 유일한 흠 동매산

만년대기 명당터에 유일한 흠 동매산 ▶ 고산 윤선도 선생이 만년마을을 지나다 만년을 살 명당터인데 단 한 가지 흠이 있다고 했다고 한다. 비단전대에 똥이 묻은 꼴이라고 했다는데 주민들은 그 흠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데 한 부인이 아이를 업고 말궁굴재를 건너다 동매산이 걸어 오는 것을 보고 산이 온통 더럽다고 하니 동매산이 멈춰섰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비단전대에 똥이 동매산이라고 여기고 똥매산이라 부른다. 1600년 전에 고산 윤선도 선생이 벼슬길도 버리고 자기가 일생을 살터를 찾아 다녔는데, 우리 마을을 만년(일만 [만] 해 [년])마을 지나며 몰궁굴재(말궁굴재)를 지나면서 명당터라고 하면서도 한 가지 서운 한 것이 있지만 말은 못하고 해남으로 떠나셨다고 한다. 만년 수만 년을 살 수 있는 좋은 터다...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삯일로 외아들 키운 열녀 어머니

삯일로 외아들 키운 열녀 어머니 ▶ 구술자의 어머니가 34세에 혼자 된 후 어려운 형편에도 평생 재가를 하지 않고 삭일을 하며 외아들을 키워냈다. 구술자인 아들이 이를 애처롭게 생각해 올해 마을입구에 열녀비를 세웠다. 어머니가 18세에 결혼을 했는데 어버지는 16세였어. 아버지가 나를 19세에 낳았어. 당시 어머니 나이가 21세였고. 결혼은 빨리 했지만 임신이 안됐던 모양이여. 살림이 곤란하고 별로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아버님이 일본 징병되었어. 할 수 없이 끌려가서 해방 이후에 나왔어. 나와서 보니 먹고 살길이 막막해. 그래서 나오셔서 목공을 하신다고 각 처로 돌아다녀. 돈 번다고 남처럼. 그러시다 몇 년 객지로 돌아다니시다 6·25가 터졌어. 당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셔부렀어. 어머니는 홀로 아들 하나를..

장동면 2017.10.18

[장동면] 두룡마을 용소와 고려 신승겸 집사성에 관한 전설

두룡마을 용소와 고려 신승겸 집사성에 관한 전설 ▶ 두룡마을에는 용소가 있는데, 용이 물가 백일홍나무를 오르내리며 놀다가 용머리에 가서 승천했다고 한다. 부녀자들이 용소와 관련된 태몽을 꾸면 태어난 아이가 큰 벼슬을 한다고 전하는데, 고려 태조 때 신숭겸도 용소와 관련된 태몽을 꾸고 집사성이 되었다고 한다. 이명흠 전 군수도 용소 근처에 살았다고 한다. 저는 평산 신씨로 13대를 두룡마을에서 터를 닦고 사는데, 그때 당시 어른들 말씀이 인자 고려 태조 때 924년에 신라 때에 집사성이라는, 지금으로부터 도지사, 집사성이라는 으뜸 벼슬을 하셨고, 24대 그분이 신자 민 어르신이 490년 전에 쭉 다녀보니까 두룡마을이란 민가가 사람살기에 좋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거기에 터를 잡은 것이 용두마을이라고 했어. 그..

장동면 2017.10.10

[장동면] 아흔아홉골 도깨비 소와 굴

아흔아홉골 도깨비 소와 굴 ▶ 두룡마을에는 도깨비소와 굴이 있는데, 도깨비들이 자기들 마을에서 놀다가 소와 이어진 도깨비굴을 통해 내려와 소에서 목욕을 하고 놀았다고 한다. 도깨비 굴은 현재 메워진 상태고 소는 여전히 깊고 맑다. 옛날에 인자 장동면에서도 가서 보시믄 우리 마을이 자연 그대로가 많아요. 소도 있고 벽도 있고. 산이 많고. 깊은 산이 있다 보니까 아흔아홉골이라 하거든요. 그 산을. 거기는 올라가다 보믄 마을 우측으로 도채비(도깨비)소와 굴이 있는데, 지금은 도깨비불을 볼일이 없거든요. 우리 어렸을 땐 도깨비불이 많았어요. 도깨비불이 있으믄 무서워하고 그러거든요. 밤에는 가질 못해요. 도깨비불이 빤닥빤닥하게 그러니까 도깨비가 살기 좋게 생겼다고. 기차굴처럼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고 두 개가 ..

장동면 2017.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