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흥읍 77

[장흥읍] 장흥에 온 미군정관 조지와 통역을 맡은 문윤식

장흥에 온 미군정관 조지와 통역을 맡은 문윤식 ▶ 해방 후 미군정시기 장흥에 군정장관 조지 소령이 왔는데 통역할 사람으로 유치면 문윤식이 있었다. 하지만 조지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어 농담(욕)을 했는데 구경꾼들이 웃자 조지도 문윤식 등을 두들기며 즐거워했다. 현 예양리에가 군정장관이 있었어. 군정장관 이름이 조지 소령이대야, 조지란 사람이었써. 일본서 미국놈들. 그라고 부대는 군기는 서초등학교 나무 밑에다 너 놓고 하든마. 내가 가 봐서 알아. 그래서 그 조지 이름을, 왜 내가 조지란 사람을 아냐면, 장흥에 통역할 사람이 없었어, 군정책이 군정관이 왔는디 조지가 왔는디. 그래서 조지란 놈이 어찌구 하믄, 내가 영어를 안 가, 굿이나 보자하고 가 봤서. 그런께는 문윤식 이란 사람이 있었어. 신풍 사는..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도깨비는 효자를 알아봤다

도깨비는 효자를 알아봤다 ▶ 박림소에는 큰 소바위가 있다. 사람들은 소바위 위에 음식을 차리고 천지신명에게 복을 빌었다. 하루는 아랫마을 사는 효성 지극한 외다리가 부모에게 가져다 드리려고 음식을 가져가려 했다. 그때 나타난 도깨비는 외다리의 효성을 귀히 여겨 효자의 집까지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 기양리 북쪽 박림쏘 들머리에 10m 되는 큰 바위가 물가에 있다. 소바위 라고 한다. 그곳에 초하루, 보름에 귀성으로 음식 차리고 공들이면 자식을 얻는다고 밤에 촛불 키고 떡, 밤 과일 차리고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 [지금도] 아랫마을의 발이 하나인 외다리가 효성이 지극하여 앉아서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품 팔아서 늙은 부모에게 효성을 다 하였다. 어쩌다 밤에 나갔다가 소바위 위에 음식 차려있는 것을 보고 거두..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월낙평(月落坪) 달이 떨어진 자리 장흥초등학교 둥근 바위

월낙평(月落坪) 달이 떨어진 자리 장흥초등학교 둥근 바위 ▶ 사자산에서 숨어서 내려오던 낙맥이 장흥초등학교 뒤편에서 둥근 바위로 머리를 들고 있다. 그래서 이를 달이 떨어진 자리라고, 월낙평이라 한다. 월낙평 터는 지금 장흥초등학교 자립니다. 거그는 사자산에서 내려오는 낙맥이 숨어서 밑으로 기어서 내로다가 거그 장흥초등학교 뒤편에서 머리를 들었어요. 그 바위가 지금 직경 삼십 미터 바위가 들 우그로 나와 있습니다. 월낙평이라고 합니다, 거그를 달이 떨어진 자리라고. 둥글게 우그로 나와 있어요. 그래서 여러 학생들이 잘 되기를 바라고, 그 후로 그 학교는 잘 되었더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장흥학교 뒤에 가며는 그 터를 학교부지로 너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가 달이 떨어진 자리라고 해서 월낙평의 전 자리가 ..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금성(錦城), 비단성을 쌓은 금산저수지

금성(錦城), 비단 성을 쌓은 금산저수지 ▶ 지금의 금산 1구는 예전에는 금성(錦城)이라 불렀는데, 그 곳에 저수지를 축조하여 인근 여러 마을의 농토가 가뭄 피해를 벗어났다. 그래서 금산저수지는 비단 성이다. 금성(錦城)을 지금은 금산이라고 그래, 금산이라고 메 [산]자를 써. 금산마을은 옛날에는 금성이라고 불렀어. 삼산, 향양, 월평의 생양과 해당, 상리, 원도 일대의 가뭄이 들며는 모 한포기 심지 못하여 메밀, 서숙으로 어려움을 때우는 한발의 첫 번째 피해 마을이었써. 지금은 금산저수지가 축조되어서. 거가 빤듯하니 안 막어 졌어. 꼭 성 가치로 쌓아났어. 동부 일대의 풍요로운 저수지가 되아 가고 풍요로운 농경지가 되어 글자 그대로 비단 성을 쌓은 것이라 해서, 금성 그대로가 되야분 거여. 옛날 말이 ..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금강천 도깨비보

금강천 도깨비보 ▶ 사안리와 영전리 사이 금강천에 보가 있는데 이 물로 농사짓는 강진 풍동사람들도 관심이 많았다. 그 보를 지키는 도깨비에게 보가 터지지 않도록 정월대보름이면 제사를 지냈다. 사안리에서 영전리로 건너는 곳에 있는 옛날 보다. 사란리에서 영전리로 가려면 금강천의 보뚝을 지나야 했었다. 지금의 남초등학교가 사란리에 있었을 때만 해도 영전리, 송산리 통학생의 주요 통학로이기도 했다. 정월보름에 보를 지키는 도깨비에게 제사를 잘 모셔야 보가 완전하다고 했었다. 소홀이하면 조그마한 비가 와도 허물어졌다고 했다. 보의 물은 군동면으로 흘러갔으니 군동면 풍동주민들 농사꾼도 관심을 가졌었다. 지금은 아래에 완고한 보를 축조 했으나 도깨비보의 전설과 그 흔적은 상존한다. 금강천 도깨비보 자료번호 / 06..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형국, 연화부수(蓮花浮水)

연꽃이 물 위에 떠있는 형국, 연화부수(蓮花浮水) ▶ 연못 위에 연꽃이 떠 있는 형국이라 그 언저리 낮은 곳에 집들을 짓고 살고 있다. 연화부수(蓮花浮水)는 연산마을 1구다. 마을의 주산이 연화봉이며 연못 앞에 연잎이 드리우게 되어있는 형국이다. 연꽃과 잎이 물에 잠겨 있으니 그 언저리에 모여 있는 작은 물고기 같다고 하였다. 그 연잎의 언저리에 집들을 지어 썼다. 위로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에 점점이 주택을 짓고 살고 있다. 연산 1구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0708_KJY_0015 제보자(구술자) / 김재열(남, 88세, 연산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순지마을 닭바위

순지마을 닭바위 ▶ 지금의 순지평 석대들(지금의 장흥남초등학교)에는 달걀 같이 생긴 둥그런 큰 바위가 있는데 아이를 갖길 원하는 아낙들은 이를 닭바위라 섬기며 소원을 빌었다. 남외리에서 강진으로 가는 순지평 석대들의 중앙에 큰 원형의 달걀 같은 바위를 닭바위라 하여, 아이들을 갖고자 하는 아낙네들은 그 바위에 주잔을 올리고 복을 빌고 어린이 가질 것을 바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곳에 어린이들이 모여 학교가 섰다. 지금의 남초등학교의 뒤뜰 달걀 같은 그 바위에 지금도 슬쩍 기복을 하는 아낙네들이 있다. 장흥남초등학교 닭바위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0708_KJY_0014 제보자(구술자) / 김재열(남, 88세, 연산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송아지를 메기가 물고 간 독실보(犢失洑)

송아지를 메기가 물고 간 독실보(犢失洑) ▶ 강둑에 매어둔 송아지를 메기가 물고 가 잃었다 해서 독실보라 한다. 순지마을 건너 송산 위의 절벽 밑의 깊은 쏘. 독실보 위의 쏘는 하두 깊은 곳으로 옛날부터 소문난 깊은 강이어서, 강둑에 매어놓은 송아지를 쏘 안에 서식한 메기가 나와 송아지를 물고 들어가 송아지를 잃었다 해서, 송아지 독(犢)자에 잃을 실(失)자를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0708_KJY_0013 제보자(구술자) / 김재열(남, 88세, 연산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들몰의 오리솟대

들몰의 오리솟대 ▶ 지금의 평장마을인 들몰은 탐진강가 낮은 들에 자리해서 홍수 피해가 많았다. 이를 피하려 정월대보름이면 오리솟대를 세웠다. 지금의 평장마을입니다. 평장마을이 옛날에는 들몰이라고 했었습니다. 들몰은 낮은 들에 자리한 마을이라 항시 탐진강의 큰물에 잠길 것이니, 오리는 물에 익숙하여 물의 피해를 막아 주는 방법으로 오리솟대를 정월 대보름이면 높이 세웠습니다. 제방둑이 설비되면서 그 습속은 사라졌으나 조상의 숨결 속에 사는 마을주민들은 다시 솟대를 세웠으면 합니다. 평장마을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0708_KJY_0011 제보자(구술자) / 김재열(남, 88세, 연산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동동리 가옥들은 동향집을 꺼렸다

동동리 가옥들은 동향집을 꺼렸다 ▶ 동동리 가옥들은 동향으로 보면 사자산 위력과 정면으로 맞서야 해서 남향으로 지었다. 동동리에 있는 집들은 장원봉의 낙맥이 사자산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으니 사자산의 위력을 당해낼 수가 없다 해서 동헌, 장흥군청과 주민들의 주택까지도 배산 하고 지형의 준령을 저버리고 남향으로 안을 돌렸다. 그리하여 동동리의 주택은 동향을 꺼리는 전설이 있다. 동동리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0708_KJY_0010 제보자(구술자) / 김재열(남, 88세, 연산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나는 제비 형국의 비연(飛燕)마을

나는 제비 형국의 비연(飛燕)마을 ▶ 마을 형국이 나는 제비라 모든 성 씨들이 3, 4대 거주하다 다 떠났다. 마을이 형국이 날으는 제비 같다고 해서 연산리 2구. 날으는 제비 같아 봄에 와 여름을 번성하고 지내다 가을이면 따뜻한 곳으로 날아간다, 하여서 마을에 한두 성바지 성씨를 제외하고는 3, 4대를 거주하다 마을에서 이사해 가부렀다고 한다. 오래 살 먼 안 돼 망해부러 안 되아요. 그래서 거그 제일 오래 살던 거이, 노 씨가 살다 가부렀고 서 씨가 들어와 다 가고 한 집 남어 있고 이 씨가 지금 한 집 남어 있고 길 씨들이 와서 칠팔 집이 잘 살고 있다가 거그도 가 불고 한 집만 남어 있어요. 비연마을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0708_KJY_0007 제보자(구술자) / 김재열(남..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잣두, 어떤 풍수해도 넘보지 못한 비옥한 대지

잣두, 어떤 풍수해도 넘보지 못한 비옥한 대지 ▶ 잣두는 행원 앞 넓은 들인데 어떤 풍수해도 비껴간 명당이다. 잣두는 행원 앞의 넓은 들이다. 잣두란 한자문명으로 한자명이 아니고 우리의 옛말이다. 둘레가 물에 잠겨도 우뚝 놓은 곳으로 재난을 면하는 대지이다. 옛날 지금의 제방이 없을 때 대풍수해에도 잣두의 농잠실습학교, 장흥중학교의 창설지였던 그곳만은 무풍지도였다고 한다. 잣두를 배에 비하면 돛대라고, 학교는 명당이라고, 명풍들이 농잠실습학교 터를 이곳에 자리했었다고 한다. 잣두마을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0708_KJY_0006 제보자(구술자) / 김재열(남, 88세, 연산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사인바위 아래 쌀 나온 구멍과 수도승

사인바위 아래 쌀 나온 구멍과 수도승 ▶ 송암마을 사인암 아래 암자에서 수도승이 살았는데 거기에는 혼자 먹을 양의 쌀 나오는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젊은 승이 와서 막대로 그 구멍을 쑤시는 바람에 쌀은 고사하고 맹물만 나왔다. 지금의 송암마을 사인정 옆의 큰 바위 아래 쌀 나온 구멍이 있었는데 사인정 뒤 옆에 큰 바위 밑에 수도승의 암자가 있었다. 바위 밑 암자 뒤에 쌀 나온 구멍이 있어 혼자 먹을 쌀이 아침 기도 들이면 나왔었다. 수도승의 법도를 배우려고 젊은 승려 한 사람이 간청하여 두 사람의 식구이나 한 사람 먹을 쌀을 두 사람이 나누어 먹었었다. 수도승이 나갔을 때 젊은 승은 두 사람이 먹을 쌀이 나오게 하려고 구멍을 막대로 쑤셨다. 이게 왼 말인가, 야단이 났다. 두 사람 몫은 고사하고 한 사람..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북문재 당산할머니와 인심 좋은 외딴집

북문재 당산할머니와 인심 좋은 외딴집 ▶ 장흥성 북문 지나 연산리 쪽에 당산이 있는데 유치, 부산면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다녔다. 그 곳에는 길손의 동무가 되어주는 인심 좋은 사람들이 사는 외딴 집이 있었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당산할머니에게 기복을 하며 푸짐한 음식과 노자도 놓고 갔다. 장흥성의 북문 바로 넘은 연살리 쪽에 당산이 있었다. 유치, 부산의 주민들은 장흥성, 장흥시장에 오고 가려면 북문을 넘어야했다. 부산에 다리가 없으니 부산, 유치 주민들이 연살리를 통하여 장흥 왕래를 했었다. 성문 바로 너메 당산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은 돌을 하나씩 올려놓고 복을 빌었다. 당산은 크고 그 아래에는 인심 좋은 분들이 사는 외딴집이 한 채 있었다. 북문재 넘는 사람들에게 낮에는 말동무가 되어주고, 밤에는 사립..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박림소(朴林沼)와 억불산 며느리바위

박림소(朴林沼)와 억불산 며느리바위 ▶ 연산리 앞 박림소는 박 씨와 임 씨가 사는 마을이었다. 어느 날 불심 깊은 며느리가 공양을 하자 이곳에 큰물이 져 깊은 소가 될 것을 안 탁발승이 뒤돌아 보지 말고 자신을 따라오라 했다. 하지만 못내 뒤돌아 본 며느리는 아기를 업은 채 억불산 며느리바위가 되었다. 연산리 앞에 있는 탐진강이 구비치는 산 밑을 따라 깊은 소가 있다. 1.5키로의 긴 냇의 소에는 원래 박 씨와 임 씨가 사는 큰 마을이 있었다. 어느 날 탁발승이 마을에 찾아와 탁발을 청하여 집집마다 찾아 다녔다. 집집마다 인색하게 거절을 하였다. 지내기 어려운 집을 마지막에 들리니 저녁밥을 지으러 쌀을 내오던 며누리가, 인색하게 거절한 시어머니 모르게 자기 먹을 만큼의 탁발을, 탁발승에게 공양을 하며 안..

장흥읍 201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