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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림의향 특집

[문림편] 회진팔경(會鎭八景)

장흥문화원 2017. 9. 8. 09:16

 

 

 

회진팔경(會鎭八景)
▶ 2016년 현재 50대 중반인 구술자가 30살 무렵, 부락의 한 어르신으로부터 우연히 건네받은 「회진팔경」. 이 글은 예전에 객사터에 있던 서당의 글짓기 대회에서 장원급제한 글이라고 전해진다. 지금은 이 「회진팔경」에서 언급한 풍경이 많이 사라져버렸으나 회진의 옛적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저는 경주 이씨 백사공파 12대손 이제석인데요. 우리 보명으로는 그냥 제우라고 해요. 한자 복자 할아버님의 5대손인 경자 효자 할아버님이 아마 회진으로 오셔가지고 우리 경주 이씨 백사공파의 그 후손들이 이렇게 다 자리를 잡아가지고 지금까지 쭉 해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거기에 인자 경자 효자 할아버님으로부터 7대 후손인, 저희 아버님은 매자 용자인데요. 우리 족보상은 종자 돌림이고, 저는 우자 돌림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제자 항렬로 희자 아래가 제자인데 제용씨… 그렇게 보고 있는데 그 항렬은 아니고, 그래서 우자 돌림이라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아마 회진은 선대조, 7대조 할아버님이 여기 오셔서 터를 잡아가지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그 후손입니다. 저가 인자 지금까지 쭉 살다가 사실은 학교 다닐 때 고등학교 3학년을 광주에서 대동고를 다녔었고, 서울에서 경기대학교를 다니다가 군대를 갔다가 복학을 못하고, 그때 뭐 농민운동인가 거기에 빠져가지고 여기 내려왔어요. 그래가지고 우리 인제 의환이 형님을 알게 되고, 그래서….
- (위의환씨?)
네! 위의환씨. 그래 내가 농민운동을 하게 됐고, 그래서 여기에서 살고 있었는데, 85년도 정도로 기억을 하는데 회진에 그때 당시에 부락의 유지이셨던 지금은 고인이 되셨습니다만, 김문호씨라는 어르신께서 저를 집으로 오라고 하시대요. 아 그래서 나는 뭐 전혀 그 어르신에 대해서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유지시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그 어르신께서 집으로 저를 오시라고 그러시더만 내가 어떤 그… ‘나도 그 어르신께 중요한 것을 한나 받았는데, 이 자료를 자네한테 넘겨줘야 쓰겠네’ 그러면서 넘겨주신 내용이 회진팔경이라는 것이었어요.
- (액자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액자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 당시 내가 85년도 중반, 내가 아마 30살 전후였던 것 같은데 그때 와서 내주시면서 설명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내용을 쭉 보니까 한문으로 되어 있었는데, 회진팔경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냐면은, [손으로 터를 가리키며] 옛날에 여기가 객사터입니다만 객사터에 서당이라고 있었다고 해요, 서당이. 서당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글짓기 대회를 했는데, 장원급제한 글이라고 해요. 회진팔경이 장원급제한 내용인데, 그것을 문호씨 어르신이 선대로부터 어르신으로부터 이렇게 전수 받아가지고 그것을 저한테 넘겨주신 내용이에요. 그 내용을 지금 와서 보니까 지금 그 회진팔경의 그 경치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회진팔경은 상상 속으로 그걸 그려야만 해요. 옛날에….
- (지명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지명은 물론 있는데 그 지명에 대한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이렇게 유추해가지고 우리가 추리로 글을 머릿속으로 그려야 동양화의 한 폭인 그런 8폭이 되는 그런 회진팔경이어요. 그것을 보면 제일 첫째, 선자청풍(扇子淸風)이라고 있어요. [손으로 객사 터에서 아래 선자 방향을 가리키며] 여기 객사 터에서 저기 선자를 보면은, 선자가 거기에 있는데, 선자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 아! 그것이 선자청풍! 회진에서 보면은 마을 이름인데, 선자라는 지명이 있는데 거기에서 요렇게 불어오는 맑은 바람. 그리고 노력도가 있죠. 노력에가 섬이 있는데 노도청송(老島靑松)! 소나무가 그렇게 우거져 있었대요. 그렇게 많이 우거진 것을 노도청송 두 번째! 그 다음이 [덕도 쪽을 가리키며] 저 덕도라는 섬이 보이죠? 여기가 덕도명월(德島明月)인데, 밤에 달이 떠오르는 이 모습이 여기서 딱 보이면 그렇게 멋있었답니다. 덕도명월! 그 다음이 항포어화(港浦漁化). 회진항 포구에서 밤에 고기 잡는 불빛이어요. 여기는 옛날에 지금은 간척이 되어서 막어져 있습니다만은 여기가 전부다 갯벌이고 여기가 전부 다 원이 없이 전부다 바다였어요. 그러면 여기에서 밤에 고기 잡는 불빛이 그렇게 멋있답니다. 그것이 항포어화.
- (주로 거기선 뭔 물고기를 많이 잡았나요?)
[청중을 보면서] 그때 당시에는 무슨 물고기가 많이 나왔것소?
- [그때는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게 문저리였고 게는 인자 물이 났을 때 인자….]
장어도 민물장어도 많지 않았어요?
- [장어도 많았고, 거시기 금봉장어, 금봉장어도 잡히고….]
- (그게 하나였고, 회진어항?)
항포어화! 이 회진항 포구에서 고기 잡는 불빛! 밤에. 고기 잡을 어에 불 화(火)자! 항포어화! 그렇게 되고, 그 다음에 인자 회전범포(回轉帆布)라고 그렇게 돼 있습디다만은, 옛날에 배는 전부 돛을 달고 다녔잖아요? [앞쪽, 바다 쪽을 가리키며] 물이 이렇게 딱 나 있는데, 여기서 보면 에스자 코스로 쫙 굽어서 들어오게 돼있어요. 이 돛을 달고 회진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그렇게 멋있었답니다. 지금은 그 풍경을 볼 수가 없죠. 우리가 머릿속에 상상해서 볼 수밖에 없는 것이고… 회전범포! 그 다음에 인자 대곡적성(大谷笛聲)이라고 있어요, 대곡적성. 큰 고래! 저기 가보면 큰 고래라는 지명이 있는데. 피리 부는 소리! 대곡적성. 그렇게 해서, 여기에 있으면 그 피리 부는 소리가 여기에 들려오면 그 소리가 그렇게 좋았답니다. 좋았었고…. 그 다음에 또 하나가 제가 엊그제 천관산을 올라갔다왔는데 그 스님하고 이의유의 이야기하다 보니까 종이 탑산 사절에 있었는데 그 종을 해남 대흥사로 옮겼다고 하더라고요. 아! 회진팔경에 천관모종(天冠暮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천관산에서 저녁 무렵의 종소리! 여기에서 이렇게 있으면 천관산 [뒤쪽, 천관산 쪽을 가리키며] 절이 저기 있잖아요? 저기 탑산사 절이 안 보입니다만은 거기에서 절에서 종치는 소리가 여기에 있으면은 들렸답니다. 그래서 그것이 천관모종이고…. 마지막으로 우산낙조(牛山落照)! 여기가 [바닷가 쪽을 가리키며] 다 간척이 되어가지고 이렇게 돼 있는데 이렇게 저녁노을에 해가 지는, 그 저녁노을이 우산낙조예요. 우산으로 해가 이렇게 지는 그 풍경…
- (낙조는 보통 서쪽….)
그러니까 저기에서 해가 저쪽으로 지면은 저기가 저녁노을이, 여기가 바다였을 거 아니에요? 그럼 노을이 저쪽에서, 저쪽 큰 산 있는 저쪽으로 전부 다 인자 그렇게 모이는데…. 이것이 인자 회진팔경인데 이 부분을, 이와 같이 자기도 상당히 귀중하니 선대 어르신으로부터 물려받으신 것인데 이것을 지금 누구도 모르고 있는데 그럼 누구한테 줘야 할까 그렇게 고심고심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다가 나를 불러서 이렇게 회진팔경으로 전해준 것이에요. 그래서 나는 그것이 너무도 기쁘고 너무도 기분이 좋아가지고 그 부분을 공부하느니라고 공부 좀 했어요.[웃음]
- (그러면 거기에가 팔경이 있으면은 그 설명글 같은 것 없었어요?)
그런 건 없었어요. 단지 그 어르신이 그 글자만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을 저한테 주신 걸 갖다가 저는 그놈을 가지고 이것을 이대로 놔두면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고 해서 그 글귀를 갖고 관산에 계신 덕운 이황양 선생님한테 가 가지고… 덕자 운자 호를 쓰시는 이황양 선생이 관산에 인자 계셔요. 그분한테 이게 요러 요렇게 돼서 된 내용을 그냥 보관하기가 그러니까 글씨를 이렇게 써 주십시오, 서예로. 그래가지고 그놈 두 점을 써 와가지고 한 점은 저희 집에 아직도 걸려 있고 한 점은 그때 당시 회진 노인당에 기증을 했어요. 그래서 회진팔경이 제 마음속에 어디를 가더라도 아, 회진은… 지금은 그 어떤 풍경들이 이렇게 경치가 남아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마음의 상상 속으로 한 1700~800년대에 회진의 풍경을 그려본 동양화의 8폭의 그림이지 않느냐…. 그래서 내가 이 부분을 그냥 이렇게 놔둬선 안 되겠다고 그래가지고 이번에 사실은 화가를 한 분 만나 가지고… ‘현봉’이라는 화가 아실란가? 단청에 대해 전문가이시고, 인자 그분을 만나가지고….
- (현봉 선생님 부인이….)
그렇죠, 또. 그….
- (그러면 그림하고 그림….)
그래가지고 이 내용을 줄 테니까 그림으로 한 번 그려주시죠, 부탁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좀 시간을 달라, 아, 그래요, 그럼 천천히… 그 부분을 난 이렇게 액자에 꼭 병풍으로 이렇게 그림을 그려가지고 딱 갖고 싶다고 해서… 해준다고 쾌히 승낙을 하셨습니다.
- (꼭 하셔야 되고… 그 다음에 회진에 학교가 어디 어디 남아 있죠?)
원래 제일, 인자 여기에 학교가 있게 된 것은….
- (잠깐만요? 그 얘기는 이따가… 요 얘기는 간단한 건데요. 선생님께서 그것을 해가지고 애들한테 강의를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회진팔경에 대해서. 아니면 이게 끊겨 버리니까.)
그런 기회를, 제 나름대로 그 자료를 이렇게 가지고 있으면서 언젠가는 회진팔경에 대해서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 그리고 객사 터에 대해 이 부분, 유래에 대해서도 제 나름대로 자료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객사 터 이야기도 한번 제가 해드릴까 해요.

 

 

 

 

 

 

 

자료번호 / 06_12_10_FOT_20160719_YJS_0001
제보자(구술자) / 이제석(남, 56세, 회진면 동구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