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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관산읍

[관산읍] 남창이었던 죽곡마을

장흥문화원 2017. 9. 15. 17:26

 

 

 

남창이었던 죽곡마을
▶ 지금의 장흥 관산읍 죽교 2구 죽곡마을이 예전에 남창마을로 불리웠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관산읍 일대가 간척이 되어서 육지가 대부분이지만 예전 바닷물길이 읍내까지 들어왔을 때에는 지금의 죽곡마을은 바닷가 마을이었고, 거기에 창고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후에 그 이름(남창)이 좋지 않다고 하여 현재의 이름인 죽곡마을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남창마을을 죽곡마을이라고 이렇게 부르는데, 남창은 남쪽에 창고가 있는 마을인데, 마을에서 좀 듣기 싫어해요. 남창을. 해변에 창고 있는 마을을 이렇게 치부가 되니까 죽곡이라 중간에 이름을 지어서 지금은 죽곡마을로 부르고 있는데, 조선조 세조 때 1500년대 쯤 됐을 거예요. 세조 때 장흥 3창을 짓는데, 세곡을 받아서 보관하고, 또 보관한 세곡을 수송하기 위해서 바닷가에다 창을 지어요. 그런데, 이 남창, 지금 남창마을이 지금은 간척이 돼 갖고 지금 연륙된 육지지마는 그때는 바다가 어디까지 바다였냐면 관산 소재지 파출소 옆에 다리까지 배가 접안을 했어. 여기까지 바다예요. 바로. 그러니까 당연히 관산중학교 그 옆에 죽곡마을은 해변 산기슭이지. 해변마을이지. 그래서 해변마다 창을 짓게 돼. 그래서 남창인데, 이씨 성을 가진 분하고 박씨 성을 가진 지관이 있었어. 풍수학자가. 그래서 이승박승이라고 그라거든. 이승박승이라는 풍수학자가 구룡산에서부터 쭈욱 좋은 명지를 찾기 위해서 산맥을 타고 쭈욱 내려오다가, 차일봉 상봉에 이르렀어. 그라믄 차일이라는 것은 지금은 그런 것이 드물제마는 각 마을에 대소사가 있을 때는 텐트를 치고, 거기서 행사를 하는데, 그거이 채일이여, 채일. 그런데 그거는 사투리로 채일이고, 표준말로는 차일이여. 가릴 차(遮)자, 해를 가린다, 그래서 차일인데, 그 산이 차일봉이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남창을 가려부러 차일봉이 창을 가려. 그래서 그 차일봉 정상에 와서 이승박승의 풍수가들이 지관들이 쉬고 있는데, 남창마을에서 뭐 터를 닦고 사람들이 막 터를 닦니라고 난리거든. 저거는 뭣을 한다냐, 그러니까, 세곡을 거두어들여서 보관한 창고를 지금 지을려고 터를 닦는다, 이라고 말을 하거든 그러니까, 역시 남창이로구나, 그렁께 이미 창고 짓기 전에 이름이 남창이었어. 언제든지 창고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남창이로구나.

 

 

 

 

 

 

 

 

                                                         죽곡마을

 

 

 

 

 

 

 


자료번호 / 06_12_02_FOT_20160801_WCR_0011
제보자(구술자) / 위철량(남, 71세, 와룡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