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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관산읍

[관산읍] 선인무수 형국 정남진

장흥문화원 2017. 9. 15. 17:29

 

 

 

선인무수 형국 정남진
▶ 관산읍 사금마을에 최근 정남진이 설치됐는데, 지역에서 풍수와 전래이야기를 연구하며 지내온 구술자 견해로 그곳을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선인무수형국이다고 본다는 이야기다. 구전에 의하면 천관산 소산봉 밑에 선인무수 형국이 있는데, 그곳을 풍수가들이 찾으려고 했지만, 찾질 못했는데, 그 인근 지형의 형세들이 거문고, 장구, 북 등의 명칭들이 있기 때문에 그곳이라고 구술자가 말한 내용이다.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이라는 명당이 있어. 신선이 가무를 즐기는 형국이다, 하는 명당이 어디가 있냐 그라면, 소산봉이라는 산에가 있다고 그렇게 전해 내려와서 숱한 풍수학을 전공하는 분들이 다녀갔지만 명당을 찾지를 못해. 그런데 소산봉은 신선이 내려와서 거문고와 가야금을 튕기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가무를 즐기면서,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추는 소매 끝자락에 선인무수 형국이 있다, 그렇게 말들을 하는데, 신선이 내려와서 도포를 입고 춤을 추고 도포자락이 휘날리는 소매 끝자락이 어디냐, 그거를 찾기 위해서 지관들이 그렇게 돌아다녔어도 아직 선인무수 형국을 찾았다는 사람들이 없어. 소산봉에 그런 형국이 있다고 그러는데. 이 소산봉을 중심으로 해서 뚝박골이라고 있는데, 거기는 바위들이 많이 있어. 그런데 그거는 북바위라고 그라고. 북을 치는 바위고, 또 노랑바우라고 하는 바위가 있는데 거그는 장구라고 칭을 하고, 거문바우라고 하는 곳이 있는디 거그는 거문고로 그라고 칭을 하고, 또 동네 앞에 바다에 섬이 하나 있는데, 거그는 가슴앓이라고 우리들이 보통 말하는데, 거그는 가금도라고 하는데, 거그는 가야금이라고 이렇게 칭을 하고. 그래서 이 여러 곳이 어울려서 가무를 즐기는 선인무수 형국이 있는데, 아무도 지금까지 지관들이 그 형국을 찾은 사람이 없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내가 생각을 해보니 그 명당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고 내가 추측을 나름대로 내가 하는데, 정남진이 곧 명당이다, 정남진을 이제사 찾았다, 이 고장 사람들이 남 끝이라고 남 끝에, 남 끝에 했제만은 정남진이라는 좌표상의 그곳을 찾지를 못해서 이제 찾고 보니까 개발이 된다, 정남진 개발이 그것이 바로 명당 아니냐, 나름대로 이렇게 나는 정의를 합니다. 선인무수 형국이 명당자리가 정남진 그 좌표자리가 명당이다. 그래서 정남진 개발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이 듣기에 많은 사람들이 명당을 찾기 위해서 다녀갔어. 그런데 못 찾아, 명당을. 그런데 나는 지관도 아니고 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지금 생각 해본께 바로 정남진이 선인무수명당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린다고. 내가 왜 그 정의를 내리느냐. 광양을 갔는데, 백운산에서 정기를 받어서 광양읍이 조성이 돼. 그런데 왕희지 터가 있다. 바다에가 그도, 백운산의 맥이 바다에 머물러서 거그서 왕희지터가 있다, 이라고 풍수가들이 옛날에 얘기를 했단 말이여. 그런디 바다에 누가 묘를 써. 명당 있다고. 그런데 거가 지금은 매립이 돼 갖고 광양항이 만들어지고 광양제철이 들어서 갖고 바로 광양제철의 젤 창설하는 박태준이가 바로 제철왕이 됐잖아. 철광왕이 됐어. 그래서 거가 왕희지 터였다, 이렇게 말들을 하드라고. 내가 거그 광양을 갔는데, 내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있을 때 내가 거리 돌아보는데, 광양 위원이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 내가 무릎을 친 게 나름대로 선인무수 형국이 그것이로구나, 정남진이다. 이렇게 나름대로 내가 해석을 한 거여. 내가 지관이 됐어.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형국을 못 찾아, 일류 지관들이 쭈욱 다녀갔는데 못 찾아, 그란디 정남진이 탁 터진 거야. 그래서 광양제철 그것하고 딱 믹서를 한 거여. 아 거가 명당이다.

 

 

 

 

 

 

 

 

자료번호 / 06_12_02_FOT_20160808_WCR_0002
제보자(구술자) / 위철량(남, 71세, 와룡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