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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유치면

[유치면] 면소재지가 들어서면서 되살아난 원님고을 원등

장흥문화원 2017. 11. 7. 10:29

 

 

 

면소재지가 들어서면서 되살아난 원님고을 원등

▶ 원등이란 곳에 원님이 살았다고 구전되어 왔는데, 유치면 사무소를 이곳에 이전하면서 사라진 원등마을이 그 이름을 되찾았다.

 

 

그때가 인제 2000년이 좀 되기 전, 그때 자응 국회의원이 김옥두 의원일 겁니다. 군수님이 김재종 군수님 그라고 유치면장님이 문상배씨고. 그런 과정에서 댐이 되니까 유치면 소재지를, 아마 자응군이 생긴 이후로 면소재지를 옮긴 것은 그때가 처음 일이고 앞으로 그런 일은 드물지 않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면소재지를 옮기는 데는 우선 면민들이 합당한 장소를 정해야 되는데 그것이 인자 전쟁이 치열했어요. 당초 장흥 군수님이나 장흥군의회에서 생각하기는 암천에다가 면소재지를 옮길라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그려냐면 그쪽에가 상수원하고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근데 주민들 생각은 거긴 농경지도 없지 사람이 살라믄 그 식량을 해결할 수 있는 근간이 되야 하는데 그런 기반이 없어요. 그러고 인제 관동에다가 또 옮길라고 일부에서 했어요. 또 조양 상촌에다도 옮길라고 했어요. 또 원등에다 옮길라고 했고. 결국에 주민대표들이 서로 하니까 말씀만 분분하고 해서 결과적으로 면청사에서 주민대표협의를 해가지고 투표로 해서 이것이 선정이 되었는데, 2000년도 초반에 여기로 옮기기 시작했지요. 그때 면소재지를 옮기면서 이충원씨라고 관산 분인데 이충원 위원장이 광주 도청에 계시다가 면장님으로 부임을 하셨어요. 제가 그때 옮기기 전부터 번영회 책임을 맡고 번영회장 일을 하면서 옮겼는데, 이곳이 옛날에 지명이 ‘원등’이라고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웃 원등은 조양1구에 소속이되고 아래 원등은 신풍1구에 소속이 되었어요. 그런데 옛날 구전에 의하면 왜 원등이라 했냐면 여기에 원님이 살았다 구전이 전하고 있는데 사실인지 알 수는 없으나 원님이 살았기 때문에 원등이라고 했어요. 조양1구 앞에 가믄 옥채라는 데가 있어요. 여기는 원님집이 있었고 또 옥채에는 죄수를 가둔 감옥이 있었고. 그런 전설이 전해져 온 거이 사실입니다. 그라고 산 밑에 지금 현재 이 산이 국사봉 줄기로 해서 내려온 산인데 산이름을 무등산이라 그래요. 무등산이라는 것이 여자들이 춤을 추는 듯한 산이라고 해서 무등산이라고 해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란데 산기슭에 밭 같은 것이 있어가지고 옛날 농사를 짓기 위해서 서로 쟁기질을 하고 그러면 기왓장이 나오고 했단 말입니다. 사실 원님이 어느 시댄가는 살았지 않냐 주민들은 하고 있고 여러 가지 구전으로 원님터였다 얘기가 있었는데 우연스럽게 다시 면소재지가 되었어요. 면소재지가 되었는디 이 이름을 지을 때 인제 조양 1구에서는 조양1구에 포함시켜서 1구라 하자 주민들은 그렇게 말을 했고 신풍1구에서는 신풍1구 땅에 사무소가 있고 농협이 있고 유치파출소가 있고 농촌지도소가 있고 기관은 신풍1구 땅에 있으니 신풍1구 땅이라고 하자고 말이 많았습니다. 제가 책임을 맡다보니까 결단을 내리고 옛날부터 원님이 산 곳이라 해서 원등이라 하고 아랫 원등 웃 원등 합쳐서 원등이라 하자고 면장님께 건의를 했어요. 번영회에서 협의를 해서 원등으로 하는 것이 좋겄다 하고. 우리 면이 수몰이 되면서 많은 마을이 없어졌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을도 하나 만들고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 원등리가 좋겄다 그래갖고 오늘의 원등리가 형성이 되어가지고 현재 면 소재지가 되었습니다. 지금 면소재지 앞에 여그 땜 물이 많을 때는 물이 차고 적을 때는 물이 안찬디 그걸 옛날어른 들은 선창뜰이라고 했단 말이여. 배가 들랑말랑하는 선창뜰이라고 하고 옛날 어른들이 옥태가 아니라 옥터라고 한 것은 우연인지 설화인지 저로서도 감당을 못한디 우연의 일치로 현재의 면소재지가 다시 원등이 되었다. 이런 말씀을 제가 드려서 우리 후손들이 우리들이 죽은 뒤로는 어째서 원등이라고 했냐믄 그것은 알아야 되겄기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 (그 전까지는 원등에 대해서는 후보지로서 제시된 바가 없었어요?)
여가 수세가 좋아요. 현재 유치는 대부분 산이 국사봉에서 배고등이 가지산으로 해서 죽 장흥 쪽으로 흘러가고 좌청룡등은 국사봉청룔등이 흘러서 영암 월출산을 이어가고 그런데 중앙 쪽으로 흘러서 온 것이 현재 원등 소재지인데, 이것이 지금 몇 십리를 굽이쳐가지고 물이 조양3구 조양2구쪽 물하고 반월1구 반월2구쪽 물이 합쳐서 굽이쳐서 모여든디가 여깁니다. 그래서 여기가 풍수학적으로 좋기 때문에 옛날 원님터가 있었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이 뒤에는 무등산이고 동쪽에는 매봉이 있고 남쪽에는 동월이라고 해갖고 동쪽을 보고 있는 반달형이 있고 서쪽은 시루봉이라고 시루같이 생겼는데 현재 숲이 우거져서 시루같이 안 보이는데. 이렇게 해갖고 여기가 풍수지리학자들도 길지라고 전부다 말씀을 했다고 그래요.
- (그래서 지금 터를 옮긴 다음에 좋아졌습니까?)
유치면이 지금 잘 하고 있습니다.

 

 

 

 

 

 


자료번호 / 06_12_08_FOT_20160712_MPS_0002
제보자(구술자) / 문평섭(남, 77세, 신풍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