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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면

[유치면] 보림사 채공이 거지도사가 된 사연

장흥문화원 2017. 11. 7. 10:37

 

 

 

보림사 채공이 거지도사가 된 사연
▶ 보림사에 채공 일을 하던 수원이라는 무식한 사람이 있었는데, 스님의 지시로 300일 기도 끝에 땅속을 들어다 보는 도사가 되었으나, 정작 자신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300일 기도가 헛수고였다고 스님을 원망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개고기와 막걸리를 먹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땅속이 들어다 보였다. 그러나 이미 얼굴에 나병 같은 것이 생겨 절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평생 거지도사로 떠돌며 남들 묘자리를 봐주며 문전취식으로 살았다.

 

 

제가 어른시절에 어른들한테 자주 들어본 얘긴데, 보림사에 채공 일을 하고 계신분이 계셨다고 해요. 채공이 뭣인고 하믄 절에서 나무 담당하는 직책을 가진 분이에요. 못 배우고 그래놔서 나무나 하는 사람을 옛날에 채공이라고 한다고 해요. 채공하신 분 이름이 수원인데 내가 성은 들어 보들 안 했는디 혹자는 유수원이라는 사람도 있고. 수원은 확실한디, 그분이 무료하니 나무나 해다가 불을 때고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어. 하루는 어느 스님이 서류를 하나 주면서 “너 그러지 말고 이 서류를 갖고 가서 백일기도를 지내봐라. 백일기도를 지내면서 밤낮 이 주문을 읽어라. 그라믄 뭔 그 보통사람하고 틀려질 수가 있다”고 해요. 그런 말을 듣고 보림사 근처 어디 암자에 올라가서 혼자 백일기도를 열심히 지내면서 공을 들이고 그 문서를 늘 암송하고 인자 그랬는디 백일이 지나고도 아무런 효과가 없어. 틀린 것이 없어. 그래 인자 화딱지가 나서 그 스님보고 “스님 아 내가 스님말씀대로 공부를 하고 새벽이나 저녁이나 매일 열심히 공을 들이고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아무 효험이 없다”고 따져 물었다고 하더라여. 그 스님이 웃으면서 “니 성의가 부족하니 백일기도를 다시 한번 더 해봐라” 그라께요. 그래서 200일기도를 시작했어. 피골이 상접하도록 열심히 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고 참 매일같이 목욕재개하고 200일이 끝났는디 뭣이 틀린 사람이 되았다냐 해도 똑같아부러. 똑같아분께 실망을 하고 또 원성을 한거여 스님보고. 스님이 또 웃음시롱 등을 토닥토닥하면서 “100일만 더 하면 효험이 나타날 거다”라고 했어. 그만두기도 아깝고 200일 했던 노력을 생각한께 눈이 캄캄해. 그란디 또 100일을 하라한께 기가 맥힌디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있다한디 안 할 수도 없고 300일 기도를 열심히 지났다고 해요. 또 100일이 지났는디도 아무 효과가 없은께, 보림사 근처에 주막이 있었다 그래요. 옛날 어른들은 개고기를 잘 자셔. 300일 동안 굶주리고 못 먹고 허기졌던가 막걸리에 개고기를 먹고 쓰러져부렸어. 화딱지가 난 게 술로 분풀이 한 거여. 쓰러져부러갖고 기절을 해부렀네. 그란디 눈을 뜨니까 땅 속에 훤히 보이더라는 거여. 멧을 보면 멧 속에 뱀이 들어가 있으믄 뱀이 들어가 있고 황금이 들어가 있는 것이 보이고 명당인지 명당이 아닌지 전부 보이더라여. ‘내가 이인이 되었구나’ 그런 생각을 한 순간에 얼굴을 만져본께 나병환자가 되아부렀어. 끝까지 참았으믄 쓸 것인디 지고를 맞어분거여. 죽든 안했지만 나병환자는 아닌디 나병환자처럼 얼굴이 변해부렀어. 나병환자가 절에도 못 있고. 흉하니까 못 있게 하제. 호구지책을 하기가 어렵게 되어부렀어. 그래 유치 동네마다 다니면서 명당 잡아주겠다고 외쳐. 그러면 사람들이 숨어. 나병환자라고 전부 숨어부러. 밥 한 끼 만 주면 명당 잡아주겠다며 밥 한 끼 얻어 먹다 말다 해. 밥도 안줄라해. 신풍마을에도 자주 왔다고 해. 200년 전 쯤 인물인 것 같애.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 그런 거 같애. 현재 농협창고가 여러 동이 있고 벼가 수천석이 들어있어. 신풍만 오면 쌍둥이 정자나무가 있어요. 그때는 거기가 큰집 대밭이었어. 큰집 대밭 있는디로 업져서 “천석군 보입시다, 천석군하니까” 주민들이 미친놈 취급을 했어. 불쌍한께 밥을 준 분들이 계시면 실지로 묘를 잡아줬어. 대표적으로 그 잡아준 멧이 피재에 가믄 사도열이라고 위씨 집안 산소였는디 당대에 몇 백석이라고 유치면의 좋은 묘는 다 그분이 써주었다고 그래요. 물에 잠겼습니다만, 송정마을 근처에 배바위라고 있는데 제가 가서 보니까 그 계자전양이라고 멧도 그 냥반이 써서 부자가 되고 잘 되었다고 그래요. 유치면의 좋은 멧을 다 써줬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분이 잡아준 것은 돌아가신 후에 생각해보니까 명당이여. 그래서 어째 그분한테 못 했나 사후에는 세인들이 탄식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란디 그분이 실존인물인거 같어요. 그분이 유치면 소재지를 보고 명당이라고 그랬을 것이여. 이 근처를 보고 그랬을 것이다. 6·25 때 수몰되기 전에 복구해갖고 있을 때 저녁에 북소리도 나고 방아 찧는 소리도 났다고 그래요. 여그 면소재지도 여가 전부 논이었어요. 노인당자리는 밭이었습니다. 학교자리가 밭이고 그랬는디 이렇게 잘 될 줄을 알았겠습니까. 수원도사는 3백일기도로 도를 통했는디도 불구하고 나병같이 얼굴이 생겨가지고 평생을 주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불우한 도사였단 생각이 듭니다.

- (천석 했던 땅은요?)
거기는 농협창고가 여러 동 들어섰죠. 백 평짜리가 다섯 갠가 엄청나게 들어서 있제.

- (실제로 그분 말이 맞았나요?)
그분이 써준 산소는 부자가 되아부렀당께.
- (근데 어쩌다 나병얼굴이 되었을까요.)
개고기를 먹어서 그랬다는 얘기가 있어. 사찰에서는 꺼리는 개고기. 불손한 음식을 먹어서 그랬단 말도 있어.
- (계속 묘자리를 봐주고 사셨는데 나중에 큰 스님이 되었단 얘기는 없었나요?)
도를 통한디는 학문을 많이 한 분하고 기도를 해서 바짝 문이 열리는 분하고 틀리다고 그래. 개안이 되었는디 스님이 되었단 말은 없어. 실제 나병은 아닌디 누가 상대를 안 해줘. 옛날어른들은 생활을 접고 명당자리를 찾으러 다녔어. 그란디 거지같이로 문전취식을 하다가 생을 마친 거 같애. 잘 되었단 얘기가 없어.

 

 

 

 

 

 

                                                   보림사 대웅전

 

 

 

 


자료번호 / 06_12_08_FOT_20160712_MPS_0003
제보자(구술자) / 문평섭(남, 77세, 신풍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