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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관산읍

[관산읍] 개구리 없는 방죽

장흥문화원 2017. 9. 15. 10:17

 

 

 

개구리 없는 방죽
▶ 관산읍 방촌에 있는 존재 위백규 선생의 집 앞 연못에는 개구리가 없다. 존재 선생이 학문을 연마할 당시 개구리가 울어서 시끄러워 공부에 방해가 되니까 부적을 써서 연못에 넣었고, 그랬더니 개구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개구리 없는 ‘방죽’ 이야기 할라고 그래. 개구리 없는 방죽은 방촌리 존재 위백규 선생 서실 앞에가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는데, 그 방죽은 개구리가 없다고 그래요. 다른 방죽은 개구리들이 막 울어제낀디, 그 방죽만은 개구리가 없는 이유는 뭐였느냐 그라면은, 존재 위백규 선생은 호남 3대 실학자의 한 분이신데, 3대 실학자를 어떻게 논하냐 하면 화순의 규남 하백원 선생하고, 순창의 이재 황윤석, 그라고 존재 위백규 선생이라고 호남 3대 실학자라고 이렇게들 말을 해요. 그런데 그 분이 존재 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집앞 연못에서 개구리들이 하도 울어재껴 봄철에 공부하는 데 글 읽는 데 지장이 있어 안 되겠다 그러고는 부적을 써서 그 방죽에다가 넣었어. 그 뒤로 그 방죽에서는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공부를 했다, 그런 전설이 내려오는데, 실지 그 방죽에는 개구리가 없다고 그래요. 지금도 그렇게 내력이 내려오는데, 그 존재 선생이 정조 때 그 벼슬을 내려도 잘 안 했어. 왜 안 했냐 그라믄 과거 급제를 할려고 과거에 응시했는데 실패를 했어. 그런데 그러다 어쩌다가 공부하다 본께 나이가 60이 넘어 부러. 그때사 천거가 된 거여. 그래서 나이가 많아서 그때 60은 노인들이여. 그래서 사양을 하고 후학만 하고, 하도 머시기 하니까 마지막으로 옥과 현감 2년을 채 못하고 돌아와서 병사를 하셨는데, 그 분 학문이 굉장하셨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 부적이 영향이 있었다고 하지 않느냐,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료번호 / 06_12_02_FOT_20160726_WCR_0003
제보자(구술자) / 위철량(남, 71세, 와룡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