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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유치면

[유치면] 용문의 용소와 피재

장흥문화원 2017. 11. 7. 11:03

 

 

 

용문의 용소와 피재

▶ 보림사 창건 설화의 변형된 형태로, 보림사터가 원래는 소였는데 도사가 소를 메우기 위해 사람들에게 눈병을 퍼뜨린 후 소에 돌은 넣으면 눈병이 나은다는 소문을 내 사람들이 소에 돌을 넣게 했다. 그 과정에서 소에 살던 용이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며 재를 넘어 장평면으로 가면서 꼬리로 산을 내리쳐 계곡이 되고 그곳에 소가 생겼다. 그래서 그 소를 용소라 하고 그 재를 피재라 한다.

 

 

절에 아주 전적으로 일생을 바치듯이 한분이 있어요. 모든 사찰을 지을 때에 3천년 역사라고 저도 듣는 풍월이지만은 쏘였다 하대요. 쏘를 메켜가지고 절을 만들었거든요. 소를 어떻게 메켰느냐면 도사님이 전국에다가 국민들한테 눈에티로를 줘붕께 그것이 옛날에는 참 힘든 일이거든요. 거기다가 돌을 한 돌멩이 던지면 눈에티가 나가분다 그란께는 거기다 돌을 던져가지고 눈이 낫고 쏘가 메여졌다고 해요. 그래서 사찰을 지었다고 해요. 그 앞에 저희들이 어렸을 때 댕김시로 동그라니 뭘 해놓고 거기를 떠들어 보면은 물이 팍팍팍 나왔어요. 그게 쏘가 메인 증거다 이거에요.

- (보림사 지을 때 헌신한 사람이 누구에요?)
도사. 그 도사님이 절을 세우면서 눈엣병을 낫게 한 거에요. 절을 지을라고 하니까 쏘에서 용이 솟아갖고 상처를 받았다 이거예요. 돌로 메꾸고 상처를 입어가지고 그리 내려오다가 피를 흘려가지고. 용쏘라고 있어요. 산 갈라진 데 있어요. 거기를 인자 용이 피를 흘리고 내려오다가 꼬리를 쳐서 산이 갈라졌다고 해요. 지금도 냇물이 있어요. 거기서 꼬리를 치고 재를 넘어갔다. 피를 흘리고 용이 재를 넘어가서 피재라고 했어요. 산이 갈려져서 냇가가 되고 이쪽도 바위 저쪽도 바위 완전히 좁도 안하고 요기 앞의 물이 거기서 다 쏟아져요. 그래서 그 쏘를 용소라고 불러요. 옛날에는 거기 뭐 엄청 깊어요. 그리고 나서 재를 넘어갔는데 피를 흘리고 넘어가서 피재라고 했어요. 어르신들이 재를 넘어 장평으로 넘어갔다고 해요. 그래서 여기를 용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 (용소가 이 마을에 있어요?)

이 아랫마을에 있지라.
- (그 마을이름이 뭐예요?)
용문리에요. 현재 용문이네요. 전체가 다 용문리에요.

 

 

 

                                                      피재

 

 

 

 

                                                      용소

 

 

 

 

 

 

 

 

자료번호 / 06_12_08_FOT_20161119_MHR_0001
제보자(구술자) / 문학래(남, 80세, 용문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