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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읍

[장흥읍] 한국전쟁 때 산사람 친구가 살려준 소방대원 형님

장흥문화원 2017. 9. 14. 09:32

 

 

 

한국전쟁 때 산사람 친구가 살려준 소방대원 형님

▶ 한국전쟁 인공시절에는 날마다 동네에 모여 인민군 노래를 불렀다. 형님 세 분이 모두 경찰, 군인, 소방대원이라 주목을 받아 힘들었다. 소방대원 형님은 해창 곡식창고를 지키다가 산사람들에게 잡혔는데 모령 사는 산사람 친구가 도망가게 배려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다시는 전쟁은 안 일어나야 한다.

 

 

전부 모였거든 동네에. 오락 하먼 안 올수가 없어. 그래가지고 모여서 그 인민군 노래 잉 “야~ 뭐~ 양코배기” 인제 옛날 그런 다 잊어부렀는디. 인자 저녁마다 그놈 했거든.그라고 인제 각 부락 연락을 할 수가 없은께 연락병을 한 부락에, 연락을 이 부락 여기는 이 부락. 연락을 거그까지 조직을 했어. 그 놈들 유명 안하다고, 조직 그거 한 것은.그래갖고 하고 인제 이만했을 [앉아서 한 손을 머리 높이로 올리며] 때제,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해방이 되았은께. 현재 그만 하먼 지금 같으먼 주변도 없고 한디 오락 학거시여. 근데 그때는 저놈들이 뇌세, 그것을 할라고 어렸을 때부터 뇌세를 아조 그냥. 바꾸거든 저놈들한테, 저 편으로. 그랑께 인자 어렸을 때 무조건 밤이먼 모여. 그라고 “야~ 뭐 양코배기”하고. 오래되야서 발써 50년 인께 얼마나 오래 되았어. 그래갖고 노래 불고.그라믄 인제 또 쩌어 부락에로 연락 할라먼 연락병이 한나 딱 또 해놔. 그렁께 서로 할락 해. 연락병이라고 그것이 벨 좋은지 알고. 그래갖고 쩌그 가서 연락도, 뭣 한다 연락을 하고 인자 그런 짓거리 했고. 또 한나는 뭐냐면은 우리 집이 인제 여기 아니여. 그때 딴 데 살었어. 우리 집이가 농사를 많이 지었어, 인제 아버지 계실 때. 그런디 우리 큰형님은 경찰에 있어갖고 쩌어그 인제 섬으로 피난 나갔어. 저놈들이 내려온 께. 그라고 두 째 형님은 인제 경비대 때 군대를 갔어, 군대를 6·25 전에 인제 군대를 갔제 잉. 그라고 우리 형이 있어. 인제 돌아가셨는데 거그는 소방대원으로 있었단 말이여. 그랑께 우리 집이가 딱 주목이 되았어. 서이나 아조, 딱 주목이 되았어. 그래서 지금도 즉 말하면은 쩌그 저 이북이라 하면은 지금도 아조 사지가 떨려 부러. 지금도 아조 공산 진영이라 하면 안전히 해부러.그란디 인제 그때까지는 괜찮했는디 인제 큰형님이 이리 들어왔단 말이여. 그란데 우리는 쩌그 올라갈 때 그놈들이 산으로 올라갔어, 그그글 뭐 한 놈들이 올라갈 땐디. 그 때 막 여그 있는 사람들 마악 죽이기도 하고 그랬거든.그라고 또 우리 형님이 작은 형님이 인제 큰일 날 뺀 봤어. 우리가 딱 즉 말하면 여그 사람으로 해갖고 우리 형님을 잡으러 왔어. 쩌그서 잡으러 왔는디. 요쪽 사람 즉 말하면 거기에 물이 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그 사람들은 뭐냐면 농촌에서 일하고 남의 집 살고, 그런 사람을 많이 포섭을 해갖고. 배고픈 세상이라 이 세상이 좋닥 한께 그리 많이 쓸렸단 말이여, 산으로 가고.그런디 그때 경찰서 사람들 뭐시기로 왔어. 저놈들이 우리 형님을 잡으로 온 것이여. 그랑께 옛날에 그 나이 많이 자셨지만은 형제간이 되야. 근디 “아야” 원양이라고 그런디, “원양아, 쩌기 저 사람 너 잡으러 온다. 그런께 빨리 피해라.” 그래갖고 인제 가운데 동네 가운데로 들어가서 저쪽에 약간 또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 인제 옛날에. 그런께 거그 왔닥 한께 아주머니가 “그라먼 너 찰독그릇 속에가 있어라.” 내가 그 말을 들었어 인제. 쌀이 없제. 고방에 찰독그릇 딱 속에 들어갖고 이라고 [머리를 숙이며] 있은께, 인제 잡으로 뒤지러 온 것이여. 그런께 인제 누가 찰독그릇에 사람이 있는지 알았을 거여.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갔어. 그때로 봐서 형님이 그래. “아하 그 양반 때문에 살았다.” 잽했으먼 영락없이 죽에부러. 그런디 그때 뭐시기를 인자 산으로, 우리 아군들이 온께 산으로 갔거든. 무지하게 갔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땐디. 그 산으로 아조 사람이 피익 가더라고, 피난 간 것이여. 즉 말하자면 저쪽에 머리 쓴 사람이. 그라면 그 때만 한다 하더라도 우리 학교 선생이 또 같이 가더란 말이여. 그래서 인사를 이렇께[머리를 앞으로 숙이며] “선생님 안녕 하시오.” 소를 띠끼로 갔어 소를. “안녕 하시요”한께 눈을 깜짝깜짝, 모른 채 하라고 하든마. 그런 기억이 많이 났어. 또 한나는 뭐가 있냐면은 요쪽으로 된 께 돈이 들드래도 저쪽으로 머리를 숙여야 되리란 생각이 있어갖고. 그때 어떤 수가 있었냐면은 나락, 벼 안 있다고. 동네에서 몰근몰근 한 사람들을 다 뽑았어. 그란데 내가 보니까 한 칠팔 수가 동네 이렇게 논에를 댕기더라고.아부지가 말한디 나락 그 시었어 시어, 나락을 시어.[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듯이] 그렇게 그 사람들이. 그래갖고 여그는 누 논인디 평균 얼마가 나온다. 그래갖고 인제 그 걷어 돈을, 나락을 거둬드릴라고. 그런 독살스러운 나라였어. 그런 나라에 어게 살아. 그래갖고 아버지가 거그를 들어갈라고 쌀을 세 가마닌가 와이루를 썼다고 그랬어. 그래야 안 죽거든.참 그런께 나는 작은 형님도 돌아 가셔 불고 잉, 군대 그 저저저 낙동강전투에서 돌아가셔. 큰형님은 섬으로 경찰에 섬으로 가갖고 그 때 복구해갖고 왔고, 작은형님은 소방대에 있었고. 한께 완전히 저놈으로 봐서는 반대 뭐시기로 딱 되았어, 우리 집은.참 그라고 우리 집 땜에 많이 살았어. 인자 복구가 안 되았다고. 복구가 됐는디 우리 동네에서 저쪽으로 머리 쓴 사람이 상댕이 있거든. 근데 막 잡으로 댕겨. 우리 집으로 전부 방으로 거의 숨었어. 그랑께 인제 그때만 해도 순경들이 막 이리 왔제. 저놈들 산으로 가불고. 그때 인제 저쪽으로 머리 쓴 사람들이 있었어. 그때 사람이 많이 죽었제 아조. 그래갖고 인제 귀찮게 한께 우리 집으로 많이 왔어. 우리 집에서 자고 그랬어. 우리 작은 형님은 소방대원으로써 인제 안양 해창이란 데를, 인제 그 창고가 있었어 쌀 창고. 그라면은 거그 지키러 간거여 소방대원들이. 그래가지고 인제 거그 근무를 서고 있는디 저놈들이 내려왔어. 그란디 그 사람인지 누군지를 몰르거든 우리 형님은. 그라고 우리 형님은 딱 잡혔어. 그래가지고 인제 어디 나가작 해서 염사도 모르고 따라 나온 것이여. 그랬더니 죽일라고 인제, 동네에서는 죽일 수는 없고 밖에 나와서 죽일라고. 완전히 쩌그 산에 거그하고 그 요쪽 경찰하고는 완전히 원수거든. 그랬던 것인디 우리 작은 형님은 여가 누군지도 모르고 따라나와. 그란께 고 누구여. 즉 말하면 안양 모령이 그 동창이 한나 있어. 그런디 친구지만은 그 사람이 산으로 즉 말하면 갔다는 것을 알어. 그런께 지금 그 사람 땜에 즉 말하면 우리 형님은 살았어. 그 사람이 눈치에 “아하 원양이가 잽해가구나. 너는 우리를 누군지를 몰르구나.” 그래갖고 자기라는 것을 표현을 마악 했어, 알어들으라고 잉. 그란께 성님이 “저 빨갱인디 기구나.” 그래갖고 인자 도망을 가야겠다고 한디. 그 해창 요쪽으로 나오면은 길 밑에가 바다여. 차이가 한 1미터 50정도 있어. 파아악 뛰었어 바다로 잉. 물은 나가 불고 물은 없제. 인제 물이 들먼 여가[무릎을 만지며] 이렇게 찬디. 근디 총을 다다닥 친 거여. 그 사람이 어만 데다 친 거여 어만 데다 잉. 다다다아 총은 쏴야 될 거 아니여, 잡는다고. 그래가지고 거기서 쫘아악 나왔어.그래갖고 다시 동네로 들왔어 어뜨게 이잉. 우리 형님 말이. 들와서 그때 마악 불이 나고 그랬거든, 창고 태와불고. 그란디 어뜨게 해갖고 누구 집으로 들어왔어. 누구 집으로 불탄 집 안으로. 그래갖고 인제 마루가 있다고 이렇게 방 들어가기 전에 토방 마루 잉. 거가 이렇게 딱 마루가 있제. 그래갖고 그리 들어가갔고 그 앞에 소쿠리가 있드라 이거여. 소쿠리가 있어 싹 이라고 있어. 거기서 잽히먼 죽제. 우리 형님이 그래갖고 이라고 딱 이라고 있는디 그 놈들이 잡으로 왔어. 요쪽으로 또 왔는가 잉 그라고. 밑에를 봤으면 영락없이 잽해가 죽을 거인디 다행히 나갔다 이 말이여. 그래갖고 인제 다행히 살았는디. 인제 우리 형님이, 거그서 여럿이 죽었어. 죽었다네, 해갖고 난리 나부제 인제 마악 울고불고. 아 그런디 형님이 딱 올라 오드란 말이여, 여그서 본께. 아아하 그래서 살았다. 옛날에 그런 어려운… 그랑께 전쟁이란 것은 참 안 해야 돼. 전쟁은 안해야 돼.

 

 

 

 

 

 

                                                   건산 2구 마을회관에서

 

 

 

 

 

 


자료번호 / 06_12_01_MPN_20161205_WYK_0001
제보자(구술자) / 위양근(남, 80세, 건산 2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