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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흥읍

[장흥읍] 자갈로 막은 독실보 제방

장흥문화원 2017. 9. 14. 16:56

 

 

 

자갈로 막은 독실보 제방
▶ 일제 강점기 독실보 제방뚝을 막았다. 독실보 주변 마을사람들은 다라이나 바지게에 자갈을 이고 와서 제방뚝을 막았다. 일을 하면 팥죽도 써주고 밀가루도 주었다.

 

 

여그 저 읍에서 내로자면 제방뚝, 독실보 제방뚝. 그것을 모을 때 이장을 하셨어. 구장 그 때 말로 구장, 구장을 하셨어. 구장함시로, 우리가 그 때 너댓살 묵었든가 몰라. 새벽이면 막 징을 뚜드러. 저 인력으로 모은 거여. 제방뚝. 울력이 아니라 그 당시 뭐 노임을 줬어. 밀가루를 줬든가 머슬 줬든가, 일본놈들이. 야튼 머 식량을 줬어. 그라믄 인자 여자들은 다라이 이고 가고 남자들은 뭐 가꼬간지 몰라. 우리 어머니는 다라이 이고 간줄은 내가 알아. 또 부녀회장이 있었어, 그때. 부녀회장. 부녀회장이 또 동원을 하고 그라고 가서 하믄, 거 어머니를 따라가봤제. 따라가본께 퐅죽을 써 주든마. 참인가 점심인가는 모르겄고 퐅죽을 내가 얻어 묵었어. 거그서. 그래가꼬 저 제방뚝을 모은 거여. 지금 저 순지 제방뚝을. 머 저 장비로 한 것 아니고 그때 장비는 없고.

- (이 근간 마을사람들이 다 모였겠네여.)

그렇제, 인자. 다 모이제, 우리는 어려서 모르제. 누가 모인질 모른디 각 부락 해가꼬 그때 그란께 평대로 했던가 어쨌던가 해서 각꼬에다 부숴. 이고 와서 부리고 부리고 그 당시에. 저걸 그렇게 해서 모은 거여. 그래서 지금 저것이 공적비라 해가꼬 지금 쩌그 저 두성이 집 앞에 비가 있어요, 지금. 그 당시에 그 때 활약한 양반들 비가 있어. 꺼만 비. 마악 조사진 놈 해가꼬. 그 뒤로 그 비를 아마 읍사무로 앞으로 옮겼제, 정녕. 잉 옮긴것 같두만. 그랑께 거 어디가 있었어. 그란디 읍사무소 앞인가 어디 있는 것 같던디. 보 만들 때도 보는 만든지를 모른디 인자 출력 댕긴지는 알제. 출력댕기면 여기서 막 외아. “내일은 독실보 울력하요.” 그라고 인자 그전에 말하면 거 하인들이 하인들. 막 외우면 그날 바재기 지고 나가고 막 난리치제. 그래서 독실보는 조성해놨고 지금은 인자 공글보를 해분께 그런 것이 없제.

- (그 당시에는 돌이나 뭐 그런 걸로 했을까요.)
으음[고개를 가로 저으며] 자갈 가따가 부섰어, 자갈로. 그때는 그런 세상을 살았어.

 

 

 

 

 

 

 

 

                                                   독실보

 

 

 

 

 

 

 

 

 


자료번호 / 06_12_01_MPN_20160628_YCN_0002
제보자(구술자) / 윤춘남(남, 82세, 대반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