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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읍

[장흥읍] 장흥에 온 미군정관 조지와 통역을 맡은 문윤식

장흥문화원 2017. 9. 14. 17:33

 

 

 

장흥에 온 미군정관 조지와 통역을 맡은 문윤식
▶ 해방 후 미군정시기 장흥에 군정장관 조지 소령이 왔는데 통역할 사람으로 유치면 문윤식이 있었다. 하지만 조지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없어 농담(욕)을 했는데 구경꾼들이 웃자 조지도 문윤식 등을 두들기며 즐거워했다.

 

 

현 예양리에가 군정장관이 있었어. 군정장관 이름이 조지 소령이대야, 조지란 사람이었써. 일본서 미국놈들. 그라고 부대는 군기는 서초등학교 나무 밑에다 너 놓고 하든마. 내가 가 봐서 알아. 그래서 그 조지 이름을, 왜 내가 조지란 사람을 아냐면, 장흥에 통역할 사람이 없었어, 군정책이 군정관이 왔는디 조지가 왔는디. 그래서 조지란 놈이 어찌구 하믄, 내가 영어를 안 가, 굿이나 보자하고 가 봤서. 그런께는 문윤식 이란 사람이 있었어. 신풍 사는 문윤식이 대단했어. 일본서 그 사람 중학교 과정을 제대로 받았어. 사립학교 과정을 댕겼기 때문에 영어를 좀 했어. 그란디 그 사람이, 그란디 윤식이는 내가 에랬슬 때부터 잘 알던 친구야. 그래서 윤식이가 통역을 어쩌구 한가 보자, 미국놈 거 처음으로 본께는 저거 사람 같기도 한디, 꼭 꼴랑지 어찌녁에 빠져분 원생이 새끼 같아 갖고 있길래, 재미 있다 그러고 봤는디… 그란께 어디 점령국에 가믄 그란 거시대. 아니 통역을 할 사람이 인자 손짓 발짓으로 해서 국제공통어로 통한디, 먹을 꺼 갖고니라, 물 머[두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갖다 주고 했는디…. 아 문윤식이란 사람이 더듬더듬 영어를 했어. 문윤식이 부인이 지금 살아있네. 저그 장원아파트에 살고 있어. 그란디 나하고 가끔 만나. 문윤식이가 우리하고 또 같은 학교에 있었어. 간디 문윤식이가 통역을 조지하고 한디 너머나 빨리 한 게 못 알아묵것쓴께는[웃음] “니미 할 놈이 너머나 빨리 한께 알아 묵을 수가 있어야제.” 그란께는 우리들이 모아서 구경한디, 웃은 께 저도 같이 마악 좋았다고 웃으면서 윤식이 등거리를 뚜두려 주면서 그라길래. 그때의 참 재밌는 야그여 지금은 웃은 께 그라재. 아 우리말 전혀 안된디 그라고 과자 거 엄청나게 주서 먹고 있고, 나는 챙피하든마 에래서지만 주서 묵으러 안 갔어. 한디 윤식이가 통변을 한디, 아이 윤식이도 그냥, 그때는 오직한가. 우리가 중학교 댕길 때 영어 공부란 것이 참 머슬, “김구스 투, 윈드 아 이스 어브스 스프링…” 그 정도 밖에 영어가 안 되았어. 그란디 문윤식이가 더 익숙했어. 가서는 머이라고 해싼게는 손짓 발짓으로 얘기한께는 윤식이가 보다 못하것쓴게 “니미 할 놈이 너무나 빨리 해서 알아묵을 수가 있어야제.” 그란께는 모도 사람들이 웃은 께는 저도 같이 웃으면서 좋아할질 알고… 문윤식이가 키가 쪼그막해. 윤식이 등거리를 또닥또닥 하글래….[한참 웃으면서] 그 뒤로 문윤식이 학교로 들어왔어. 선생하면서 “어야, 형 그때 자네 등거리를 왜 뚜둘겼당가.” 한께는 “먼 등거리를 뚜두러야.” “아니 조지 올 때 이만저만 했는가.” 그란께는 “너 그것을 지금도 안 잊어부냐.” 그라드란께.

 

 

 

 

 

 

 

 


자료번호 / 06_12_01_MPN_20160708_KJY_0001
제보자(구술자) / 김재열(남, 88세, 연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