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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읍

[관산읍] 대평마을 식은포

장흥문화원 2017. 9. 15. 10:50

 

 

 

대평마을 식은포
▶ 장흥 관산읍 삼산방조제가 있는 대평마을 간척지 식은포 이야기다. 그곳은 예전에 소득이 적은 바다였기 때문에 가난했었는데, 제방을 막아서 큰 들이 되었고, 그래서 옛 지명인 식은포가 의미를 얻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오래 전부터 그곳 바다를 막아 제방을 쌓고 농경지를 만드려고 했지만 최근에야 완공을 해서 큰 농경지가 되었는데, 이로 보아 옛날 사람들이 선견지명을 갖고 지명을 지었다는 것이다.

 

 

식은포는 지금 삼산 방조제를 막어서 농경지가 된 포구를 식은포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쉰게 또는 식은 포, 이렇게 여러 가지 발음으로 불렀어요. 그런데 왜 식은포 그러냐면 그건 소리나는대로 읽으니까 식은포고, 식은포 원 글자는 불어날 식(殖)자 은 은(銀)자 그래서 식은포라고 하는데, 여기서 식은포 지명이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은 엣날에는 돈은 쌀이여. 즉 쌀인데, 제방을 막어 갖고 농경지를 해놓고 보니까 식은포란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이렇게들 해석을 합니다. 1997년도 2월달에 착공을 해가지고 2009년 말에 준공을 해서, 12년 10개월에 걸쳐서 방조제가 되었는데, 농지가 한 290헥타, 담수호 저수지가 120헥타, 방조제 면적만 해도 6헥타, 총 매립면적만 해도 420헥타의 매립 면적이 됐어요. 방조제를 하고 보니까. 그런데 식은포라고 어떻게 이름을 그렇게 알고 지었느냐, 그렇게 농경지가 될 것을 예상을 하고 식은포라 지었느냐. 이것 또한 옛날 어르신들이 풍수학적인 것에 의해 지어진 것이 아니냐. 엣날에는 돈이 곧 쌀이었다. 쌀 아니면 돈이 생길 데가 없었다. 그러면 바다에서 어떻게 돈이 나올 것이냐, 그때는 고기잡이가 아주 돈이 안 됐다. 한바구리로 갖고 가도 쌀 한 되나 두 되 줘버리면 끝나. 지금이니까 역으로 반대가 되었제마는, 그때는 오직 돈은 쌀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여기가 농경지가 될 것이다. 그래가지고 그때 옥당사업장이다, 그래가지고 지금의 면적 반 정도에 간척을 했어. 그때가 1960년 중반이나 되었을 거여. 5·16 나가지고 밀가루 사업으로 해서 옥당 사람이 밀가루를 인부들을 품삯으로 주면서 돌을 채취해다가 막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말어 불었어. 그 사업을. 이번에 97년도에 더 광활한 면적을 넓혀가지고 정부사업으로 방조제를 해가지고 식은포를 관산 삼산방조제다 해가지고 농경지를 만들게 되었다.

 

 

 

 

 

 


자료번호 / 06_12_02_FOT_20160801_WCR_0007
제보자(구술자) / 위철량(남, 71세, 와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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