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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안양면

[안양면] 임목사가 굴러 떨어뜨린 옥녀바위

장흥문화원 2017. 9. 25. 14:39

 

 

 

임목사가 굴러 떨어뜨린 옥녀바위
▶ 옛날 연대봉 밑에 있는 은경사란 절에는 도승이 살았고 마을에는 기세등등한 임목사란 사람이 살았다. 하루는 도승이 시주를 부탁했으나 임목사가 문전박대했다. 이에 도승은 옥녀바위를 밑으로 굴려버리면 마을에 큰 부자와 인물이 날 것이라고 소문을 퍼트렸다. 욕심 많은 임목사가 하인들을 시켜 옥녀바위를 굴려버리자 그 뒤로 마을에 큰 인물이 안 나왔다.

 

 

인제 부암(婦巖)하고 며느리바위라고 그러지요. 며느리 부자니까. 부암하고 우리 마을에는 옥녀봉 설화가 있는데 그동안에 장흥군지나 안양면지에는 설화가 어뜨케 되어 있느냐하면 원래 옥녀바위에는 이렇게 옥녀봉에는 옥녀바위가 있었대요. 그런데 그 옥녀바위하고 며느리바위, 부암 하고의 설화가 지금 며느리 바위 옆에 가면은 상봉 밑에 거기가 원래 연대봉이죠. 봉수대를 봉수를 했으니까. 그 연대봉 밑에 가면은 절터가 있어요. 절터가 있고 그 지금도 이렇게 약수터가 있는데 거기에 은경사라고 하는 절이 있었다고 해요. 그 은경사라고 하는 절이 도승이 살았던 모양이죠. 근데 그 도승이, 우리 마을에 파주 목사를 한 임해라고 하는 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 분이 이제 사시면서 조선시대에 과거 급제를 해서 대과 급제를 해가지고 파주 목사를 했으니까 상당히 좀 권위주의적이고 너무 기세가 등등했던 모냥이에요. 그 분이 인제 인심이 좀 안 좋으니까 그 도승이 오셔가지고 하신 말씀이 시주를 좀 크게 해 달라, 부탁을 했는 모냥이에요. 그니까 그때는 인제 고려시대에는 숭불 국가지만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을 썼기 때문에 종교적인 사상차이가 있었지 않느냐, 나는 그렇게 보는데. 그 스님이 시주해달라고 하니까 그 임목사가 스님 머리에다가 댕개를 틀어부렀다고 그래. 혼을 내 버린거야. 대나무를 이렇게 도막도막 짤라가지고 이렇게 조이는 대탱개를 틀어버렸다는 거야. 머리에다가 묶어가지고. 그리고 스님을 혼을 내 버렸던 모양이여. 그니까 그 도승이 가면서 아마 감정이 나와서 그랬던지 요새로 말하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거야. “옥녀봉에 옥녀바위를 그 밑에 수렁으로 굴러버리면 이 동네에 더 큰 부자가 나오고 큰 인물이 나올 것이다.” 자꾸 유언비어를 퍼뜨리니까 임목사의 귀에도 들어갔던 모양이죠. 그래서 이제 임목사가 욕심이 좀 많았던 모양이에요. 종들과 머슴들을 시켜가지고 그 옥녀바위를 그 밑으로 굴려버렸다는 거 아냐. 그래서 그 뒤로는 인물이 안 난다, 뭐 큰 부자가 안 나온다, 그런 설화가 면지에 있고 군지에 있어서 상당히 께름찍해요, 잉 우리 마을 주민들로 봐서는. 그래서 지난번에 2008년도 마을가꾸기 사업을 하면서 인자 옥녀바위를 복원을 하자, 그래가지고 옥녀봉에다가. 그 당시에 보림사 주지 스님이었던 진묵스님이 우리 마을 출신이에요. 진묵스님하고 같이 찾아보니까 진묵스님하고 그 석지를 찾아보니까 옥녀봉의 옥녀바위의 밑자리가 있어. 밑자리가 암반이. 그 밑에 굴러가다 걸쳐져 있는 둥그렇고 뒷이 네모난, 네모가 난 바위가 석질이 같다는 거야. 진묵스님께서. 그래서 그 바위를 포크레인을 갖다가 복원을 했어요. 원위치에다가 복원을 했어. 각이 딱 딱 맞아떨어져요. 그래서 완전히 복원을 해놓고 칠 월 칠석날, 날 받아가지고 우리가 인제 거기다가 위로제도 지내고 그랬는데. 그 뒤로는 지금 상당히 좋은 일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설화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마을 사업을 하면서 설화도 바꿀 수 있다, 해가지고 마을 온 동네 주민들이 나서서 그걸 바꿔놨어요.

 

 

 

 

 

 

 

 

 

                                                                       옥녀바우

 

 

 

 

 

 

 

 

 

 

 

 

자료번호 / 06_12_05_FOT_20161212_BKC_0006
제보자(구술자) / 백광철(남, 63세, 기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