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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면

[유치면] 인공시절 주민들의 고발로 총살 당한 문씨 일가

장흥문화원 2017. 11. 8. 09:05

 

 

 

인공시절 주민들의 고발로 총살 당한 문씨 일가
▶ 권세를 누리던 문씨 일가가 인공시절 마을주민들의 고발로 죽임을 당하고 구술자의 아버지도 고초를 겪었다. 구술자는 피난 다니는 와중에 눈을 크게 다쳐 지금은 거의 실명 상태다.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가지고 두드려 패부렀어. 그런 이야기도 해도 돼요?
- (누가 그랬다는 거예요?)
그때는 순경들은 우익이고 산사람들은 좌익이라고 그랬어요. 문씨 대종손이라고 문병희라고 문동하라고 하고 다 돌아가셨어. 우리 문씨 중에서 대종손이여. 거가 그랗게 살면서 종손인게 태만하고 청년들한테 조금 한 귀퉁이 하고 그러고 살았어. 그란디 인공이 닥치니까 인제 서기를 놔두고 “유감이 이 사람한테 뭐있냐?” 하면서 다 적잖아요. “난 멍침 맞았다. 난 뭐해서 뭐했다”며 유감없는 사람들이 부락에가 없어. 하룻저녁에는 강 뭐시기를 제각 마루에서 불러다놓고 그놈을 다 문초를 받고 그렇게 하는디…. 대종손이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냐하믄 우리 친정할머니 한 분 낳아놓고 대종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재취를 얻어갖고 6남매를 낳았어. 그랬는디 우리 할머니가 “내가 남자 같으믄 대종손인데 출가를 했다”고 항상 그랬어. 우리 아버지보고 그 집 시할머니니까 어머니 죽이라는 고백서를 쓰라고. (우리 아버지) 트럭운전하고 똑똑했어요. (아버지가) “우리 아무 죄 없는 사람이다. 아무 죄 없다”고 해 우리 아버지도 때려서 피가 천지가 나서 왔어. 그래 갖고 종손은 거시기 했잖아요. 형제분인디 어디 데꼬 가서 죽여부렀다 하대요. 남편 찾으러 온 여자들도 국민학교 옆에다 총살해서 다 죽여불고. 그런 세상을 살았어. 그래갖고 인공을 겪으고 했는디, 우리 동네사람들은 피난해야 산다고 산중으로 다 피난 가부렀죠. 부산면 바로 재 넘으면 늑룡부락이여. 음력으로 섣달 12월 23일 날 23명이 죽어부렀어. 애기 요만한 것도 쏴죽이고 그랬는디. 우리 어머니는 인자 그때만 해도 사십 몇 살 먹으면 늙은 편이여. 세 살 먹은 놈 업고 고치로 감서 언능 따라오라고. 아가씨들은 잘 따라 간디 어머니는 애기할라 못 따라 간다고 총 쏴부렀어. 그래갖고 보대기로 덮어놓고 또 피난 갔어요. 아버지하고. 그 이튿날 일찍허니 내려와서 대비어다가 대발 싸서 산에다가 묻고 쓰라린 시간이었습니다. 화악산 작전 때 그렇게 총으로 쏘고 사람이 가믄 발길에 걸려 죽은 사람 천지에서 내가 살아왔습니다. 그래갖고 눈이 팔푼이가 되었습니다.

 

 

 

 

 

자료번호 / 06_12_08_FOT_20160713_YYI_0001
제보자(구술자) / 유양임(여, 81세, 원등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