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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산읍

[관산읍] 풀품앗이와 풀방구

장흥문화원 2017. 9. 15. 09:34

 

 

 

풀품앗이와 풀방구
▶ 여름 농사철에 퇴비를 만들기 위해 농가에서 행했던 풀품앗이에 관한 이야기다. 예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풀방구(북)를 치면서 공동작업(풀품앗이)을 하는 한편 이웃 마을 사람들과 풀싸움을 하기도 했다. 벤 풀의 양을 재서 감독자가 상벌을 주기도 하면서 베어낸 풀들을 공동으로 관리하며 퇴비로 활용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때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 풀품앗이를 하는 거 같에. 마을에서 풀품앗이는 왜 하느냐 그라므는 혼자하면 힘이 드니까 즐겁게 하기 위해서 품앗이를 하는데, 오늘은 우리 것, 내일은 자네 것, 이렇게 해가꼬 하는데, 보통 한 10여명, 이렇게 팀을 구성해가지고 풀품앗이를 하는데, 전부 이 북을 조그마한 북을 만들어가지고 방구를 치면서 풀을 하러 다녀요. 그런데 거기에는 질서가 있어. 금공이라고 제일 대장이 있고. 자수라는 또 두 번째 대장이 있고. 영을 책임지는 영기를 꼽아놓고 풀을 비거든. 영기가 큰 영기, 작은 영기, 그 다음에 요세말은 감찰, 곤장이라고 그러지 그때는, 곤장을 야구방망이 만치로 납작하게 깍아 가지고 거기다가 센치로 자를 만들어요. 그래갖고 다섯사람이 임원이고, 나머지는 방구만 들고 뒤에 따라 다님서 금공의 방구소리에 맞춰서 자기들 방구치는 요령이 있어 그러믄은 쉬는 방구 일을 하다가 출발하는 방구, 행진하는 방구, 또 중간 방구 끝났다는 방구, 이런 방구가 요령이 있어. 그래서 그 아침을 먹으면은 뒷산에 일꾼들이 항상 모이는 쉼터가 있어. 언제든지 그늘지는 곳에, 거기에서 모여가지고 인원 점검을 끝내고 그 순서에 따라서 출발을 하는데 출발 방구를 치면은 풀빌 곳으로 이동을 하면서 방구를 치면서 가요. 전부 설방구를 맞춰가면서 치는데. 방구는 어!~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정도만 쳐요. 앞에서. 그라믄 거기에 맞춰서 뒷사람들이 행동을 하는데, 어느 정도 딱 풀 벨 장소에 가게 되면은 거기서 일단 쉬면서 이 골짜기에서 오늘은 풀을 베어라. 딴데 가지 말고. 그러고 영기를 딱 꽂는단 말이여. 이 벗어나면 안 된다, 그라고. 명령을 하고 풀을 비어라 하는 방구소리 신호를 하면은 풀을 비어. 그 범위 내에서만. 그러면은 보통 다섯 깍지, 많이 하는 사람은 여섯 깍지까지 한 짐을 해. 그러면은 한 깍지가 열주먹이라. 풀 주먹이 그런데 세 깍지를 하게 되면은 반 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그때 금공이 신호를 보내. 지금 반 짐을 했다, 잠시 쉬어라. 그러면은 그때 담배 한 대를 피는 거여. 쉬면서 그러고 한 5분정도 딱 쉬면 시작이다 하고 시작 방구를 쳐. 그라믄 또 마지막 짐을 채운단 말이여. 그라고 다 하게 되면은, 또 금공이 끝났다 방구 소리를 내면은 그때는 짐을 해가지고 내려오게 되야, 그라믄 방구소리에 맞춰서 그 쉼터까지 내려온단 말이여. 거기에서 풀 양을 점검을 해. 곤장이. 꽤 비어 갖꼬 째깐이 한사람이 있을 것시고, 많이 한 사람이 있어. 거기서 감찰이 곤장이 점검을 하는데, 풀을 딱 불해가지고 고무신을 딱 벗어서 깨비로 그 주리를 묶는 줄을 깨비라 그래. 딱 묶어서 갖고 왔는데, 그 밑에다 고무신을 놔두고 곤장 끝을 고무신에 딱 대고, 곤장이 그 줄을 쭈!~욱 잡아 당여. 곤장을 밀고 풀을 밀고 고무신에 놓고 밀고 이렇게 잡아 당기믄 벌어질 꺼 아니여? 그 벌어지는 넓이가 몇 센치냐 10센치 당겨졌냐? 20센치 당겨졌냐? 30센치 당겨졌냐?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고 센치가 없는 데는 주먹이 들어 가냐? 고개가 들어 가냐? 머리가 들어 가냐? 몸둥이가 들어 가냐? 이렇게 해가지고 징벌을 해. 곤장을 쳐. 그라믄 열 내서 주먹이 들어간 것은 세 대를 땐다든지 머리까지 들어가믄 머 다섯 대를 곤장을 친다든지 또 몸둥이까지 들어가믄 열 대를 친다든지 또는 10센치 들어가믄 다섯 대를 친다든지 20센치 들어가믄 머 열대를 친다든지, 이런 규정을 자체적으로 정해 나가꼬 실지 봤어, 그것을. 곤장을 때래. 그 왜 그러냐믄 풀을 적게 베믄은 많아게 벨라고 슬그머니 묶어 가꼬 오거든, 그거를 방지하기 위해서 요거를 한 거여. 그래가꼬 양이 적잖애, 그 사람 꺼슨. 그라믄 품앗이가 다!~ 이녁 집이 오늘 우리집 꺼를 할 꺼인디 째깐이 해믄 곤란하제. 그러니까 거기서 울력을 해. 그 열 명이면 열 명 열세명 열세 명 팀원이 풀을 한주먹씩 그 부근에서 비어 그래 갖고 부족분을 채워죠. 그래야 그집에도 정당한 양이 들어가지. 품앗이니까. 그래갖고 그 집에 부래 주고 점심은 보리밥, 그때는 보리밥이니까, 큰 옴박지에다가 풋김치 고추장 머 기타 반찬을 여가꼬 막 해가꼬 양푼에다가 한그릇씩 비빔밥 주거나 비빔밥 안 한 사람 그냥 밥을 주거나 반찬해서 머그라고 그라고 거그서 먹고 다들 또 식돌에다가 낫을 갈아가지고, 또 다시 오후 풀을 한께 또 쉼터로 와. 그래가꼬 쉼터에서 잠시 한숨을 오침을 해. 한숨을 자고 잘 사람은 자고, 이야기 할 사람은 이야기 하고. 거기서 농사 이야기 풀이야기 별 이야기 다 하고, 가는 시간이 되믄은 오후 한 3시쯤 되면은 출발 방구를 또 쳐. 그래갖고 가서 방금 말한 또 같은 요령으로 해가지고 와서 저녁에는 머슬 먹느냐 주로 밀가루를, 밀가루로 팥죽을 써서 주고 없는 사람은 그냥 팥이 없는 사람은 흰 밀죽을, 흰밀죽을 써주고 쫌 있는 사람은 팥까지 해가꼬 팥죽을 써주는데, 양 큰 사람은 다섯 그릇 일곱 그릇을 묵어 불러. 그때는 대접이라 해 가꼬 대접도 커. 그런디 최고 일곱 그릇까지 먹은 사람이 있어. 그 죽을. 그란디 그 밀죽이 지금도 팥죽이 맛있지만은 그때는 그것 같이 맛있는 밥이 없었어, 팥죽이. 그래서 그렇게 해가지고 그 퇴비 생산을 했어. 그때는 비료가 없는 세상이라고 오직 퇴비만이 농토에다가 여는 거름이거든. 그러기때매 퇴비 장만하는 것이 지상목표여 그때 농촌에선. 그래서 풀품앗이를 풀방구를 치면서 그것은 곳 힘든 거를 좀시라도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품앗이를 해서 퇴비를 증산하기 위해서 두레형식으로 만들어진 농촌 그 품앗이 풀품앗이인데, 또 이 동네 저 동네 품앗이꾼들이 풀방구 싸움을 거는 적이 있어. 그라믄 싸움방구가 또 따로 있어. 그라믄 점심 먹고 여기서 싸움하기 위해서 싶으믄은 그 풀방구를 친데, 우리 용전 와룡마을 같은 경우는 남송마을에다가 대고 풀방구를 쳐, 싸움하자. 그라므는 남송에서 임마 요녀석 풀방구 싸움 걸어왔네. 안 할라믄 안한다는 방구소리가 있지만은 거기서도 싸움을 하러 와. 그래 가꼬 냇갓을 사이에 두고 이쪽하고 저쪽하고 냇갓 사이 두고 방구를 치는데, 모든 방구의 요령이 다 있는데, 그거시 틀려블믄 져브러. 방구 머시가 틀려버리믄. 그런데 그때에 져블믄은 머 상대방의 풀을 베다 준다든지, 요런 것이 있는데, 그때 내가 볼 때는 그런 거까지는 없었고, 한참 풀방구 싸움을 머 한시간 동안 하다가 헤어지고 그런 거까지는 내가 구경을 했어. 그래서 그때 어렸을 때 풀품앗이는 정말 재미있이 품앗이 그 노동을 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든디, 지금도 그런 것이 있었으면 좋것다 요세는 이 퇴비라는 것이 한주먹도 퇴비를 안 해. 요세는 그 축사에서 나온 인자 퇴비, 이런 것이 농협에서 만들어 파는 퇴비, 이런 것이, 돈 주고 사서 뿌리지 자기 집에서 만드는 것은 거의 100% 없어. 그래 갖고 얼마 후에 비료가 나오면서 이것이 없어진 거 같애. 그래서 내가 기억하기로는 중학교 시절까지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열 대여섯 살 그랑께 50 한 5년 전까지는 요런 풀품앗이를 한 거 같애. 그전부터 쭈욱 해왔으니까. 그래서 풀품앗이가 그렇게 농촌 퇴비 증산의 일획을 담당했다.

 

 

 

 

 

 

 


자료번호 / 06_12_02_MPN_20160808_BHS_0001
제보자(구술자) / 백휘선(남, 71세, 죽청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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