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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안양면

[안양면] 물이 귀해 여자들이 밤새 샘물을 기르느라 가족계획이 필요 없던 마을

장흥문화원 2017. 9. 25. 14:56

 

 

 

물이 귀해 여자들이 밤새 샘물을 기르느라 가족계획이 필요 없던 마을
▶ 우리 마을은 옛날부터 물이 귀했다. 그래서 양사마을 앞에 들물을 먹고 여자들이 메구 치고 올라가 무등등 샘에서 기수굿을 드렸다. 여자들이 밤새 통샘에서 물을 기르느라 애 만들 시간이 없어 군사정권 시절 가족계획(둘만 낳아 잘 기르자)도 필요 없었다.

 

 

물이 없어 우리 마을이. 마을이 물이 없어 가지고 샘을 파는데 동재가 상댕이 없어졌어. 물, 물 먹을라고 인자 샘을 파잖아, 인력으로. 그때는 기계가 없응께. 그란께 인건비 주고, 인건비 주고 그래갖고 동재가 바닥이 나다시피 해부렀거등. 동네 돈이. 그래가지고 가만 있어, 저 샘을 몇 년도에 팠다냐, 회관에. 그래가지고 물을 어서 길러다 묵냐면 들샘, 인자 잉 들에 농사 질라고, 그때는 저수지가 없으니까 둠벙을 파거든. 여기 여 양사, 양사마을이라고 그래, 그 하양마을 보고 잉. 양사 앞에 들물을 먹었어. 들에 둠벙물. 그라고 홍거천 냇물이 요렇게 흘러가다가 보며는 옆구리에서 물이 잔 새나오거든. 그라믄 그게 정수가 되어갖고 묵을 만 했어. 그 홍거천 냇물을 먹고. 산에는 들독거리 샘이라는 것이 있어. 모령 뒤시라 그 말이여. 거그 물을 묵고 요 통샘 물 묵고.
- (그러면 그래서 물이 귀해서 기수굿 비, 물에 대한….)
그래가지고 기수굿 물은 어디냐며는 무등등, 무등등이란 산이 있는디 거가 돌 사이에서 물이 났거등. 그래 그 물을 매구 치고 올라가갖고 여자들이, 남자들은 안 가고. 매구를 치고 올라가서 매구 치고 그 물을 담아다가 요 통샘이란 데다 부서. 물을 끄십어 온다 그거여, 그 물을. 그래갖고 먹고.
- (기수굿은 언제까지 했어요? 한 몇 십 년 됐어요?)
내가 몇 년도에, 한해가 들었을까? 전국적으로 한해가 들어갖고 난리 났잖어. 그 해가, 우리 동계 책을 보면 아는데 짐작해서 하께. 내가 마을 일을, 6·25 때 군대를 가갖고 와서 우리 마을이 하도 불쌍해서 내가 뛰고 댕갰어 인자. 이장을 추켜들고. 그래갖고 보건소에서 두 공구를 주더라고. 우물을 파라고, 돈을. 그래갖고 여그 두 공구를 파도 이 집 앞에서 파고, 쩌그 회관 뒤에 거그 파고. 그래도 물이 회관 뒤에는 안 나고 여기서는 물이 났어, 마을 앞에 여그 여. 그 놈을 또 인자 뻠쁘식으로[두 손을 위 아래로 흔들며] 해갖고 먹고. 물을 질를 라믄은, 여그 통샘이란데 역사가 거가 그대로 보존해놨어 지금. 그 물을 묵을 라고 물동이가 이렇게 줄을 서, 먼저 간 사람들이. 그 다음에 이 사람이 질러 가면 그 다음, 다음, 다음, 다음 이렇게 잠을 못자, 여자들이. 잉 잠을 못 잔다고. 그랑께 그때 인자 그 군사정권이 들어서갖고 가족계획을 해라, 가족계획을 해라, 그러고 교육을 시케. 그란께 인자 내가 이장을 추켜 들어갖고 우리 동네는 가족계획을 할 필요가 없다고. 왜 그래야, 그래서 여자들이 물길이니라고 밤새 샘에가 섰는디 언제 애기를 맨드냐 그거여. 그래갖고 그 여론이 올라갔어, 인자. 그래갖고 한해가 들어갖고 그때 장흥으로 두 공구가 왔어. 한해 대책으로 관정을 파락 하라고. 그래갖고 장평으로 하나 가고 잉, 한나가 인자 안양으로 왔는디. 우리 마을로 끄십어 와갖고 회관에다 팠거든. 회관에다 파 갖고 거그서 물이 잘 나부렀어. 그래갖고 그 물을 밭농사 짓는 데도 쓰고 논농사 짓는 데도 쓰고 물도 묵고, 마음대로 묵었지 인자. 그래갖고 그때 내가 인자 우리 마을에서 공로패를 해주든마. 그래서 물이 흔해졌지 인자, 저 물이. 그래갖고 인자 유치댐 물이 오기 시작하고.

 

 

 

 

 

 

 

 

 

                                                     모령마을 통샘

 

 

 

 

 

 

 

 


자료번호 / 06_12_05_MPN_20161201_KYD_0001
제보자(구술자) / 고영돈(남, 85세, 모령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