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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흥읍

[장흥읍] 한국전쟁 때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

장흥문화원 2017. 9. 14. 11:00

 

 

 

한국전쟁 때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
▶ 강원도 화천이 고향인 할머니는 열한 살 때 한국전쟁을 겪는다. 폭격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부모형제와 헤어진 할머니는 여러 고초를 겪으며 장흥 사람을 만나 결혼해 순지마을에 살게 된다. 그 후 17년이 지나 소식을 알고 장흥에 찾아온 큰 오빠를 만나고 강원도 화천 고향마을로 가 어머니, 형제들과 해후한다.

 

 

그 전에 6·25사변때 군인들이 이 밑으로 막 내려왔어요. 막 쳐내래와갖고 여기 군인들이 마주쳐져 버렸어요. 그랬는디 인자 막 중국군인들도 많고, 인자 한국군인도 있고 미국사람도 있고 일본사람도 있고 섞어졌어요. 그랬는디 우리오빠는 쩌어 산골짜기로 그 전에 말로 회한다고 올라갔어요. 올라가고 있는디 우게서 비행기가 정찰비행기가 가마니 가마니 돌아댕기더라고 살살 돌아댕기더니. 이 비행기 머리가 빨가니 생겼더라고 앞에가. 그런 것이 빼엥뺑 돌아댕기더니 사람을 인자 발견을 했어요. 발견을 해가지고 인자 그 비행기가 까마구떼가치 비행기가 와. 인제 소식을 전하니까, 비행기서 무전을 하니까 까마구같이 돌아 이 동네를. 그랬는디 쪼금 있드니마는 이런 불덩어리가 비행기서 탁 떨어지더라고요. 딱 떨어지니까 인자 그래놓고는 쪼금 있다가 비행기가 뺑 돌믄서로 다다닥 그러고 총을 쏘더라고. 긍께 함뻔에 불이 싸악 일어난거여요, 동네가. 불이 싸악 일어나갖고 산도 타고 사람도 죽고 인자 그랬어요. 그랬는디 인제 방공호를 우리 방공호를 들어갔어. 들어가가지고, 그전 지하실로 파가지고 거기다가 막 그전에는 냉장고가 없으니까 지하실을 파서 거기다가 김치를 담아놓고 먹으머는 상하지도 않고 좋아요. 그런 방공실이 있었어. 그 방공에는 그때는 세멘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랬는데 세멘으로 해서 돌로 싸갔고 밑에 지하를 했어요. 그랬는디 비행기가 오믄서 타다닥 허고 싸붕께 불이 일어나분께, 하필 우리 앉았는 머리에다 싸분거야. 인자 불총을 싸분께, 폭탄이 우리 머리우게다 탁 떨어져 부렀어. 떨어징께는 앞이 팍 쓰러져부네. 이 인자 방공호가 팍 쓰러져불것 아니요. 팍 쓰러져가꼬는. 인자 우리언니가 질 앞에가 앉었고, 그 담에 인자 그 동네 사람이 손주 데리고 즈 할아버지하고 또 옆에가 앉었고, 그 다음에 내가 앉았고 그 다음에 어므니가 앉았어요. 그랬는디 팍 쓰러지믄서 불이 일어나니까 불이 일어나니까 인자 어뜨께해요. 인자 앞은 다 타들어오지 머리고 머이고 다 꼬실러지고 그래요. 그런디 앞에 있는 사람이, 내 머리 있는데로 따악 단 사람이 사람 살리라고 세마디를 허더라고요. 근디 불이 타서 막 타는디 우리도 죽겄는디 어뜨게 살리겄어요? 그래가지고 어머니가 어머니가 벽쪽에가 딱 붙어 앉었고. 그런께 난리나믄 무조껀 벽으로 지대 앉아야 쓰겄드만. 그리 앉으니까 이렇게 찌구러징게 어머니는 살았갔구 있는디. 그전 옛날에 초마가 이 바지, 속바지가 고쟁이라고 있어요. 앞지르고 난거 그거에다 치마를 입고 있는디 이러코 웅크리고 앉았는디. 폭탄에 딱 저거하믄서 이 다리가 묻혀져 버렸어. 묻혀져가꼬 불이 막 타들어온거여. 난 그 젙에 있고. 그라믄 내 머리가 파삭파삭 꼬실러져요. 그랑께 엄니가 “아야. 우리가 인자 다 죽었다.” 그럼서러 인자 지하실 돌을 어떻게 어무니가 콱 뽑은다믄서 악을 쓴게 뽑았어. 뽑은 게 구먹이 나드라고. 구먹이 낭께 어무이가 나를, 나를 끄집고 인자 어무이가 기어서 올라가고, 나를 끄집고 올렸어. 올려갖고 인자 산골로 올라가 인자. 산골로 올라가서 방공호에 올라가 있는디 그날 저녁에 비행기가 오드니 조명탄을 뿌려논거야. 소나무우에도 흐학니 있고 조명탄을 화아악 널어놨어. 그러고는 어무니가 그래. 내가 그때에도 학질을 앓았어요. 하론 열나고 하론 춥고 이런 병을 해가지고. 그러닌까 어머니가 하는 소리가 그래, 내이름이 숙희거든 “숙희야. 니가 그 약을 안 머그머는 너 데리고 가지 않는다.” 그러믄서 그러더라고. 게서 억지로 인자 밥 한 숟가락을 먹었는디 밥이 아주 쓰디 써. 그런 놈을 먹고 엄마가 업고 산골짝으로 또 들어가. 들어간디 총이 또 비행기가 보더니 우리가 거그 강께 총을 냅따 쏘더라고. 쏜디 그래도 안 맞았더라구. 그랬는디 인자 산골짝으로 들어가서 집 한 채가 있었는디. 이 민간들이 거기에 싹 모여가꼬 있는 거여. 근디 전부다 이렇게 군인들이 포를 쏘갔고 내려오더라고. 포를 쏘갔고 내려온디 그 집에다 총을 막 쏘는 거야, 또 내려오믄서. 그렁게 팽팽 하면서도 사람은 그래도 안 맞고. 다행이 피해가꼬 내려와서. 딱 포를 쏴드라고. 그래가꼬 인자 전부 데리고 내려가요. 우리들 내리고 가가꼬 민간은 민간대로 무조건 보면 전부 다 실어가는 거여. 그런디 인자 우리오빠는 그 산골짜기 갔다 내려오셔 가지고 인자 아프다고 그짓말로, 얼굴에다 검당칠하고 마악 실컷 묘하게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어요. 그렁께는 저그 저 일본사람이 들어엄서 칼끝에 총에다가, 칼끝에 칼이 있드라고 총끝에다가 칼을 딱 숨겨갖고. 이불을 덮어가지고 드러눴는디 푹 쑤시가지고 딱 들치드라고. 해서 우리 오빠는 죽었구나. 인자 살지 못허겄구나, 그라고 있는디. 나는 그 옆에 시커멓게 허고 있제. 머 나대있으면 군인들이 다 회를 쳐부러. 다 건들고 못쓰게 만든당께. 그래서 그래가꼬 있었는디 오빠를 일어나라고 하두만. 그래가지고 오빠가 아파가지고 이리저리 항께 못 일어나고 있다. 그렁께는 그래도 먼 약을 주드라고. 먼 약을 주면서 이렇게 일어나라고 그러다라고. 그래서 그 약을 잡수고 오빠는 그렇게 있었제. 인자 민간인들을 신작로에다 다 실어내. 아조 다 실어낸디 인자 그 방에다, 이런 방에다 저녁에 인자 전부 모태. 근데 이 밑에는 송장이야, 이 밑에는. 앉았어도 여가 몰컹몰캉해 송장이 있어가꼬. 그런 우게서 잠을 잤어. 잠을 자고는 인자 차를 군인차 있잖아요. 포장 이렇게 딱 쳐갖고. 그 포장을 쳐갖고 사람을 싣는 거야. 무조건 다 싣는디. 인자 차가 어머니랑 같이 실은께 인자 한차만 탈줄 알고 탔제. 그랬는디 차가 딱 차부렀어 인자. 딱 차붕께는 아이구, 이사람들하고 같이 그런 데로 강께 거기 스라고 그라믄서 못타게 하드라고. 우리 어무니하고 동생들하고 오빠들하고 못타게 해. 그렁께 내 타는 차가 한테로 가면 저건디 딴디로 가부렀어. 오빠랑 어무니 탄 차는 딴디로 가고 나는 서울로 내려온거야. 춘천 서행강이 폭격에 떨어져가꼬 인자 갈라져부렀어. 고무다리를 놔갖고 거기를 차가 들어가면 물이 쑥 들어갔다 쑥 나왔다 그래. 고무다리를 놔서. 그라고 거그서 나와가꼬 서울서 인자 3일정도 쉬었을까. 3일 정도 쉬었는디 군인 건빵하고 끔 들고 모도 담배 들고. 뭐 여러 가지 들었드마, 간쓰매가 간씀 안에가. 그래가꼬 알락미 쌀로 밥을 해주드라고. 근디 아주 대서 못 먹겄드라고, 아주 까라와서. 그래서 그놈을 먹고 인자 있다가 한 열흘 된 께는, 인자 부모가 떨어져가꼬 어데가 있는지 모르거든. 그래갖고 인자 자식 없는 사람들을 보고 데려다 키라고 한께는 목포서 사는 할무니가 나를 델러 왔더라고요. 그래가지고 거기서 컸어. 어려서 컸는디. 쪼끔만 해도, 인자 개울이 그때만 해도 얼음물 깨고 걸래도 빨고 그럴 때야. 그런디 걸레 빨고 오므는 손이 삘하제. 그라므는 깨끗이 못 씻쳤다고, 열한 살 때 뭘 알겄어. 그러믄 손을 막 때려가꼬 손이 마악 삘해 손이. 그래가꼬 들어와서 인자 그 할무니 집에서 열아홉 살 되도록 컸어, 열아홉 살 되도록. 열아홉 살이 된께 인자 시집갈 나이도 되고 그랬는디. 그때만 해도 이뻤어요. 그짓말 안 해도 머리가 여그 똥꾸멍 차서, 한복을 해서 입혀놓고 극장에 가믄 총각들이 머리채를 막 뽑아. 아조 머리채를 잡고 막 건들고 그래. 그랬는데 인자 거그서 안 살고 시집을 간다고 하니까 옷 입은 것들도 하나도 주도 안 하더라고. 안 줘 안 줘, 빈 몸으로 왔어. 그래가지고 광주로 왔어. 광주로 내려와 갖고 있는 거지. 식모살이를 간다고 인자 소개소로 갔어. 그래갖고 인자 식모살이를 가서 있었어요. 있었는디 인자 우리 애기아부지하고 있다가 만나가지고 이 시골 장흥을 내려왔어. 장흥을 여글. 여글 내려와가꼬. 그땐 동백나무 앞에다 놓고 절을 하고 그랬어요. 그래가꼬 이제 살고. 그래놓고 나만 여 데려다 놓고 군인엘 갔어. 또 신랑이 군인에 갔다가, 신랑이 군인을 갔다가 그때만 해도 3년, 4년이 있다 제대를 해. 글께 절께 살다 이렇게 됐어.
- (그러면 신랑이 여기 사람이었어.)
응 여기 사람이여. 여그.
- (그러면 그 다음에 헤어진 어머니 어떻게 만났어.)
그런께 6·25 사변 나가지고 그때 서울 있을 때 그 사람이 델러 와서, 그 사람이 데려가분께 그 때 헤어졌지.

- (그래가지고 언제 만났어. 어머니, 어머니를 몇 년 만에 만났냐고.)

어머니를, 17년 만에.
- (어떻게 만났어.)
그랬는디. 그때 왜 그랬냐믄 여기서 편지를 누구더러 답장을 한번 써주라 해갖고 답장을 했어요. 그런께 인자 답장을 받더라고. 그런디 오빠가 여그를 왔어 오빠가, 큰오빠가. 근디 오빠가 첫 군인에를 갔다가 인자 내가 있다고 하니까는. 에그 설마 동생인가, 하고 한번 와봤다고 왔어. 군복을 입고 왔더라고. 와서 봉께 끄니가 간데 없어. 끄니가 간데 없다는 소리를 알겄소.
- (몰라.)
몰르제. 아조 아무것도 없고 가난해. 우선 끄니 끓일 것이, 먹을 것이 없어. 그런데로 시집을 와서, 그 남자를 만난 것이 그래. 그런디 그래놓고 군인엘 갔어. 그런디 참 갈수도 없고 이렇게 결혼식을 허긴 했는디. 그래 내가 갈라고 몇 번 맘을 먹었었지.
- (그래가지고 오빠가 와가지고.)
오빠가 와서. 와서는 인제 토방이 이렇게 높아, 옛날 집이라 이렇게 높은데. 올라와서, 딱 올라와서 내 얼굴을 쳐다 보믄서 허넌 말이 뭐냐 그러므는, “그러므는 니가, 니 아버지 성은 뭐냐?” 라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양수근 씨라고. 그리고 어무니는 송순녀 라고. 그러고 오빠는 양상호, 양상윤이, 양상필이, 양상윤이. 그렇게 싹 대고 나는 양숙희고, 언니는 양창희고. 근디 언니는 폭격에 죽어부렀어, 그때. 그때 그래갖고 여태까지 여기서 살고 그라고 있소.
- (그래가지고 오빠가 확인을 하고….)
확인해갖고 가자 그라제.
- (어머니한테 가자고)
집으로 가자. 이렇게 가난한데서 어떻게 사냐. 가자. 뭣을 바래고 사냐. 가자 그러는 것을. 그래도 겨론 허고 여그서 산디 어찌께 가겄어요.
- (어머니 만났을 때는 어땠어요?)
아이고. 어머니 만났을 때는….
- (어머니 서울에 계셨어.)
아이고, 강원도 화천에 있었제. 화천에 있었는디 뉘를 키워가지고 뉘를 따가지고 화천 시장엘 갔어. 그 뉘 판매할라고. 그란께 인자 판매하러 가는디, 어무니가 차를 타고 가. 그랬어도 버스에 앉았어도 어무닌지 누군지 몰랐어요. 그랬는디 그 동네가서 딱 내링께는 거서, 잉 그때는 남자 차장이야. 남자 차장인디 좌우간에 마산골만 내려주시오. 그랬어, 내가. 우리 동네가 마산골이여. 마산골만 좌우간 내려주시오. 그러므는 이렇게 내려서 봉께는 그전 우리 밭길이 있드라고. 그전 어려서 본 길이 그대로 있어. 그런디 그때 군인들이 주도를 하고 있어. 전부다 군인이여, 지금도. 다리를 건너서 딱 우리 어무니 가시고. 아는 길이라 가고. 나는 인자 몰르니까, 여기 양삼삼이 사는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아이고, 군인가족이 나와 있더니 “지비 어무니 저기 개울 건너 다리 건너가시네.” 그럼시로 “아주머니, 아주머니 딸 온다.”고 그래. “우리 딸이 인공 때 나가서 죽었는디, 먼 온다냐”고 돌아본 척도 안 해, 엄마가. 그러닌까 인자 “참말이여요. 참말이여요, 만나서 보고 가라고” 그렁께는 세 번째 그렁께는, 딱 돌려보더니 내 앞으로 오더라고. 오더니 “그럼 니 이름이 누구냐”고 물어봐. 그래서 양숙희라고. “그럼 언니 이름은 머이다냐”고 그래서. 양창희라고 그랬어. 그러고 “엄마이름은 누구냐”고 물어봐. 송순녀, 아부지 이름은 양수근, 오빠 이름은 양상호. 이렇게 다아 댔어. “니가 진짜 숙희구나.” 그러고는 나를 보듬고 어매가 막 울제, 막 울어. 울믄서 가서 보니까 내 밑에 동상은 장가가서 애기를, 아들을 나서 여그다 업고 왔드라고, 나가 온단께. 게서 갔는디, 농사를 지어갖고 방마당 곡식이 그득그득헌거야. 그런디 그걸 본께 영란이 아부지가 쫌 한풀 죽었제. 얼마나 부모도 없이, 저거 한다고 없이 봤어. 그래가지고 저그 했었는디. 그래가지고 방에가 전부다 앉었지. 동생들 앉었고 내가 앉었고 엄마 앉었고. 나는 누구다, 나는 누구다, 나는 누구다, 함서 인사를 했어. 그랬는데 요만큼씩 된 거 보고 나왔는디, 전부 커서 총각이 되고 장가가고 애기 낳고 그럈는디. 어찌 알겄는가 몰르제. 옆에 와 앉어도 몰랐제. 그때 그래가꼬 17년 만에 찾아 댕겨가꼬, 지끔까지도 찾아댕겼어. 근데 어무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형제들이랑은 연락하고.

 

 

 

 

 

 

 

 

                                                   순지마을 경로당에서

 

 

 

 

 

 

                                         순지마을

 

 

 

 

 

 

 

 

 

자료번호 / 06_12_01_MPN_20160629_YSH_0001
제보자(구술자) / 양숙희(여, 76세, 순지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