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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흥읍

[장흥읍] 일본인 아이들이 다녔던 장흥서초등학교

장흥문화원 2017. 9. 14. 11:24

 

 

 

일본인 아이들이 다녔던 장흥서초등학교
▶ 장흥서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충성수포를 포함한 가게들은 말 사료 창고였고 동명목재 자리는 말을 기르는 기마병이 있었다.

 

 

지금 여 학교도[장흥서초등학교를 가리키며] 보믄은 옛날에는 탱자나무 울타리였어요. 울타리가 탱자나무로 돼있고 여그 앞에는 물론 비포장이었고. 그라고 여가 장흥서는 강진선로로써는 제일 큰 도로였고, 그 당시에는. 23번 국돌거야, 아마 정확하게는 모른디. 근디 현재는 천변도로가 국도로 바꼈고 여그는 지방도로 맞춰줬어 현재. 인자 칠거리가 터미널이 있었고. 그라고 인자 칠거리가 터미널이 있고 할 때는 요쪽이 완전히 상권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경찰서 여깄고 법원 여깄고, 각종 은행이 쩌그가 칠거리 쪽에가 다 있었고. 항께 그때는 완전히 여기가 번창했었제. 그 당시에는. 극장은 경찰서 올라간 쪽으로 쪼금만 올라가믄 기양리였는데, 오른쪽에 극장이 거가 있었고. 거 그때 당시에는 극장이 대성황을 이뤘제. 하춘하도 왔었고 여러 사람 왔었어요. 그란디 기억을 못해서 그러지 대단한 극장이었어, 그 당시에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전부 한나로 지붕이 이어졌잖아, 현재 밖에서 보먼은. 현재 이것이 그 당시에는 말 사료창고였어. (자신의 가게인 충성상회) 그라고 여그 동명목재 여기가 말을 기르는, 머락 해야된가 거 기마병이 거가 있었다 해야. 기마병이 여가 있었고. 학교는 일본놈들이 애기들 다닐 수 있는 학교로 돼 있었고, 그 당시에는. 일제시대 이전에 생겼는데도 일본놈들이 즈그 애기들을 가르키기 위해서 한국사람 안 받아들이고, 한국 사람은 장흥초등학교로 다 갔어.

 

 

 

 

 

 

 

                                                   일제강점기 말사료 창고였던 상가들

 

 

 

 

 

 

 

자료번호 / 06_12_01_MPN_20160728_KKS_0001
제보자(구술자) / 김기식(남, 73세, 예양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