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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안양면

[안양면] 완도 금당도에서도 고기 잡아 장 보러 왔던 해창포구

장흥문화원 2017. 9. 25. 15:25

 

 

 

완도 금당도에서도 고기 잡아 장 보러 왔던 해창포구
▶ 해창은 배가 주요 교통수단이던 한 때 멀리 완도 금당도 뿐 아니라 관산 죽청에서도 드나들던 활발한 포구였다. 짐을 실은 트럭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장흥 장을 보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농어, 숭어 등 물고기 천지였다.

 

 

그러먼 인제 보면은 그때 당시 머 십 원도 받었고요. 그러믄 여기서 가먼은 풍길, 풍길 그라믄 두암 풍길 이러케 있거든요. 그라고 그 옆에 가먼 남포, 산정 이. 이제 또 여 상발 이, 여기 가먼 또 죽청. 그라먼 이 그때 보면은 요. 인제 죽청 같은 데서 관산읍으로 나가기가 멀고 그러닌까 산길을 타나서. 그라고 여기는 여기 해창은, 왜 이리 오느냐 그 사람들이 와요. 그러믄 장날이면은 배가 차 같이 다니거든요. 화물차가 짐을 실고 수시로 드러다니닌까. 관산 같은 데보다 더 많이 댕개요, 화물차가. 그러면은 지금 장날 되면은 장환도가 있어요, 장환도. 지금은 인자 육지가 됐습니다. 그 전에는 장환도 섬이거든요. 거기서 참 목선으로 이이[두 팔로 노 젓는 시늉을 하며] 양손에 노를 저어가지고 고기 잡었던 고기들이 다 가지고 와요, 해창으로. 실고 와서 여기서 차 갖고 인제 화물 실고 와서 푸고 그 빈차로 가는 거기다 실고. 운임 받고 실어서 장날 이렇게 장을 보고. 그리고 인제 또 그 완도 섬, 생일도나 금당도 그러거든요. 그러면 거기서 이렇게 김, 미역 이런 것들을 해가지고 또 장흥 장으로 많이 팔러 와요. 그때 당시에 그분들은 이 배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완도읍으로 간 것보다 이쪽 이 해창이 더 가까워요. 바로 장흥 장이 이제. 해창으로 가면은 차가 화물차가 늘 다니닌까 이용하기가 좋으닌까. 그래서 교통수단이 그때 당시에는 참 좋았다, 어느 수문 쪽 보다도 해창이 더 좋았다. 늘 배가 하루에도 차가 수십 대가 이렇게 드러다니고. 이 나중에 머 교통수단이 좋아질 때는 해창이 저 수문이나 관산 보다 못 했으나 그때 당시에는. 그래서 보면은 참 저희들부터 그때는 고기 같은 것도 참, 머 농어, 숭어 이렇게 큰 거 잡어가지고. 정말로 고기가 그때는 풍족했어요.

 

 

 

 

 

 

 

 

 

                                              해창포구

 

 

 

 

 

 

 

 


자료번호 / 06_12_05_MPN_20161203_BKS_0003
제보자(구술자) / 백고송(남, 75세, 해창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