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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면

[안양면] 해창곡식창고를 지키다 죽은 사람들

장흥문화원 2017. 9. 25. 15:30

 

 

 

해창곡식창고를 지키다 죽은 사람들
▶ 해창에는 창고가 두 개 있었는데 한국전쟁이 나자 양곡을 다 쟁여놓고 지켰다. 하지만 반란군들이 쳐 들어와서 아버지와 친구, 그리고 청년까지 세 사람이 학살당했다. 지금은 남해고속도로가 생겨서 선박이 운영을 안 하니까 거의 폐촌이 되어 버렸다.

 

 

창고 두 개였었어요, 원래는. 그런데 이 6·25 사변 후로 일사후퇴 때. 51년도 1월 8일 날이 일사후툅니다. 압록강까지 갔다가 뒤에 후퇴할 띡에. 그랑께 공산당이 밀려오니께 다시 양곡을 다아 쟁에놨어요, 한나도 갖다 안 뺏길라고. 그런디 음력으로는 섣달 스무날인데 양력으로는 1월 며친 날, 확실히는 모르겄습니다마는 이 공산당이 여그를 방어할라고 쳐들어왔어요. 그란디 그때 안양파출소에서 나오고 학생도, 나도 그때 학생이었습니다. 학생도 나오고 청년들도 나오고 했는데. 반란군이 왔다고 소리를, 총소리가 나니께는 나는 여그 바로 집 앞에 나가다가 세 사람한테 붙들리고. 그런데 나는 살았는데 우리 아버지는 두 사람한테 붙들려 우리 아버지 학살당했어요. 목포 문태중학교 댕긴 사람, 뱅영 사람 나하고 친해요. 그 사람 한나 죽고 그라고 청년, 세 사람이 학살당했습니다, 여그서. 그 후로 쭉 있다가 남해고속도로가 생기니까 인자 선박을 운영 안하니까 창고를 뜯어불고 대한통운에서 관리했는데. 그전에는 대한통운이 아니고 뭐이라 했을까 그때는. 통운 전에는 일본말로 마루보시라 그랬는데. 그러끔 해서 하다가 선박을 운영을 안 하니까 자동적으로 인자 폐쇄가 돼 불죠. 그래가꼬 마을이 폐촌이 되아 부렀습니다, 현재.

 

 

 

 

 

 


자료번호 / 06_12_05_MPN_20161201_LSH_0002
제보자(구술자) / 이성환(남, 89세, 해창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