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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면

[안양면] 곤호리 고기로 젓갈을 만들어 팔았던 곤호리 부대, 지천마을 사람들

장흥문화원 2017. 9. 25. 16:23

 

 

 

곤호리 고기로 젓갈을 만들어 팔았던 곤호리 부대, 지천마을 사람들
▶ 1938년 간척사업을 하기 전까지는 마을 앞까지 바다여서 거문도에서 고기가 들어왔다. 거문도에서 들어온 곤호리로 젓갈을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을 곤호리부대라고 불렀다.

 

 

그랑께 1938년경에 그 일본놈들이 간척사업을 했어. 1938년에 그 왜놈들이 간척사업을 해가지고. 그랑께 우리 부락까지 바다여. 그라다봉께 인자 바다가 없어지고 주업이 인자 농토로 변해부렀제, 앞이. 그라기 이전에는 거문도라는 그 섬, 우리하고 교역을 하다시피, 그 고기 이런 것을 갖고와서 우리 부락에서 팔고. 그랑께 주업이 말하자면 어업이었어, 그 당시에. 바다가 인자 우리 부락까지 대있으닌까. 그랑께 섬은 거문도 섬이고. 그래가지고 인자 우리 부락에서 그렇게 어업으로 생존을 하다가 1938년경에 일본놈들이 간척사업을 해서 육지로 둔갑을 해버렸제. 둔갑을 하다보닌까 인자 바다가 육지가 된 셈이제. 그래서 거기서 인자 농사일로 미맥이제, 쌀과 보리가 주 생산으로 해서 묵고 살제, 우리 부락에서. 젓갈이 거문도 섬하고 인자 할 때 그 곤호리, 인자 우리가 그 고기는 정확히 모른데 우리 이름으로 곤호리라고 했는디, 그것을 젓갈로 만들어. 인자 소금하고 절이먼 그 절이먼 젓갈이 됐어. 그걸 많이 팔로 댕겼어, 우리 부락에서. 젓갈루제, 그것이 젓갈루여. 그렇게 해서 인자 묵고 살고. 하여튼 나는 고기 이름을 정확히 모르제 인자, 군대생활 많이 하다가 늦게 들어왔기 땜에. 인자 어려서 듣던 그런 것이제. 그런디 인자 우리 말로는 곤호리 라고 그래. 우리 부락 사람들을 곤호리 부대라고 그렇게 칭하고 그랬어.

 

 

 

 

 

 

 

 

 

                                          지천마을과 간척지

 

 

 

 

 

 

 

 

 


자료번호 / 06_12_05_MPN_20161203_KJW_0001
제보자(구술자) / 김장원(남, 76세, 지천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