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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면

[안양면] 한 마을에서 서로 죽이고 살렸던 한국전쟁

장흥문화원 2017. 9. 25. 16:25

 

 

 

한 마을에서 서로 죽이고 살렸던 한국전쟁
▶ 한국전쟁이 나던 해 초등학교 4학년 이었다. 인민군이 내려오기 전 지방 폭도들이 마을사람 여럿을 잡아다 생매장해버렸다. 그러자 수복된 후 학도병들이 마을로 들어와 좌익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잡아다 바닷가에서 곡괭이로 때려 죽였다.

 

 

그때 우리가 초등학교 4학년 이었어. 그라닌까 그때 우리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닌까 여름에 인자 6·25, 인자 모 심어놓고 상댕히 자라고 그랬을 땐데. 인자 그 인민군들이 쳐들어온다 그란디 실지 인민군들은 없었어, 안 왔어. 지방 폭도들이여 인자. 그란디 우리가 그 가마니떼기 같은 거, 포대 같은 거 갖고 쩌그 들판 요런 데로 안보이게. 그런 데를 가서 내가 잠자고 들오고 아침이먼. 인자 만약에 와갖고 잡어갔까 무선께.
- (초등학교 4학년을 뭐 할라고….)
아니 내가 독자거든. 나뿐이 아니라 딴 사람도 마찬가지였어. 밤에는 피해댕게, 그라고 낮에는 아침이먼 인자 들오고. 인자 우리 아군들이 들왔을 때, 그때 해창에 정박해 와있었어. 인자 그때 내가 안 기억으로는 정박해 와있는데 그날 저녁에 우리 부락으로 들와부렀으먼 우리 부락 사람들이 피해가 없을 거인디. 그 때 한 육, 칠 명. 그러닌까 이 빨갱이들이 잡어갖고 어따 묻어부렀냐 그러믄 여그 서초등학교라고 있어, 옛날에. 수양 그 뒷골목에 갖다가 생매장을 해부러 생매장. 생매장으로 해서. 그래서 아침에 들온 것이여. 저 그 저녁에 잡어가부렀어. 그란디 어디가 살았는지 모르제. 그래서 인자 아침에 인자 정보가 들올 것 아니라고, 어서 들오든지. 그러닌까 거리 가본 것이여. 그러닌까 생매장해서 다 죽었어. 그랑께 죽은 사람이 우리 부락에서 한 오륙 명. 그래서 거가 죽은 곳이여. 그라면 그걸 누가 죽였냐 그라믄 같은 부락에 산, 서로 인자 말하자면 원수 맺고 사는 이런 경우드라고, 본께. 그러고 인자 죽어분 사람은 죽었드라도 인자 원망은 한 것이여. 그날 저녁에 오제, 왜 정박해 와갖고 거그 가서 해창에. 그때 배가 거그밲에 정박을 못 하닌까. 아 그래서 인자 물이 든께 정박하고 인자 우리 부락으로 들어온 께 아침에 모도 걸어들오제, 인제 모도. 걸어서 쭈욱 온디 환영은 우리가 하제. 피란 나갔던 사람들이 온 거인께. 어디로 갔냐 그러믄 거문도 같은데. 아까 얘기한 그런 데로 갔다가 인자 아침에 왔어. 그 사람들이 다 거그 가봉께 싸악 죽었어, 생매장해서. 그래가지고 인자 그거이 6·25여. 그래서 인자 어린께 따러만 댕게 우리가. 그란디 우리 부락이 회관, 지금 같으먼. 회관에다가 그 지방폭도들 이잉 이 사람들을 잡어다가, 왔다 들고 팬디. 누가 그렇게 때냐 그먼, 학도병이라고 그래 그 당시에는. 아조 머 상상을 못해. 회관에서 집어 땔고 꼭괭이 같은 걸로 땔고 그냥. 그란디 그거이 머이 좋아서 초등학교 4학년 된 놈이 따러 댕기고 실지가. 그래가꼬 그 이 저 한 사람은 쩌그 바닷가에 거까지 가서 꼭괭이 같은 거 때래갖고 죽에불고. 또 그 해창서 체보한 사람이 한나 있었어. 근디 그 사람도 거그 가담했다 해가지고 엄마나 때러부렀는가, 뿔뿔뿔 기어갖고. 지금 우리집 텃자리여. 아 거그 가가지고 똥물을 마악 그냥 들리고 마신, 그런 광경 인자 요런 것을. 결국 죽든마, 워낙 많이 맞아 논께. 인자 그런 것을 우리는 인자 생생이 기억하제 인자. 초등학교 4학년이라도.

 

 

 

 

 

 

 


자료번호 / 06_12_05_MPN_20161203_KJW_0002
제보자(구술자) / 김장원(남, 76세, 지천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