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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관산읍

[관산읍] 말뜻대로 된 만석꾼 터

장흥문화원 2017. 9. 15. 17:37

 

 

 

말뜻대로 만석꾼
▶ 용전마을에는 만석꾼 터라고 전하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말만 만석꾼 터지 실제 누가 집을 짓고 살지 않았다. 그러다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동네에서 창고를 지어놓으니까 거기에 쌀가마를 보관하게 되었는데, 9천800 몇 가마가 들어갔으니 거의 만가마가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그곳은 실제 만석꾼터라는 말뜻대로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별 소용이 없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동네, 만석꾼 터는 지금 창고가 지어져 있거든? 그 자리가. 그란디 우리 어렸을 적엔 거가 밭이여. 그래 갖고 밭을 벌어먹곤 하는데. 어른들이 상나무 앞에서 놀면서 그 터가 만석꾼 터라고 하거든? 그니까 만석꾼 터라고 하면은 동네 사람이 사서 돈 있는 사람이 거기다 집을 짓거나 밭주인이 집을 짓고 부자가 되거나 해야 쓸 거 아니여?

- (네, 그렇죠.)
그란디 집을 안 짓는 거야. 만석꾼 턴데.
- (말만?)
터라고. 말만 만석꾼 터제. 내가 면서기가 되었어 커가지고. 면서기가 되가지고 새마을 사업을 내가 보게 되었어. 그래서 그 때 대통령 하사금 사업이 있었거든? 돈 50만 원을 주면서 무엇을 느그 마을에 해봐라, 그래서 마을 이장 지도자들한테 50만 원 하사금 사업을 줄 테니 그 무슨 사업을 하나 하시오. 마을 회의를 해. 창고를 질 란다. 그래 창고를 진 거야 50평짜리 창고를. 거기다가. 그라고 인자 세월이 흘렀지. 좀 더. 정부 양곡이 엄청 매상해가지고 넘쳐 난 거야. 농협 창고는 부족해 부려. 걍께 마을 단위 창고까지 농협에서 임차해가지고 쟁해. 거기다가 그 매상을 해. 그래 갖고 저장을 하는데. 아니사까 만 가마니가 딱 들어가는 거야 거가. 50평 창고에. 우리가 9천 8백 몇 가마니까지 잡아 였어. 매상 가마니를. 만 가마니
- (와, 만 가마니 똑같네.)

그래서 거기는 만석꾼 터라고 내려왔지만은 창고터였다. 그거는 창고터다. 그래서 창고로 정부 양곡을 여면은 보관료가 나와. 그래서 마을에서 좀 마을자산이 조끔 불기도 하고 그랬제. 만석꾼 터에서. 그런데 인자는 매상을 안 하니까 비어 있지.

- (창고가요?)
창고가. 그래서 개인한테 임대차 조금 받고 해줬는데, 마을에서는 앞으로 그 계획이, 거기다가 전부 농사꾼들이 노인들이니까 창고에다가 저온 저장 시설? 나락 말리는, 그거를 몇 개 넣고, 또 지게차도 마을 것을 하나 장만하고 해 갖고, 노인들은 어서 말리기도 힘들고 또 말리믄 지게차가 없응께 동네 사람들 트랙터 있는 사람한테 쪼끔 부탁해 갖고 하고, 이런 애로사항이 많이 있어. 그 마을 꿈은 거기서 그 저장시절을 거기서 하고, 거기서 놔뒀다가 출하하고 그럴려고 하는데 그 할려면은 동네 자산이 없으니까 힘들어. 그래서 쫌 지원을 해주라고 그랬어. 그래 갖고 친환경을 제일 먼저 장흥서 시작해갔꼬 십여 년을 했는데 뭐 안 해 줘, 그래서 친환경이 너무 힘들어. 그랑께 올해 인자 포기해불고
- (으메)
안 해부러. 각자, 각자 알아서 해라 친환경….
- (용전, 용전에?)
몇 사람 할 사람들은 남에 마을에 가서 하는데 부쳐 갖고 너무 힘들더라고 왜 힘드냐 일지작성도 못해 노인들이 글씨도 못하는 사람도 있고
- (연로, 연로해서….)
연로하고 일지작성도 못 해 그라믄 책임자가 다 써줘야 되고, 이거 뭐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 책임자들이. 그래서 포기해 부렸어
- (그러면 창고는 50평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대로 있지. 거이 만석꾼 터였다.
- (어쨌든 9천 8백 몇 가마까지 들여왔으면, 뭐 어차피 만석꾼)

만석꾼, 그래서 옛날에 풍수학적으로 그런 것이 헛소리가 아니다.
- (그라믄, 그것이 박정희 대통령이었으면 70년대 초반? 중반? 아니면….)
70년대 중반 쯤 그 뭐시기를 했어.
- (창고는 또 인제 비어 있겠네요?)
인자, 개인한테 임대해주고….

 

 

 

 

 

 

 

 


자료번호 / 06_12_02_MPN_20160723_WCR_0001
제보자(구술자) / 위철량(남, 71세, 와룡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