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부산면 26

[부산면] 일제강점기 고초를 겪은 유량마을 유기장인들

일제강점기 고초를 겪은 유량마을 유기장인들 ▶ 유량마을은 주민들 사이에 ‘유기마을’로 통하는데, 조선중엽부터 1962년까지 마을전체가 유기를 제조하며 부유하게 살아갔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군들이 총알을 만들기 위해 유기 재료인 신주를 강탈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큰 고초를 겪었다. 한 유기장은 신주를 숨기고 일본군에 저항하다 절도죄로 유치장에 감금되었는데 억울함에 스스로 벽에 머리를 박고 자결했다. 옛날에 우리 마을이 집성촌이 아니라 타 성 간이 이렇게 모아서 사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마을 형성이 힘들었지. 그래 가지고 경주 김씨하고 여씨가 여그로 와 집촌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우리 마을이 조리 형국인데 담았다가 풀어 부니까 재산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어요. 그란디 우리 마을이 버드나무가 ..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재앙을 살피는 파수꾼 선돌

재앙을 살피는 파수꾼 선돌 ▶ 용반마을 주변에는 탕근바위와 각시바위를 비롯한 선돌이 여러 개 있었는데, 옛날부터 마을에 재앙이 많아 재앙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세웠다. 재앙이 오는 지를 살피고 미리 막아 주는 파수꾼 역할을 했다. - (옛날부터 마을에 재앙이 많았어요. 그래서요?) 저 위에 가면 탕근바구가 있고 각시바구가 있어. 저그에도 독이 있고 선덕골에도 독이 있어. 그런 것이 동네 모든 재액을 방지하는 방법이라고 했어. 당고개라고 있어. 거기에 별신당집이 있어. 신이 모셔져 있고 제를 지내려면 정월 보름에 지낸디 제를 지내려면 한 석 달을 지기를 한다고 해. 궂은 데도 안가고 인역 몸을 깨끗이 정결을 해. 애려서 보면 금줄을 쳐 놓고 고치도 달고 뭣도 달고 뺑뺑 둘러서 있었어. 그것이 일제 말이나 ..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길쌈으로 남매 키운 열녀

길쌈으로 남매 키운 열녀 ▶ 양촌마을 승강장 앞에 1987년에 세운 열녀비가 있는데, 자식인 김동기씨가 홀로 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세웠다. 어머니 홍점순씨는 24세에 시집와 남편을 여의고 주로 길쌈을 해 남매를 키웠다. 어머니가 열녀로 되었지요. 지가 돌도 안 되어 아버지를 여의였어요. 아버지 얼굴도 모르죠. 어머님이 24살에 혼담해서 저를 키웠어요. 어머님이 재가도 안하고 혼자서 누님과 나를 키웠지요. 승강장 밑에 비를 세웠어요. 그 전에 살림이 괜찮았어요. 그런데 큰아버님이 조부 돌아가신 뒤로는 술 먹고 노름으로 다 날려 버렸어요. 우리 집에 와서도 “막 너만 잘 살래?”하면서 그란 소리를 하시고 고생이 많았어요. - (어머님은 생계를 어떻게 하셨는지요?) 면배를 쌓지요. 길쌈을 해서 폴아..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독우재와 난정회

독우재와 난정회 ▶ 향토문화재 독우재는 구술자의 고조 할아버지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지은 초당으로 형제들과의 우애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독우재를 중심으로 유림들 사이에 ‘난정회’라는 시유회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독]자가 옥편에 보면 한 열댓 가지 뜻이 나와 있다. 도타울 [독]자인데 도타운 놈은 거짓이 없는 놈이고 성실한 놈이고 두터운 놈이고 그런 뜻이 담겨 있어. [우]자는 우애 [우]자여. 근데 이 초당을 우리 5대조 할아버지가 초당을 지으려고 생각을 했어. 근디 힘이 부쳤든가 초당을 못 짓고 87세에 돌아가셨어. 그 아들이 아버지가 초당을 못 짓고 간 한을 갖고 있어. 그래서 아들이 초당을 지었어. 우리 고조 할아버지가 형제가 3형제인데 초당을 요 자리가 아니라 이 우에다가 짓..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대학자 이수하

대학자 이수하 ▶ 이수하라는 대학자가 있어 효자마을과 호계마을에서 사철 서재를 운영하였다. 훗날 후학 유림들이 서운사라는 사당을 지어 스승을 추모했다. 이수하라는 양반인디 그 양반은 대학자여. 일제 때 양반인디 해방 후에 돌아가셨어. 이 지방에 있는 유생들은 다 그 양반이 가르쳤어. 우리 아버님도 그 양반 제자여. 이 아래 효자마을에 의열사라는 강당이 있는디 그 곳에서 사철 서재를 했어. 옛날에는 몽학들은 겨울철과 봄철에 한가한 때 서재를 했는데 대학자는 사철 서재를 했어. 그래서 외지에서 온 유생들인 외학들도 오고, 결혼해서 공부한 사람들을 간자라 했는데 그 사람들을 와서 배웠어. 효자마을에서도 했고 호계에서도 서재를 많이 했어. 제자들이 후에 사당을 했어. ‘서운사’라고 창사를 하고 제자들이 모금해서..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남편 따라 죽은 용두산 백단초

남편 따라 죽은 용두산 백단초 ▶ 이태균 어른신의 진고모님이 혼례를 한 후 전통에 따라 1년 동안 친정살이를 했는데 부부가 사랑이 깊어 중간에 진고모부가 상사병으로 돌아가시자 진고모님이 용두산 백단초를 달여 마시고 남편을 따라갔다. 현재 진고모님의 비가 우봉마을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진고모님)이 결혼식을 올렸는데 1년 익혀가지고 한단 말이여. 옛날 결혼 방식은, 아주 어려운 사람들은 그라지 않는데 잘살고 가풍을 지키는 집안은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1년을 익혀서 가. 친정에 있었는데 진고모부님이 간혹 와 인자. 자기 부인 보고 싶으면 와야제. 그랑께 요새로 말하자면 연애도 아니고 사랑을 깊이 할 수 있는 기간을 준거여. 젊은 세대는 모른데 우리도 그라고 왔거든. 나도 1년 묵혀서 왔어. 그런 시대인데..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거북이 살구나무 정자를 타고 올라간다고 등구정

거북이 살구나무 정자를 타고 올라간다고 등구정 ▶ 구정마을은 거북이가 살구나무 정자를 타고 올라가는 형국이라고 해 원래 ‘등구정’이었다. 마을 형국이 천석꾼이 나올 형국이라는 얘기가 전해 내려왔는데 실제로 천석꾼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신 농협창고가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이 거북 형국이라고 해. 그란디 옛날 구학도 좀 하고 하는 양반이 지나가시다가 여그서 하루 저녁 주무시게 되었는디, “거북이면 모래가 있어야 살 것인디”라고 했다고 해. 그래 “아니 여그 ‘매사등’이라고 있다”고 했대. 모래 [사]자, 거그가 모래등이여. 그라면 또 선비 말이 “살구나무가 있어야 쓸 것인디” 그라드라고 해. “아 여기 ‘살구쟁이’가 있다”고 했대. 이 뒤에가 살구쟁이여. ‘아 그래서 거북이 사는구나!’ 그 양반 말이 딱 맞아..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한국전쟁 중 지천리 민간인 학살사건

한국전쟁 중 지천리 민간인 학살사건 ▶ 1950~51년쯤 한국전쟁 와중에 당시 9세였던 구술자가 목격한 경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억이다. 구술자는 지천리에 살았는데 어느 날 경찰과 학도병이 마을에 들어와 반란군 대장 1명과 주민 12명을 사살하고 집집마다 불을 지른 장면을 목격했다. 구술자는 반란군은 주민들을 죽이지 않았는데 경찰이 주민들을 죽였다고 기억했다. 지천리 526번지, 옛날에는 갑골이지. 내가 9살 때 그때가 9월 달이였어. 나락이 익어서 수확할 판이었어. 우리 집이 잘 살아갖고 반란군들 13명에게 밥을 해 줬어. 밥을 한참 먹고 있는디 경찰들이 뒷산 앞산 싹 다 포위를 해 부렀어. 밥을 묵은디, 내가 가만 보니까 내가 아는 어르신이 한 분 계셨어. 고개를 자웃자웃 해 싸더라고. 앞산에서 ..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임계을 목사의 은행나무

임계을 목사의 은행나무 ▶ 양주목사를 지낸 임계을이 양촌에 낙향 후 마을에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은행나무가 융성하면 후손들이 잘 될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실제로 후손이 번성하였다. 또 은행나무 아래는 목사정이라는 우물이 있었는데 물을 끓이면 파란빛을 띄었다. 물이 좋아 주변 마을 사람들 모두 사용했다. 그런데 400년가량 전에 이웃하고 있는 유량마을 사람이 은행나무 그늘이 비친 우물물이 좋지 않다며 은행나무를 베어냈는데 벼락을 맞아 죽었다. 그 이후로는 은행나무를 훼손하는 일이 없었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우리 15대 조부님께서 양주 목사를 하다가 낙향하셔 갖고 양촌에 거주하시면서 앞에다 은행나무를 심었어. 그 은행나무가 융성하니 크면 우리 자손들이 잘 될 것이라고 유언으로 남겼어. ..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흉사가 있으려면 우는 사장나무

흉사가 있으려면 우는 사장나무 ▶ 마을 앞 신작로 옆에 팽나무 사장나무가 있었는데 마을에 흉사가 닥칠라치면 울었다. 무당이 굿을 해서 사장나무를 달래면 흉사가 마을을 피해갔다. 현재 원목은 바람에 쓰러져 죽었고 뿌리에서 새순이 돋아 자라고 있다. 100여 년 전에 왜정 때, 이 앞에 신작로가 있다고 잉, 이 옆에 사장나무 큰 고목이 있었어. 그란디 마을에 불안한 거시기가 있으면 나무가 울어. 소리를 내고. 그 당시에는 이 마을에는 무당이 살었제. 징을 치고 굿을 하고. 그 뒤에 나무가 우는 소리도 안 하고 그랬제. 팽나무였는데 두 아름 정도 되었어. 도로를 낼 때 왜놈들도 그 나무를 못 비고 옆으로 길을 냈제. 지금은 원목은 바람에 쓰러져 죽어 불고 뿌리에서 새순이 나왔어. 원목은 4~50년 전에 바람에..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300년 전통의 호계마을 별신제

300년 전통의 호계마을 별신제 ▶ 호계마을에서는 300여 년 전부터 별신제를 지내며 마을의 평온과 풍년을 기원해 오고 있다. 그 때문인지 호계마을은 동학농민혁명, 6.26전쟁 등을 겪으면서도 주변 마을과는 달리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우리 마을이 30대 이상 지내 왔으니까 600년 이상 된 고터란 말이여. 본래 이 마을이 한 130~40호까지 되었어. 마을 형성 당시에는 4개 성씨가 살았어. 청주 김씨, 광산 김씨, 낭주 최씨, 천안 정씨 그렇게 4성이 모여서 형성이 되었어. 당시에는 지금 마을회관 자리가 하천이여. 40~50년 전에 수해가 나서 복구가 되어 제방이 형성 되었는데, 지금 현재는 60~70호가 살고 있어. 이 마을 지형이 뒷산이 호체여. 그래서 호랑이 [호] 시내 [계]라 해서 호계..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할머니가 반란군 노릇을 하거소? 금메!

할머니가 반란군 노릇을 하거소? 금메! ▶ 한국전쟁 중 유치면 오복리 사미동과 부산면 성자마을 인근 지역에서 겪은 경찰에 의한 피해에 관한 증언이다. 6·25 때 내가 8살인가, 10살은 못 되어. 여그 부산면 물 건너 산 밑에 집 두 채가 있었는데 내가 거그 살았어. 우리가 8남매 인디 놈의 집으로 소개 나와서 산디 그 우게가 총을 놓고 난리가 나 갖고 우리 아버지는 영락없이 죽게 생겼다 싶었지. 죽지는 않았는디, 우리 집 사는 할머니하고 우리 아버지하고 둘이만 어른이라고 어째게 두들겨대든지. 다 기억해요. 큰방 아재가 친척이었어. 그 아재가 지게 삐빵끈을 해 갖고 짊어지고 어디 갈려고 했는디 어쨌는지 삐빵끈을 만들어서 놓아뒀어. 순경들이 그 삐빵끈을 보더니 반란군 짐 맡아 놓았다고 어디 짊어지고 갈라..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구전노래 꽃아 꽃아 국화꽃아

구전노래 꽃아 꽃아 국화꽃아 ▶ 구술자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배운 노래로 지금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면 흥얼거리곤 한다. 울 엄마가 가르쳐 준 노래다. (이하 노래) “꽃아 꽃아 국화꽃아 삼월 봄철 어따 두고 구시월에 홀로 피냐 나도야 귀한 이인데 때만 맞춰 반만 피네“ 나 혼자만 부르제. 어디서 이렇게 불러 본 적도 없어. 내가 애려서 엄마한테 노래 하나 가르쳐 달라고 하니 우리 엄마가 이 노래를 부르더라고. 지금도 죽은 엄마 생각나면 나도 모르게 이 노래가 속에서 나와. 성자마을 자료번호 / 06_12_09_FOS_20161116_PGR_0001 제보자(구술자) / 박경림(여, 75세, 성자마을)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호랑이가 밤길을 지켜주더라고

호랑이가 밤길을 지켜주더라고 ▶ 호랑이가 집에 돌아오는 길을 지켜 주었다는 경험담이다. 집에를 와야 되는데 광주에서 기차를 타고 보성으로 왔어요. 이 앞에는 버스 타는 차편이 없으니까 보성에서 오는 버스 편을 타고 호계마을 내렸는데 산 밑으로 들 가운데로 길이 되어있어요. 인제 강변으로 올 때에는 산 밑에요. 산하고 접해 있으니까. 그런데 뭐이 꼭 따라온 것 같애. 뭐이 사박사박 따라온 것 같애. 그런데 나는 뒤도 못돌아보고 컴컴한 밤중이라 뒤도 못돌아보고 걸어오는데, 거그 그때 사람이 살았거든요. 지금은 없지만. 거기 오니까 없어지는 거에요. 계속 따라오는 거에요. 그냥. 그래갖고 인자 거기 오니까 없어져서 내 몸을 보니까 온몸이 땀이여. 땀에 젖어가지고 집에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어른들이 “호랑..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천석꾼의 제 논에 물대기

천석꾼의 제 논에 물대기 ▶ 마을에 천석꾼이 있었는데 힘이 센 일꾼을 별도로 고용해 제논에 물을 댔다. 우리 마을에 천석꾼이 있었는데 일꾼을 여러 명 데리고 농사를 했어. 일꾼 중에 힘이 센 사람을 골라 물만 대도록 했는데, 천석꾼이 “너는 밥만 먹고 똘로 왔다 갔다 하면서 물만 대라”고 했다고 해. 누가 함부로 못해. 박치기로 박아불고 해서. 천석꾼들이 그렇게 농사를 짓고 그랬어.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물 사정이 아주 어려웠어. 농사짓기 어려웠어. 물 확보가 중요했어. 물싸움도 그냥 한 것인가? 술잔이나 묵고 그라고 다니면서 싸움을 해야제. 그 사람이 물 대고 있으면 다른 부락 사람들이 물을 트질 못해. 그 사람이 들어가면 몰래 트고 그라제. 자료번호 / 06_12_09_FOT_20161117_WWG_..

부산면 2017.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