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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면

[유치면] 하룻밤 도깨비 공사로 생긴 신풍마을 터

장흥문화원 2017. 10. 26. 10:04

 

 

 

하룻밤 도깨비 공사로 생긴 신풍마을 터

▶ 신풍마을의 옛 이름이 새터인데, 도깨비가 하룻밤 사이에 하천을 메워 마을 터를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마을을 신풍1구라고 하는데 옛날 어른들은 새터라고 그라다가 다시 신기라 했다가 다시 신풍이 되었어요. 신풍이 다시 1구 2구가되고 분구가 되고 했는데, 신풍 새터 일 때는 신풍이 지금 동쪽서쪽 그랍니다. 그런데 동쪽에가 집이 몇 채가 살고 있었는데 그때 사람들은 안씨, 송씨 그라고 인제 양씨, 이 성씨들이 살았다고 그래요. 그라다가 이조 중엽에 남평 문씨들이 입촌을 하면서 남평 문씨 자자일촌이 되었다가 근래에는 현재 남평 문씨가 거의 떠나고 몇 집이 없습니다. 우리마을이 왜 샛터였나하는 얘기는 옛날에 우리 마을 가운데로 서쪽은 완전히 하천이었다고 그래요. 우리가 어렸을 때 서쪽에 문재식씨 집터가 있는디 그 집터가 큰 서재였다고 해요. 옛날엔 학교가 없으니까 일제시대 서재를 없애고 현재의 학교가 생긴거 아닙니까. 그땐 큰 서재였어. 그 서재입구를 보믄 우리 아름드리 두 아름드리가 넘는 편나무가 있었어요, 어른들 얘기가 “그 편나무가 그 하천에 큰물이 질 때 떠내려와서 걸려가지고 성장을 했다” 그런 말씀들이 전해오고 있고 동네 가운데로 큰 하천이 조양 상류천에서 흘러온 하천이 현재는 한치 인암마을에서 온 하천하고 합류가 되어가지고 원등 쪽에서 굽이쳐서 흐르는데, 옛날에는 각자 신풍마을로 상촌 쪽에서 흐르는 물이 흘러서 갔기 때문에 신풍마을이 옛날에는 동쪽만 존재했어요. 그랬는데 어느 날 저녁에 큰 대홍수가 져가지고 주민들이 들어보니까 도깨비가 나와가지고 도깨비불이 왔다갔다하고 막 영차영차 소리가 나고 저녁내 작업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해. 아침에 눈을 떠서 보니까 비도 갰는데 보니까 오늘날 하천 같이로 인암에서 오는 하천하고 상촌에서 내려온 하촌하고 합류가 되가지고 새 물길이 나분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터가 새로 형성이 되니까 ‘새터’라 했다가 다시 신기라 했다가 다시 새로 일어난 터라고 해가지고 신풍이라고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도깨비란 것이, 신풍 만물수퍼 앞에가 다리가 있는디, 6·25 사변 전전일이죠. 거기 있으믄 어른들이 그래. 이따금 불덩이가 날라 가. 사람 혼불이 나간다고. 우리도 본께 불이 그냥 확 솟구쳐 가다가 떨어지는 걸 봤어요. 우리 원등마을 뒤에 학교 있는디 학교 뒤쪽이, 옛날에는 병원이 없으니까 부모들이 여러 남매를 출산을 해도 그 중에서 살 자녀는 몇이 안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사망하고 그라믄 옛날에는 장례를 제대로 지내는 것이 아니고 대발로 싸서 학교 뒤 꼴창에다가 땅도 파도 안하고 돌무더기로 덮어놔부렀어요. 그래가지고 그쪽이 가장자리 꼴창이라고 그래. 어려서 비가 올려고 하면 애기 울음소리가 나요. 도깨비불이 댕기더란 말이여. 나뿐이 아니라 본 사람이 많애. 전기가 들어온 뒤로는 그런 것을 구경을 못하고 그랬는디. 신풍1구에 도깨비가 하천을 옮겼다… 진실인가 거짓인가 모르겄지만 지금도 하천이 흘렀다고 한 데를 공사 할라고 땅을 파헤쳐보믄 완전히 하천이여. 자갈이 있고 물이 금방 솟아오릅니다. 그런 것을 봐서는 사실인 것도 같고 설화인 것도 같고 단언은 못 내릴 전설이 있습니다.

 

 

 

 

 

 

                                               구술중인 문평섭씨

 

 

 

 

 

 


자료번호 / 06_12_08_FOT_20160712_MPS_0004
제보자(구술자) / 문평섭(남, 77세, 신풍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