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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면

[부산면] 신라 원감국사가 기도하던 병풍바위

장흥문화원 2017. 11. 8. 09:19

 

 

 

신라 원감국사가 기도하던 병풍바위
▶ 자미마을 병풍바위에는 마애여래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주민들은 이를 원감국사의 상이라고 말한다. 옛날 일지승이 명당을 찾아 헤매다 자미동에 들어 왔는데 병풍바위 굴에서 원감국사의 행적을 발견하고 상을 새겼다는 얘기다.

 

 

일지승이 계셨는데, 그 분이 명당을 찾으러 이 고을로 들어왔어요. 거기서 하신 말씀이 ‘입자미동 유두공지풍 반반어석흔 유고인지적’이란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말을 풀이를 하면 ‘자미마을에 들어서니 옛 두공부의 풍속이 있고 바위에 나타난 뚜렷한 흔적은 고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는 뜻이거든요. 자미동이라는 것은 옛날 당나라 문궐인 두공부 그 분을 얘기한 것이고 고인이라는 말은, 원감국사가 계셨는데 그 분을 지칭한 말이었어요. 그분들은 모두 고려초 신라말 인물인데 그 때부터 우리 마을이 개촌 된 것으로 추측합니다.
- (일지승이 어떤 분인지요?)
일지승이 벼슬을 하다가 상처를 하고 후처를 얻었는데 후처가 전처 자식을 박대했던가 봐요. 글로 인해서 이혼을 하고 손꾸락을 잘라버렸어요. 이를테면 자기 죄를 반성한다고 할까 손끄락을 짜르고 손가락 하나만 남았어요. 그래서 일지승이라고 해요. 그 후로 절로 들어갔지요. 그 분이 풍수지리를 잘한디, 명당을 찾아다니다 보니까 여그 와서 고인들의 흔적이 바구에 남아 있으니까 아까 같은 글을 남겼어요.
- (병풍바위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요?)
원감국사가 오셔서 굴이 있거든요. 그 굴에서 기도를 했든가 어쨌든가 여기 오셔서 불교를 전설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분이 바위에다가 화상을 각을 했어요. 각상을 한 것이 뭣한 사람은 원감국사 상이라고 하고 전라남도 문화재 뭐시기로 봐서는 마래여래상이라고 해요. 그러꿈 되어 있습니다. 그라고 병풍바위 옆에 벼슬바위 끝자락이지요, 거기에 초당을 지었어요. 지은 사람 이름을 잊어 버렸네. 그 양반이 천석 부자였어요. 용두마을에 살았거든요. 바짝 이웃 마을에. 거기다 초당을 지으면서 7년 연차 겨울을 지었어요. 이를테면 곡수를 받아다가 짓다가 떨어지면 중단해 놓고 그 이듬해 곡수를 받아다 짓고 해서 7년간에 거쳐서 초당을 지었는데, 거기에 미친 사람이 있었어. 그 분이 주로 거취 했었죠. 그 건물을 해방 후로 기동마을로 뜯어다가 ‘경호정’을 지었어요.
- (초당이 언제 지어졌는지요?)
우리 7살 땐께 해방 전 왜정 때 지었어요. 해방 후로는 장흥의 관광지로 되었어요. 그러다가 여순반란사건 나면서 공비들이 산으로 올라가서 은신한 통에 관광지로 폐지되었어요. 안 다닝께. 공비들이 무서워서.
- (초당을 지은 사람 이름은 모르세요?)
위씨여.

 

 

 

 


자료번호 / 06_12_09_FOT_20160727_KIH_0002
제보자(구술자) / 김인환(남, 85세, 자미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