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흥읍 77

[장흥읍] 문화당 서점에서 일어난 일

문화당 서점에서 일어난 일 ▶ 서점을 하다보면 책도둑이 많았다. 한번은 유치까지 책도둑(학생)을 잡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일도 있었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주로 학교선생님들이 단골로 많이 오셔서 사랑방 역할도 했다. 한때는 장흥 10개 읍면에 서점이 모두 있어서 책을 보급했고 심지어 보성, 강진, 영암, 금당, 금일도까지 가마니로 책을 싸 새내끼로 묶어서 지나는 버스로 배달했다. 6·25때 아버님은 아마 6·25전에 서울을 가셨는가는 모르겠는데 전쟁 중에도 학교가 운영이 되고 교과서가 보급되고 그랬는데. 6·25전쟁 때는 일시적으로 대구 쪽으로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가 이전을 했고, 보급을 할 때는 부산에서 배로 장흥 수문포로 왔다고 그래요. 그래서 수문포에서 책을 가져오시기도 하셨고 그런 와중에 다..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문화당 서점의 역사

문화당 서점의 역사 ▶ 문화당 서점은 1945년, 지금은 돌아가신 최인창씨가 시작하여 지금은 아들 최경석 씨가 72년째 운영하고 있다. 장흥에도 70년대에는 진학서점, 문우당 같은 서점이 있었으나 지금은 문화당과 상문당, 두 개의 서점이 있다. 우리 서점은 저로 보면 고모할머님부터 시작을 하셨는데 정확한 연도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버님께서 여기저기 기록해놓으신 걸 보면 아버님 스스로 서점을 직접 운영한 것이 아마 1945년, 46년인가 싶어요. 그래서 현재 이 자리가 1979년도에 새로 지어가지고, 원래 있던 자리를 새로 지어서 했는데 그때가 79년도니까 그 이전, 79년도 이전의 상황이 35년 됐다고 아버님께서 기록을 하신 걸 보면 1945년, 46년 이렇게 아버님 스스로 사업을 시작하셨던 것 같습니..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웅장한 소나무가 서있던 석대동산

웅장한 소나무가 서있던 석대동산 ▶ 예전에 웃석대에는 웅장한 소나무 여러 그루가 서있는 동산이 있었다. 언젠가 모두 베어버려 묵정밭이 되었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 남외, 충렬, 교촌마을 아이들이 모여 놀고는 했다. 지금 아릿석대에는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근게 지금 우리가 지금 볼 때 이 석대, 이 동산 석대동산이 지금 이렇게 죽정밭으로 된 게 아니고 대가 없었어요. 그때는 일부 이쪽에만 좀 있었제. 마을 쪽으로만 있었제. 그때는 이 한 몇 백 년 된 소나무들이 한 열 몇 그룬가가 참 웅장하게 있었는데. 6·25 닥쳐가지고, 아니 해방 후 또 6·25 후로 어떻게 해서, 마을에서도 주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 몇 백 년 된 소나무가 소멸 되아 브렀어. 그 후로부터 완전히 이 동산이 댓밭으로 그..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고싸움, 서부가 이기면 풍년 동부가 이기면 흉년

고싸움, 서부가 이기면 풍년 동부가 이기면 흉년 ▶ 예전에 장흥읍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정월 대보름이면 석대동산 넘어 도로변에서 고싸움을 했다. 고싸움과 줄다리기를 해서 서부가 이기면 풍년이 들고 동부가 이기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이 이어져왔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장흥읍에 과거에 정월대보름이면은 동부와 서부가 나나져가지고. 그 어르신들이 근 한 달 동안 곳줄을 마을별로 준비를 해가지고, 이 곳줄을 취합을 해서 정월 대보름날이면은 바로 이 석대전 너머에서 동산 너머에서 도로변에서. 물아래 고 물위에 고. 동부 서부가 고싸움을 해가지고 동부가 이길 때는 풍년이 든다했든가, 그랬든가 어챘든가. 우리가 암꼬, 이 서부는 암줄이고 동부는 수줄이고. 그래갖고 이 고싸움을 해가지고 서부가 이기면은 그 해 풍년이..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사장나무 아래 이백근 들독

사장나무 아래 이백근 들독 ▶ 마을 사장나무 아래에는 지금도 들독이 있는데 지나가던 강진사람들도 들어보고 여름이면 쉴 참에 들고는 했다. 경지정리하면서 도로 이쪽으로 났어. 여그 걸어댕김서, 강진사람들이 요리 해서 자울재 올라가면서, 쩌 길이 땅 밑으로 저 화단에 그리가 길이 있어. 사장 저그가 들독이 있는디 그 들독을 전부 맨마니보고 들어볼라고 그라고 젊은 사람들이 들고 했다고 그래. - (들독이 지금도 있어요?) 있죠. 아 그때 우리는 안 들어봤어. 스무 살 와 갖고 객지생활 한다고, 여름이면 모다 초군들이 앉아 놀면서, 난 안 들어봤어. 그걸 보듬고 요러꾸 보듬아서 냉기고 그랬다두마는. 그란께 우리동네 산 사람이 누가 들어서 뒤로 냉긴 사람이 있다 그 돌을. 한 200근 될 거여, 보기에는 그래도...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강진과 장흥 경계에 있는 호랑이바우와 사자산

강진과 장흥 경계에 있는 호랑이바우와 사자산 ▶ 호랑이바위가 있는 사인정은 장흥과 강진 경계인데 동쪽으로 큰 사자산이 있어 호랑이바위가 맥을 못춘다. 저것 보고 말허자면 호랑이 바위[송암마을 사인암을 가리키며], 사인정이라고 그란디. 왜 저가 사인정이라고 하느냐 하면 사인벼슬 하신 분이 아 저 거시기 했다 그래서 사인정 전각이 있어, 사인정. 쩌기 저저 강진하고 장흥, 거그도 등(산등성이)으로 내려옴시로 전각이 있는디 그 전각은 거가 경계선이여, 강진하고 장흥하고. 그래 가꼬 말이 그 전에 장흥서 밥 해가꼬 강진 가 묵고 강진서 밥 해가꼬 장흥 가 묵고, 방이 부엌하고 방하고 틀린다 해서 그런다고…. 그라고 쩌그, 호랑이 바위라고 그란디. 저 사자산이 있어 가꼬, 이 바위가 맥을 못춘다, 쩌그 저 금산가..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금안마을 유래와 장군바위

금안마을 유래와 장군바위 ▶ 황씨가 먼저 터를 잡았고 그 뒤 영광 김씨가 자자유촌 살아온 마을로 지형상 장군바위와 말안장 형국이라 금안(金鞍)이라 불렀다. 원래는 황씨들이 300년을 살았다 한단디 설화 내용이 아예 근거가 없어요. 그래서 저쪽 사장나무가 그 무렵에 아무케나 5~600년 나머 됐다고 봐야 되는데 그 내용은 아는 게 없고. 근데 유래에 대해서 보며는 영광 김씨가 여그 묵촌에서 오셔가꼬 묵촌에서 이리 오셔가꼬 터를 잡았는데 영광 김씨 자자유촌이고…. 여기 마을 지형 상 금안리라 그랬는데 쇠 금(金)자 안장 안(鞍)자 금안리라고 그랬는데 지금은 기만리 기만리 그래요 발음하기 좋게. 행정구역 상 평장 2구이고. 왜 금안리라고 그러냐면 쩌어[마을 뒷산을 가리키며] 이 등에 쩌그 올라가믄 장군바위라고..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싹바위와 닥바위

싹바위와 닥바위 ▶ 마을 앞 들판에는 닥바위와 병아리바위가 있고 이를 노려보며 마을 뒷산에는 삭바위가 있다. 지금도 마을에서 닭을 키우면 삵이 와서 물어간다. 요 위에 가면 바로 대밭 우게가 싹바위라고 큰 바위가 있어.[마을 동쪽 뒷산을 가리키며] 싹바위, 쌀가지 삭바위 삭바위 라고. 요즘에는 삵이라고 하든마, 쌀가지를. 싹바위 라고 있고 이 앞에 바위, 논에가 바위 있는 거 저기 닥바위라고 그라고.[마을 앞 서북향 논을 가리키며] 그래서 그 전에는 그 부근에가 사람이 못 짊어질 정도로 큰 바위가 많이 있었어. 그래서 병아리바위라 그랬는데 그 병아리바위를 저 논 주인이 싹 깨서 인자 캐내 불고 묻어 불고 파서 궁글러버리고 그래 가꼬 그게 없어져 부렀어. 그란디로 저 바위가 싹바위가 벌어졌어. 그렇게 벌어..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인공시절 장동 산골에서 살던 새색시

인공시절 장동 산골에서 살던 새색시 ▶ 인공시절 장동면 산 속 새색시의 집안은 큰 부자라서 낮에는 경찰들이, 밤에는 반란군들이 많이 찾아와 돈과 이불과 쌀과 먹을 것을 내놓아야 했다. 장동 산골에서 1년을 살고 집을 뜯어와 월평에 다시 짓고 살았다. 전에 우리 삼대가 살았어 시집 와서, 삼대가. 삼대자네 나 사대 있는 데로 왔어. 조부님이 둘입디다. 함머니는 그 해에 돌아가시고, 봄에 시집 왔는디 열아곱에 시집 왔는디, 함머니는 돌아가시고 할아부지가 두 분이여. 우리 증조함머니는 돌아가시고 나 오든 그해 봄에 돌아가겠다, 돌아가시고. 하네는 두 분이 제겠써. 그래가꼬 전에 그라고 그 냥반들 모시고 살었제. 밥상을, 끄니믄 한 끄니믄 밥을 상 일곱 석을 놔아. 각까이 각까이. 전에는 그러코롬 저금 저금 다..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서남지구 전투 경찰대와 육십명재

서남지구 전투 경찰대와 육십명재 ▶ 한국전쟁 때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5연대에서 전투에 참여했다. 지리산 육십명 재는 전라북도 장수와 경상남도 함안의 경계인데, 육십명 이상 지나가야 피해를 안 입는다고 옛날부터 부르던 이름이다. 그때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파리 목숨보다 못 했다. 내가 17살 때 여그를 왔어. 해방된 뒤로제. 그렇게 마니는 안 살았제. 그렇제 농사제. 여그는 농사밲에 없어 원래가. 나는 인자 농사 짓자네, 인자 중학교 중퇴를 해가꼬 서남지구 전투경찰대를 갔어, 내가. 남원 서남지구 전투경찰대에 있어가꼬 지리산에서 그 아주 고생 많이 했제. 공비토벌. 그랄 때는 고생했다는 얘기를 말 할 수가 없어. 아조 에로왔제. 하아 거그는 그랄 때는 그 그 사람들은 따발총을 갖고있겠지 원래...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제암산 제바우와 사자산 시루바우, 사자산 여우와 늑대

제암산 제바우와 사자산 시루바우, 사자산 여우와 늑대 ▶ 제암산 상봉에는 덕석 삼십 장을 깔 정도로 넓고 큰 제바우가 있고 사자산에는 시루같이 생긴 흔들바우가 있다. 사자산에서는 여우와 늑대가 살았다. 제암산 제일 상봉에 제바우가 큰 바위가 있어요. 아니 그 올라가믄 그 이 좀 울뚝불뚝하기는 해도 거따가 물이 고인데도 있고. 그래가꼬 거기 올챙이가 산 데도 있고. 그리고 그 얼마나 바위가 거자 이 근방 또랑이나 될꺼요.[정자나무 근처 전체를 손가락으로 둥글게 그리며] 굉장히 넓어요, 제암산 그 꼭대기 거그를 올라가믄 굉장히 넓어요. 덕석을 삼십닙를 깐다 해쓰까. 하여간 겁나 커, 범위가 겁나 넓어, 꼭대기 올라가믄. 거그서 올라가서 점심도 묵어 보고 거기서 인제 나무 비닌까요. 나무 비다가 점심 묵고 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달이 떨어진 자리, 월락평(月落坪)

달이 떨어진 자리, 월락평(月落坪) ▶ 언젠가 일지스님이란 분이 마을을 지나다가 달이 떨어진 자리라 해서 월락평이란 이름을 지어주며 만 호수가 살 것이라고 했다. 옛날에 일지스님이라는 중, 그 명도사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아 여기가 만 호가 들 자리다, 만 호수, 호수로 해서 만호가 될 자리다.” 이렇게 말을 하고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만호가 되기 위헌디, 그 분이 월락평이란 이름을 줬어요, 이 마을을. 월락평이란 마을을 이름을 줘가지고. 달 떠러진 자리. 달 월(月)자, 떠러질 락(落)자, 들 평(坪)자. 달 떠러진 자리라 해 갖꼬 만 호를, 달 떠러진 자리를 채울라며는 만호가 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각 처에서 이 달 떠러진 자리를 찾기 위해서 각 처에서 모여드렀써..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가뭄에 억불산에서 지낸 기우제(祈雨祭)

가뭄에 억불산에서 지낸 기우제(祈雨祭) ▶ 날이 가물어 비가 안 오면 각 마을에서 푸나무를 해가지고 억불산 며느리바위 상봉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가무러 가꼬 날이 가무러부러 가꼬 비가 안 오며는 인자 비를 빌기 위한 빌 [기]짜 기우제거든. 비 [우]짜 그래가꼬 기우(祈雨)젠데. 한 번인가 봐러 가 본 적이 있어요. 그래가꼬 거기를 가며는 전부 나무를 해갖꼬 올라가드만요. 나무를, 푸른 나무를 여기서 낫으로 비어가꼬 올라가요. 그래가꼬 장흥읍에서 주최를 해가꼬 읍장이 아마 주관해쓸 거예요. 읍장이 주관을 해가지고는 인자 올라가면서 그 푸나무 그걸 해가지고는 거기다 풀을 엉거서. 그랑께 각 마을에 전부다 모이닌까 굉장히 나무가 많지요. 나무가 수십 뭇, 그렇게 나무가 많이 든디. 그 나무를 전부 그 기우제..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월산재와 연곡서원 성암 선생님

월산재와 연곡서원 성암 선생님 ▶ 월평마을 출신 성암 선생님은 연곡서원에서 제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그래서 그 제자들이 추렴을 해 월평마을에 비를 세웠다. 우리는 마을 서당 월산재에서 글을 배웠다. 하지만 여자들은 편지 쓰고 연애한다고 서당에 나오지 못하게 했다. 월산재는 옛날에 우리 마을에 서재를 했는데, 마을과 같이 마을 생길 때부터 서재가 있었어요. 그런디 그 서재를 월산재라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로고 그 월산재에서 따온 이름이 지금도 월산경로당이라고 월산, 월평마을 경로당을 월산경로당이라고 하지요. 그런디 월산재에서는 거어 선생님이, 성암 선생님이라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장흥에서는 제일로 글 잘하는 그런 유명한 선생님이었어요. 근디 그 냥반은 월산재에서는 서재를 선생님을 안 했고, 월산재는 신..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도깨비불과 귀신바우

도깨비불과 귀신바우 ▶ 어느 날 시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읍에 사는 친척에게 돼지고기를 주었는데 도깨비가 안양 가는 미륵댕이로 데려가 고기를 빼앗아 갔다. 귀신바우를 지날 때 두 손을 움켜지고 씩씩하게 걸으니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마을 앞에서 모다 어른들이 앙거서 노라요. 그라므는 비가 올라 갈므는 쩌어 안즌멀데가 소나무 서너 개 있는 데가 마악 도깨불이 뻔득뻔득뻔득뻔득뻔득 마니 그래요. 그라믄 그 뒷날 장에 감서 거리 가블믄 소나무만 있제 도깨비는 한나도 없고. 인자 언제 한번은 우리 시아버니 바깥 지사를 지냈제. 읍에 사는 우리 친척이 왔는디 자전거를 타고 왔더라고. 아니 자전거를 타고 왔등가 기앙 왔등가 모르것네. 그래서 인자 디아지고기가 많에. 그래서 디아지고기를 짤라서 쌩 것을 싸줬제...

장흥읍 201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