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흥읍 77

[장흥읍] 고려 때 장원급제한 위씨 삼형제가 공부해서 장원봉(壯元峯)

고려 때 장원급제한 위씨 삼형제가 공부해서 장원봉(壯元峯) ▶ 고려 때 위원개 등 삼형제가 장원봉 밑에서 공부하여 장원급제를 했다 해서 장원봉이라 이름을 지었다. 지금도 형제들이 먹었던 통샘 물이 흐른다. 듣는 얘기로는 이 고려 때 위원개 씨 그분께서, 관산 위 씨잖애, 장흥에는. 근데 그 삼형제 분이 쩌기서 장원봉 밑에서. 그때는 인제 고려 때는 장원봉이라 했는지 모르지만은 급제 장원급제를 했다 해서 장원봉이라 한 거여. 위원개라는 분이 장원급제를 했어. 장원급제를 해가꼬 인제 그분이 인제 오늘 인제 그 분이 중간에 그 스님이 됐던가 봐요. 스님이 중이 되어서 인자 송광사에서 스님이 됐어. 그래가지고 송광사에 십육 국사가 났잖아요. 여섯 번째 국사가 원감이라는 호를 받아가지고 나라에서 원감. 원감국사라..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한국전쟁 때 산사람 친구가 살려준 소방대원 형님

한국전쟁 때 산사람 친구가 살려준 소방대원 형님 ▶ 한국전쟁 인공시절에는 날마다 동네에 모여 인민군 노래를 불렀다. 형님 세 분이 모두 경찰, 군인, 소방대원이라 주목을 받아 힘들었다. 소방대원 형님은 해창 곡식창고를 지키다가 산사람들에게 잡혔는데 모령 사는 산사람 친구가 도망가게 배려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다시는 전쟁은 안 일어나야 한다. 전부 모였거든 동네에. 오락 하먼 안 올수가 없어. 그래가지고 모여서 그 인민군 노래 잉 “야~ 뭐~ 양코배기” 인제 옛날 그런 다 잊어부렀는디. 인자 저녁마다 그놈 했거든.그라고 인제 각 부락 연락을 할 수가 없은께 연락병을 한 부락에, 연락을 이 부락 여기는 이 부락. 연락을 거그까지 조직을 했어. 그 놈들 유명 안하다고, 조직 그거 한 것은.그래갖고 하고 인..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여성바우인 사인바우에 맞서 세운 남근석

여성바우인 사인바우에 맞서 세운 남근석 ▶ 마을에서 남자들이 일찍 죽으니 여성바우인 사인바우에 맞서 마을 앞에 남근석을 세웠다. 거 뭐입니까. 거 남자 이[두 손을 둥그렇게 만들며] 세와 갖고, 여자들은 오래 사는데 남자들은 일찍 죽는다 해갖고 그걸 세왔던 적이 있어요. 남근석을 인자. 그런데 중간에 경지정리로 없어져 불고 또 대리로 한나 마을에서 세웠어요. 그랑께 그 사인바우가 여성바우라 해갖고. 그러면 뭐냐면 여자들은 오래 산디 어째 남자들은 일찍 죽냐, 이래갖고 그런 유래로 한 적이 있습니다.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1205_AOH_0002 제보자(구술자) / 안옥환(남, 84세, 건산 1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마을로 불어오는 서풍을 막기 위해 심었던 150~200년 된 노송들

마을로 불어오는 서풍을 막기 위해 심었던 150~200년 된 노송들 ▶ 예전 마을 앞에는 불어오는 서풍을 막기 위해 150~200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서있어 경치가 좋았다. 하지만 도로를 확장하면서 모두 베어버려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마을에는 또 서풍이 있어갖고 바람이 시어요. 요새는 집이 있지만 옛날에는 집이 없어갖고 그 앞에다가 소나무를 심어갖고, 한 지금부터 70년 전까지도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요. 요 앞의 마을에가 도로가로 해갖고. 그것은 전에부터 있었는데 그때 당시에 소나무란 것이 한 보통 150년, 200년 되지 않엤냐. 그라고 전부 도롯가에가 있었어요. 그 빤듯한 놈, 쑤욱 꼬부라진 놈, 모도 자빠진 놈 그러코롬 해서 있었어. 상당히 경치가 좋았었는디 근래 와서는 기양 모두 비어불고 ..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서산대사가 본 터, 건산

서산대사가 본 터, 건산 ▶ 어렸을 적 집안에 사랑채가 있어 여러 가객들이 시조모임도 하고 머물렀는데, 거기서 서산대사가 건산에 사람이 살터가 있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뭐 듣는 얘깁니다. 그란디 우리집이가 옛날부텀 그 사랑채가 있어 갖고 가객들이랄지 모도 이 그 유명한 분들 뭔 산서(算書) 공부시 시조 시모임이 있어 갖고 아조 많이 모였습니다. 그때 내 어릴 적에 들어본께 서산대사가 아까 왔을 때 요 우그로 올라갔드니 딱 보고는 용간대야라고 그랬습니다. “용이 큰 마을을 보고 쩌그 대야를 보고 있다.” 그래갖고 여가 자리가 터가 있다, 그런 얘기를 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건산 1구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1205_AOH_0001 제보자(구술자) / 안옥환(남, 84세, 건산 1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건산모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건산모시 ▶ 한 40년 전까지도 건산에서 모시를 삼아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큰어머니와 증조할머니는 건산 모시로 1등을 해 송아지를 타기도 했다. 지금 장흥고 일대가 모시밭이었으며 낮에는 논일을 하고 밤이면 아낙들이 모시를 삼았다. 저의 큰 어머니나 종조할머니가 건산 모시를 해서 1등을 나갖고 송아지 한 마리썩 탄 그 유래가 있습니다. 그래서 건산 모시라는 것은 아조 옛날부텀 알아주는 모시입니다. 자세한 것은 인자 구두로 들었습니다마는 어디로 가더라도, 요새 뭐 한산이니 뭐 있지마는 건산 모시를 더 알아준 때가 있었습니다. - (그러면 그 당시에 건산에 모시밭이 많았나요.) 고등학교가 전부 모시밭이었어요. 그라고 모시 잎사구를 갖고 우리는 벌써 잉 쑥떡 같은 것을 해묵었는디, 그것이 뭔..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아이를 갖게 하는 샘바위와 남근석, 그리고 미륵불

아이를 갖게 하는 샘바위와 남근석, 그리고 미륵불 ▶ 설암산에는 물이 떨어지는 샘바위와 남근석이 있다. 옛날부터 아이를 갖으려는 부녀자들이 그 물을 먹고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샘바위 안쪽에는 미륵불이 있는데 아마도 조그만 암자가 있었던 자리인 것 같다. 이 산 자체는 설암산(雪岩山)이라고 이렇게 해요. 눈 [설]짜에 바위 [암]짜 써서 설암산이라고 하고. 이 주위에서는 샘바위라고 이렇게 알려져 있어갖고. 옛날엔 실질적으로 약간 웅진 바위 속에서 샘이, 물이 많이 떨어져서 그 바위가 여러 사람들이 그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먹고 아이도 갖고. 뭐 이랬대는 얘기가 많어가꼬 사람들이 기도처로, 여기 기도를 하러 많이 찾았었어요. 그리고 또 여기 보시다시피 앞에 이렇게 남근석 바위가 하나 있거든요. 툭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소고기 한두 근 들고 딸집에 오다가 도깨비에게 홀린 친정어머니

소고기 한두 근 들고 딸집에 오다가 도깨비에게 홀린 친정어머니 ▶ 친정어머니가 시집 간 딸집에 소고기를 들고 오다가 도깨비에 홀려 밤새 홈거리와 물레방앗간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겨우 동틀 무렵에 딸집에 들어왔다. 도깨비불이 사람한테서 난다는데 한국전쟁 때 마을 앞 강변에 사람들을 사살해서 방치해 놓은 것을 보았다. 그 마을의 앞 쪽 전경이 이 농지경지 정리가 되기 이전에는 쩌쪽으로 시장을 가는 길로 이렇게 길을 가는 데에 거 홈, 홈거리가 있고. 또 이쪽에 사인정 쪽으로 나가는 길이 있는데, 저기 홈거리에서 그 도깨비가 자주 났다고 그래요. 그랬는데 저도 그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둘째 형님의 장모되신 분이 밤에, 그때는 인제 차편이 아닌 다 보행으로 다녔지요. 그 딸집을 오시느라고 그 소고기를 한두..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스님이 먹을 쌀이 나왔던 사인바위

스님이 먹을 쌀이 나왔던 사인바위 ▶ 김구 선생이 다녀갔던 사인암에는 샘바위가 있다. 그 떨어진 물을 받아 먹으면 불임한 사람도 임신을 했다. 그 아래에는 조그만 암자가 있어 한 스님이 살았는데 날마다 스님이 먹을 식량이 샘바위에서 나왔다. 그러다 한 스님이 더 기거하게 되어 두 사람 분의 식량을 구하려고 막대기로 샘바위 구멍을 쑤셨더니, 그 뒤로는 뜬물만 흘렀다. 우리가 그 한학을 배울 때 사인정 얘기를 해서 한시를 모도 짓고 그랬는데. 그 친구 하나가, 저기는 지금 영광 김 씨의 제각이고 김구 선생님이 여기를 그 여기서 일정기간을 계셨다, 이렇게 저기 한디 그 역사는 잘 모르겠어요. 그랬는데 그 친구가 저녁에 한시를 지으면서 한학을 할 때 그 잘 저기를 했는데 유래는 그래요. 거기가 지금 이렇게 물샘..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마을전설과 유래로 지은 도로명, 매박골길과 마당바위길

마을전설과 유래로 지은 도로명, 매박골길과 마당바위길 ▶ 마을 뒷산에는 매 머리를 닮은 매박골이 있고 마을 앞에는 매의 먹이인 새들이 깃드는 솔숲이 있었다. 아랫마을 쪽 마을 중심에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올라가 놀았던 마당바위가 있다. 그래서 도로명을 매박골길과 마당바위길로 지었다. 그리고 인제 마즈막으로 송암리 도로명이 정해질 때 우리가 개발위원회에서 논의를 해가지고 송암리를 그 뺄지를 몰랐어요. 송암리 어느 골목 멫 길 이럴 줄 알았는데. 인제 그 제가 하는 게 마을의 뒷산이 지금 그 매박골이라고, 저그 등에 보이는 저기가 지금 매에 새 같은 것을 잡아먹고 사는 거. 매에 눈이 양쪽으로 배게 가지고 틀림없는 매 머리가 돼있어요. 그래서 그 밑에가 그 옹달샘 정도로 좋지는 않았는디 있었는디 거그서 물을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강진 군동사람들과 맞짱떴던 송암마을 박영감

강진 군동사람들과 맞짱떴던 송암마을 박영감 ▶ 송암은 강진 풍동과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풍동 사람들은 가까워서 장흥 장을 보러 송암을 지나다녔다. 군 경계인 사인암 앞에는 주막거리가 셋이나 있었는데 풍동사람들이 와서 위세를 부리고 놀았다. 옛날에 풍동은 반촌이고 송암은 옹기를 굽는 민촌이었다. 어느 날은 송암에 사는 박영감을 혼내주려고 풍동 사람들이 때로 와 중보에 숨어 있었다. 힘이 쌘 박영감은 때로 몰려온 풍동 사람들을 헛기침 하나로 물리쳤다. 저희 그 외할아버지되신 분이에요. 그래서 인자 이름은 제가 인자 그냥 박영감, 우리 어머니 성이 밀양 박 씨기 때문에 박영감인데. 여기서 그 군동 쪽 3개 마을이 이용하는 그 농사 물이 그 이케 저 감천교 위에 보가 있어요. 거기서 이렇게 우리 들을 경유해서..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한국전쟁 때 마을사람 모두를 살렸던 당산제

한국전쟁 때 마을사람 모두를 살렸던 당산제 ▶ 송암마을 당산제는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데 지금은 당산나무 앞에 제단까지 마련하여 이어오고 있다. 당산제를 모시고 나면 마을사람 모두가 나와 같이 흥겹게 놀며 화합을 다졌다. 이 정신으로 한국전쟁 때 인민군 편에 들었던 사람들도 모두 숨겨주어 마을에서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 어려서 그 당산제 모신 것을 보면은 15일 전에 초하루를 막 지나면은 이주 동안을 부부가 합방도 안하고, 가운데 방안에다 물동이를 놓고 이렇게 그 한방에서 지내지만은 매일 또 이렇게 정화수를 떠다가 목욕을 하고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여기다가[당산나무를 가리키며] 인제 이렇게 해서 딱 방을 붙이는데, 누구누구가 유사하고 누구누구는 인자 징, 꽹가리, 그런 것까지 고수 분 뭐 해서 전부..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인공시절 아녀자들 끌려나와 매 맞는 광경

인공시절 아녀자들 끌려나와 매 맞는 광경 ▶ 인공시절, 남정네들이 다 도망 가버리자 아녀자들을 끌어내 줄을 세워 매를 때렸다. 산사람들이 잠깐 막걸리를 먹으러 간 사이 매 맞은 옆줄로 가 얼굴과 옷에 피칠갑을 해서 매 맞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안에는 또 여자들 모도 잡아냅디다. 애기 업은 놈, 안업은 놈 모도 잡아내서, “다 느그들 남자들 나간 사람 다 나와. 너 이년들 다 나와.” 그랍디다. 그래서 애기 업고 나갔제. 애기 안업은 사람, 업은 사람 한 줄, 두 줄, 석 줄, 넉 줄을 딱 서. 꼭 넉 줄이여, 동네가 큰께. 넉 줄을 조르라니 슨께, “그 줄 한 번쓱 패, 이놈 새끼들 모도.” 대그빡도 때러불고 모도 이놈도 때러불고. 그냥 요런데[얼굴을 만지며] 때러분께 터지고 피가 날꺼 아니요. ..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인공시절, 무던한 꾀로 남편을 피신시킨 당돌한 아내

인공시절, 무던한 꾀로 남편을 피신시킨 당돌한 아내 ▶ 인공시절, 병영에 있는 집에 온 남편을 산사람들이 잡으러 오자 아내는 남편이 지금 방안 구석에 숨어있는데도 논에 갔다고 당돌하게 말하고, 그들이 논에 갔다 온 사이 남편을 곳간에 숨겨 위기를 벗어났다. 그래가꼬 인공이 돌아왔잖아요, 인공. 인공이 돌아오니께 쩌어 배녕(강진 병영) 중고란데 큰 동네에서 살었어요. 살었는디 모도 전부 남자들 내뺀 사람은 다 여자들 다 나오니라, 왜 남자를 오락하제 남자들 다 피신하고 없냐. 그라고 모다 우리덜 잡어갈라고 인자, 모다 우리 잡어갈라고. 남자들 다 그때 언제냐 그라면, 인공 때구만. 인공 때 인자 밤에먼 산에서 내려와요, 밤에먼. 촌에 산께 우리가. 밤에먼 디야지, “요 새끼 디아지 잡어.” 마악 패 죽에...

장흥읍 2017.09.13

[장흥읍] 공출 끌려가다 해방되어 풀려난 큰애기

공출 끌려가다 해방되어 풀려난 큰애기 ▶ 일제강점기 공출로 끌려가다가 해방이 되면서 겨우 풀려난 큰애기는 또 그런 일이 있을까 염려한 까닭에 17살에 시집을 왔다. 내가 어째서 시집을 왔냐 그러면 그 때 열일곱에 안 갈 것인디. 공출을 가, 여자 공출. 그래서 저닉에는 크내기들 나오라고 합디다, 나오라고 한께. 바구리에다 도장 찍은 놈 딱딱 놓고 한나 집어라. 굵은 크내기들, 스물 넘은 크내기들 안 집은디 어린 거시 집어. 딱 집어서 둘이다 우리가 딱 집어 가꼬, 인자 낼 모렌 가 꺼시다, 그란디 낼 모렌 가 꺼시다 그래. 와따 인자 저 우꼭대기서 시방 차를 타러 나오라 게요, 모도. 모도 나오니라, 할 수 없이 나와야지. 그라먼 죽인다 한디. 그랑께 할 수 없이 나옹께, 차가 온디 고놈을 막 타고 이렇..

장흥읍 2017.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