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흥읍 77

[장흥읍] 도깨비 방죽 고기잡이와 무레밥

도깨비 방죽 고기잡이와 무레밥 ▶ 행원 잣두평에 있는 방죽은 큰물이 지면 고기 반 물 반이 되는데, 고기를 잡아 집에 돌아갈 때면 고기가 다 사라졌다. 그래서 방죽의 도깨비를 달래려 무레밥을 주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탐진강 건네 행원 잣두평의 끄떠린데, 장흥실고 조금 위쪽에 긴 반달형의 방죽이 있었다. 지금은 메꾸어 논이 되어 있으나 얼마 전까지 방죽이 있었다. 큰물이 질 때마다 냇물이 범람하여 강물이 가득하면 고기떼가 들어와 고기 반 물 반이 되었드란다. 그물만 내리면 그물 가득한 고기가 잡혔다. 집에 돌아가려고 하면 망 안의 고기는 하나 없이 사라져버렸단다. 고기잡이 하는 사람마다 실패하여, 그 뒤로는 고기잡이 할 사람은 방죽의 도깨비를 달래려면 도깨비 무레밥을 드리고 고기잡이 하면 고기를 ..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가장골의 고려장 길

가장골의 고려장 길 ▶ 장흥성 안에 가장골이 있었다. 노모는 집에서 따온 앵두를 가는 길에 뿌려놓았다. 가장골에 업혀온 노모가 길을 잃을까 걱정해 앵두를 뿌려놓았다고 말하니 아들은 사랑을 느끼고 다시 노모를 모시고 집에 내려와 잘 살았다. 연산리 장흥성과 가까운 가장골이 있다. 전설에 가장이란 것은 임시로 장사 지낸 것 보고 가장이라 그래요. 그래서 가장골이라 합니다. 장흥성은 지금의 동동리 남동리 였을 것이다. 100세의 자기 어머니를 업고 가장골에 두고 온 것이였다. 그 골짜기를 가장골이라 했다. 가장골로 생모를 업고 가는데 업혀간 노모는, 가설한 땅굴에 두고 올 것을 예상한 늙은 어머니는 산에서 먹겠다고 마당의 익은 앵두를 따 달라 했다. 업혀간 노모는 가면서 붉은 앵두알을 드문드문 흘리고 갔다. ..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도적잡은 서당 훈장

도적잡은 서당 훈장 ▶ 부모와 동생들이 굶고 있어, 한밤중에 도둑이 음식을 훔치러 서당에 들어왔다. 훈장이 학동들에게 부모가 배고프면 음식을 훔칠 수도 있다고 훈계하자, 숨어있던 도둑이 제 발로 나와 사죄했다. 관선당골이라 불리는, 지금의 신흥사 절 아래 서당터가 지금 남어 있습니다. 장흥성 안팎에서 성인들까지도, 관이란 것은 어른을 말해요 동이 아니라, 거그 가서 글을 읽기도 했는데. 터만은 지금 남어 있읍니다마는, 거그에서 한 훌륭한 훈장이 있었는데. 하루는, 훈장이 있을 때는 책까리라 해서 책을 한나를 띠며는 그 집에서 떡과 찰밥을 해다가 그 스승에게 바치고 축하를 해주는 그러한 시긴데, 하루는 거그서 밤에 강론을 하고 다 학생들이, 학동들이 잠을 잘 때 도적이 한나 들어왔드랍니다. 도적이 들어와서..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자갈로 막은 독실보 제방

자갈로 막은 독실보 제방 ▶ 일제 강점기 독실보 제방뚝을 막았다. 독실보 주변 마을사람들은 다라이나 바지게에 자갈을 이고 와서 제방뚝을 막았다. 일을 하면 팥죽도 써주고 밀가루도 주었다. 여그 저 읍에서 내로자면 제방뚝, 독실보 제방뚝. 그것을 모을 때 이장을 하셨어. 구장 그 때 말로 구장, 구장을 하셨어. 구장함시로, 우리가 그 때 너댓살 묵었든가 몰라. 새벽이면 막 징을 뚜드러. 저 인력으로 모은 거여. 제방뚝. 울력이 아니라 그 당시 뭐 노임을 줬어. 밀가루를 줬든가 머슬 줬든가, 일본놈들이. 야튼 머 식량을 줬어. 그라믄 인자 여자들은 다라이 이고 가고 남자들은 뭐 가꼬간지 몰라. 우리 어머니는 다라이 이고 간줄은 내가 알아. 또 부녀회장이 있었어, 그때. 부녀회장. 부녀회장이 또 동원을 하고 ..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개울을 베고 자는 곳에 지은 서당, 침계재(枕溪齋)와 침계정(枕溪亭)

개울을 베고 자는 곳에 지은 서당, 침계재(枕溪齋)와 침계정(枕溪亭) ▶ 대반마을에는 개울가에 침계정이란 정자가 있다. 그 자리는 한국전쟁 무렵까지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침계재란 서당이 있었다. 서당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정자가 들어섰는데, 침계재의 역사와 뜻을 이어받아 침계정이란 현판을 내다걸었다. 아 요것을 잉, 비개 침(枕)자 잉, 시내 계(溪)자, 요 자는 집 정(亭)자재? 그란가 저것이 집 [정]잔가? 내가 왜 저것을 했냐 그라면 저거 내가 해 논 거여. 내가 하자네 부락에서 했는디 내가 주동을 해서 했어. 여가 지금 요 냥반[앞에 할머니를 손짓하며] 할아버지제? 시할아버지. 그 냥반이 아까 이 냥반 보고 잠깐 뭔소리를 했는디, 대접장이여, 그전으로 말하면 대접장이 지금으로 말하면 선생님, 한문..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마을사람들을 보호해 준 개울가 팽나무

마을사람들을 보호해 준 개울가 팽나무 ▶ 어느 여름날, 모내기도 끝나고 아이들은 팽나무에서 놀다 물가에서 쉬던 소들을 몰고 풀 먹이러 가고, 어른들은 팽나무 그늘에서 낮잠 자다 논매러 간 사이에 팽나무가 쓰러져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은 마을이 화목하고 주민들이 선해서다. 마을이 좋다는 것이 부자로 잘 살고이 인물이 나서 좋은 거 아니에요. 다아 그 주민들이 선하고 하기 때문에 저런 나무 같은 저런 식물들도 다 보호를 해줘요. 여그가[정자 아래쪽 개울가를 가리키며] 그 전에 시방 이이 몇 백 년 된 나무지만 굼팽나무라고 팽나무, 히어넌[두 팔을 넓게 벌리며]나무가 있었어요. 있었는디 당시에는 여그가[앉아있는 정자를 두 팔로 둥그렇게 그리며] 침계재를 뜯어불고 맨 바닥이었거덩. 그면 일꾼들이, 글때 농부들이..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대반마을 풍수와 몰곳치 방죽의 유래

대반마을 풍수와 몰곳치 방죽의 유래 ▶ 대반마을은 마을 뒤 무수봉, 앞으로 젓대봉이 있어 풍수로 명당자리여서 수많은 풍수 보는 사람들이 찾아왔으나 명당을 찾지 못해 몰곳치라 불렸다. 이 마을에 터를 잡은 임씨 후손들이 고약해서 불이 나 집이 전부 소각해버리자 60여 년 전 학선 씨란 분이 마을에도 베풀며 조그만 방죽을 하나 파거라, 하시면서 마을이 골고루 평화롭게 산다. 으, 유래가 지금 여그 여 비, 비쌓고 있는 저가 저 비요. 비가 효자 일자, 호는 예조곤이고 그 냥반이 임씨요, 시방, 우리 할아버지 10대조. 그란디 여그 터가 이뤄진 재가 삼백 한 육십년 되야. 그러며는 평장 경주 김씨, 덕제 모두 거리 경주 김 씨들이 백년 후에 들어왔어, 여그 여 우리 할아버지 보덤. 그래갖고 그 이 할아버지가 ..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일본인 아이들이 다녔던 장흥서초등학교

일본인 아이들이 다녔던 장흥서초등학교 ▶ 장흥서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충성수포를 포함한 가게들은 말 사료 창고였고 동명목재 자리는 말을 기르는 기마병이 있었다. 지금 여 학교도[장흥서초등학교를 가리키며] 보믄은 옛날에는 탱자나무 울타리였어요. 울타리가 탱자나무로 돼있고 여그 앞에는 물론 비포장이었고. 그라고 여가 장흥서는 강진선로로써는 제일 큰 도로였고, 그 당시에는. 23번 국돌거야, 아마 정확하게는 모른디. 근디 현재는 천변도로가 국도로 바꼈고 여그는 지방도로 맞춰줬어 현재. 인자 칠거리가 터미널이 있었고. 그라고 인자 칠거리가 터미널이 있고 할 때는 요쪽이 완전히 상권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경찰서 여깄고 법원 여깄고, 각종 은행이 쩌그가 칠거리 쪽에가 다 있었고. 항..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한국전쟁 때 대나무로 엮어 만든 장흥읍성

한국전쟁 때 대나무로 엮어 만든 장흥읍성 ▶ 한국전쟁이 나자 연로하신 아버님을 대신해서 아홉 살 먹은 내가 마을 초소 보초를 섰다. 형님은 대나무를 가져다가 장흥읍성의 방어막을 쳤다. 6·25 당시 인자 나이가 어렸잖아요. 그럴 때 아버님이 인자 연세가 많에 가지고 내가 인자 초소, 그때 인자 연락이 되거든요. 초소가 여그서 대부등에 여가 있고 여가 초소가 있고.[손으로 마을 앞 동쪽 서쪽을 가리키며] 그래서 여기 나와서 내가 인자 아버님 대신에 초소를 슨 기억이 나요. 그때 아홉 살이나 묵었었을까, 그랬을꺼요. 아마 6·25가 나 가지고 한 이삼일 되았다고 그랬는디. 그래가지고 인자 우리 형님이 쩌그 장흥읍 산성에, 읍 뒤에가 산성이 있어요. 대로 거 죽창을 막어 가꼬 쩌리 시방 사랑니(장흥읍 사안리)..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아버님이 만난 호랑이와 범바우

아버님이 만난 호랑이와 범바우 ▶ 아버님이 젊었을 때 마을 모시밭에 큰 개만한 호랑이를 만나서도 아무 탈이 없었다. 마을 뒷산에는 사람이 범 등에 올라탄 형상인 범바우가 있어서 마을에 큰 환란이 없었다. 그게 참 옛날 얘긴데, 제가 우리 아버님한테 듣는 얘기예요. 옛날에는 지금 현재 집 있는 데가[마을 쪽을 가리키며] 모시밭이 돼있어요. 그러는데 거기에서 우리 아버님이 우리 인자 사둔을 만날라고 맨 마주막 집을 찾어갔어요. 가는디 무슨 개가 크은 놈이 있더래요. 그래서 이쁘다고 쓰다(듬어) 보닌까는 호랑이였어요. 예 그래서 우리 아버님이 장대하시다는 것을 제가 알고 있지요. 상댕이 건강하신 분이였지요. 범바우는[마을 뒷산을 가리키며] 현재 지금 녹음이 짙어져가지고 있으닌까 그렇제, 완전히 행태를 보며는 ..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밤이면 횃불 들고 쪽대로 고기 잡아 먹던 연화금뜰이 있는 연동

밤이면 횃불 들고 쪽대로 고기 잡아 먹던 연화금뜰이 있는 연동 ▶ 연동마을은 사안 2구로 강변 밭이 모래사장이다. 옛날에는 밤이면 횃불을 들고 강에 나가 잠자는 물고기들을 쪽대로 잡아먹었다. 한문으로 여가 연꽃 [연]짜여, 연꽃. 여가 어디가 연꽃이 있었닥합디다. 그랑께 인자 우리는 그란지만 알어. 어디가 뭐 그런 것이 있엉능가 어쨌능가. [연화, 쩌그 모퉁이 산에 쩌그 어른들이 말하시고 그란디. 여가 연화 꽃이 좋고 여짝으로 더가믄 인자 연화 꽃이. 쩌그 저 저 건네 뜰이 연화금이거든, 쩌그 저 보인 데가.] 그랑께 쩌그 연꽃이 있었드락 합디다, 전에 옛날에. 그래갖고 여그 보고 연화금이라고 연동이라고 그라고 지었닥합디다. - (옛날에도 도로가 이렇게 있었어요.) 네, 나 알기로는 옛날부터 있었어라, ..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한국전쟁 때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

한국전쟁 때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 ▶ 강원도 화천이 고향인 할머니는 열한 살 때 한국전쟁을 겪는다. 폭격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부모형제와 헤어진 할머니는 여러 고초를 겪으며 장흥 사람을 만나 결혼해 순지마을에 살게 된다. 그 후 17년이 지나 소식을 알고 장흥에 찾아온 큰 오빠를 만나고 강원도 화천 고향마을로 가 어머니, 형제들과 해후한다. 그 전에 6·25사변때 군인들이 이 밑으로 막 내려왔어요. 막 쳐내래와갖고 여기 군인들이 마주쳐져 버렸어요. 그랬는디 인자 막 중국군인들도 많고, 인자 한국군인도 있고 미국사람도 있고 일본사람도 있고 섞어졌어요. 그랬는디 우리오빠는 쩌어 산골짜기로 그 전에 말로 회한다고 올라갔어요. 올라가고 있는디 우게서 비행기가 정찰비행기가 가마니 가마니 돌아댕기더라고 살살 돌..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남문 밖 나뭇꾼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남문 밖 나뭇꾼 ▶ 어느 날 산골 성불리 수인산으로 남외리 사람들이 땔감나무를 하러 왔다. 나무를 한 짐씩 해서 집으로 가려고 지게를 짊어지고 내려오는데 호랑이가 한 사람을 물어가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가니 호랑이는 도망가고 물려간 사람은 죽어있었다. 그 전에 쩌그 남외리라고 있어, 저 남박계(남문 밖에). 그 사람들이 여가 지금 여가 산골이라놔서, 순전히 그때는 지게만 질머지고 나무를 해다가 때코, 또 시장에다 팔아서 묵고 살고, 자 이런 세대여. 그런디 열 둘이가 이렇게 딱 나무를 지고 내론디 한 짐씩을 해가꼬 지고 내러와. 집이로 와 인자 와. 온디 호랭이가 그냥 거 가운데 사람을 한나 물고 그냥 돌아가부렀어, 저기로. 산비탈길로 돌아강께 전부 나뭇짐을 받쳐놓고 쫓아간다..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일제강점기, 비행기 기름하려고 공출해간 관솔기름

일제강점기, 비행기 기름하려고 공출해간 관솔 기름 ▶ 일제강점기 말에 목화와 함께 소나무 관솔 기름을 만들어서 공출로 바쳤다. 일제는 심지어 정해진 양을 가져가고도 또 와 뒤져서 나오는 목화뿐 아니라 집안에 있는 개도 잡아서 가져갔다. 일제 때 그랑께 인자 그 비행기 지름 한다고 그거 인자 간솔지름을 내라고 해. 간솔, 간솔만 따다가. 그라믄 인제 간솔만 되제. 소나무 올라가가꼬 톱으로 짤라가꼬 간솔만 차곡차곡 항아리에다 쟁에. 그래가꼬 그놈을 인자 그 항아리 가새다가 황토를 이개가꼬 빼엥 돌려서 볼라야돼. 볼라가꼬 앙재 거름을, 인자 방에 찍은 앙재 그놈을 슬슬 펴서 인자 이놈을 한 메칠, 한 사날 때면은 그 간솔이 지름이 나와 가꼬 그 항아리로 하안나 되어가꼬 있어, 그 간솔 지름이. 그래가꼬 공출하..

장흥읍 2017.09.14

[장흥읍] 시암이 두 개있는 가시암, 병천(並泉)

시암이 두 개있는 가시암, 병천(並泉) ▶ 마을에는 시암이 두 개 있다. 가세 모양을 닮아서 가세암, 가시암, 병천이라고 했다. 지금 우물 하나는 어린애가 빠져죽어 없어졌고 하나가 남아있다. 병천이란 이름은 이 마을에 옛날 정묘년 한 이삼백 년 전 정묘년 부터 병천이라고 부르게 되아 있는데. 그 병천이라는 이름을 왜 지어졌는고는 처음에는 가세암이라 고 했습니다, 가시암. 가시암이라고 가세가 손잡이가 두 개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 우물이 저 우게가 우물이 하나는 있고, 지금 하나는 없어졌습니다. 거 우물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그 우물에 어린애가 한나 빠져서 죽어 가꼬 그 우물을 없앴어요. 그라고 한나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세암이란 것을 다시 번역을 해가꼬 아우를 [병]짜를 써서 샘이 둘 있다, ..

장흥읍 201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