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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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면] 자식이 죽으면 망태기에 담아 나무에 걸어두던 솔태거리

자식이 죽으면 망태기에 담아 나무에 걸어두던 솔태거리 ▶ 옛날, 선학동마을에서는 아기/아이가 죽으면 망태기에 담아서 숲으로 가져가 나무에 걸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아이/아기가 전염병 등으로 죽게 되면 그 죽음으로 인해 살아남은 형제자매, 부모라도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아이들의 주검이 나무에 매달려 있던 그곳을 ‘솔태거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솔태거리라고 아까 그 ‘아, 무서운 곳!’ 이렇게 얘기했죠? 그거는 정말로 있던 곳입니다. 솔태, 솔 태 거리. 저 건너편에 숲이 하나 있는데, 길을 오게 되면… 그 이따 내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뭐냐 그러면 자기 아기, 아이들이 옛날에 병이, 전염병이 심하고 했을 때 많이 죽잖아요. 자기 아들이나 딸이 죽으..

회진면 2017.11.16

[회진면] 더갓너메 이야기5 ― 나 살려라, 나 잔 살려

더갓너메 이야기5 ― 나 살려라, 나 잔 살려 ▶ 멜(멸치) 장사에 나선 더갓너메가 멜 잡이 배에서 아주 상태가 좋은 멜을 보고 한 밑천 뽑기 위해 싹쓸이하다시피 하여 그 멜을 사서 장사할 곳으로 실어가기 위해 소 등에 싣고 소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데, 무슨 일인지 소는 꿈쩍을 안 한다. 소를 계속 설득했으나 끝내 요지부동인 소를 보며 화가 날 대로 난 소 주인이 소의 뒷발 발목을 꽉 물어버리고, 깜짝 놀란 소는 날뛰며 달아난다. 때문에 소 등에 얹힌 채 묶여 있던 멜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한참 소를 쫓아가던 더갓너메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주저앉고 만다. 옛날에 주로 5~60년도에, 70년도까지 그런 상황들이 벌어졌는데 멜을 멜이 보통 4월 말에서 6월 한 중순경에 멜이 주로 많이 나와요, 이쪽에서. ..

회진면 2017.11.16

[회진면] 더갓너메 이야기4 ― 오메, 내 풀차두

더갓너메 이야기4 ― 오메, 내 풀차두 ▶ 노름에 빠져 사는 아들을 둔 더갓너메. 이 웬수같은 아들이 금고며 지갑이며 가방 역할까지 하는 자신의 풀차두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음을 잘 알기에 24시간 이것을 허리에 둘러매고 지낸다. 어느 날, 이 풀차두 속에 든 돈을 두고 더갓너메와 옆집 아짐이 주고받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된 아들, 더간이 풀차두를 훔칠 요량으로 안마를 해주어 더갓너메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리게 되고, 더간은 이 틈을 타 면도칼로 풀차두를 잘라서 가져가 버린다. ‘오메, 내 풀차도’인데…. 풀차두라는 것이 뭐냐면 옛날에는 이렇게 여름 같은 경우 되면 옷을 갖다가 까칠하고 이렇게 예쁘게 단정하게 하기 위해서 풀을 맥여, 풀을, 전부다. 인자 이렇게 밥을 이렇게 해가지고 이렇게 이런 포대가 있잖..

회진면 2017.11.09

[회진면] 더갓너메 이야기3 ― 씨라도 좀 갖다주제, 씨라도 좀 갖다주제

더갓너메 이야기3 ― 씨라도 좀 갖다주제, 씨라도 좀 갖다주제 ▶ 더갓너메가 애지중지 돌보던 호박이 있었다. 씨앗을 받아서 내년에도 심으려고 절대로 따 먹지 않고 남겨두었던 그 크고 좋은 호박이 세상에, 어느 날 아침에 깨어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더갓너메, 너무나 속상하고 원통하여 “씨라도 좀 갖다 주제, 씨라도 좀 갖다 주제”라고 탄식하였다는 이야기. 더갓너메네 헤르빠께 보면은 인제 헤르빠께라 그래, 인자 입구라고 그러는데…. - (세, 세팍….) 뭐 세팍이라고 그라나 헤르빡이라 하나, 우리는 헤르빡이라 그래, 우리 촌말로. 헤르파께라고 뭐 그런, 그러는데 일명 칙간이라고, 칙간, 우리는 칙간이라고 그래, 칙간…. - (칙간은 화장실 아니에요?) 화장실, 화장실. 거기에 인자 이렇게 호박을 이렇게 옛날..

회진면 2017.11.09

[회진면] 더갓너메 이야기2 ― 내 5천원, 내 5천원

더갓너메 이야기2 ― 내 5천원, 내 5천원 ▶ 소를 사서 키울 형편은 안 되는 더갓너메, 아쉬운 대로 돼지라도 한 마리 키워 보려고 어렵사리 돈 5천 원을 모아 새끼 돼지를 사게 되는데, 집에 와 하룻밤을 지내고 보니 상태가 영 시원찮다. 옛날에, 더구나 더갓너메에게 5천 원은 아주 큰돈이었으니 그 돈 생각이 나서 시름시름 앓는 새끼 돼지의 등을 두드리며 자꾸만 “내 5천 원, 내 5천 원…” 했다고 한다. 아, 뭐 평야 인제 더갓너메… 뭐 한(恨)인데 옛날에는 우리는 돼지가 집에서 키운(키우는) 것이, 물론 소는 인자 돈이 있는 사람들이 쫌 키운 것이고, 그래도 소가 큰 재산이고 쪼끔 거기 인자 소가(소를) 살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은 돼지 키운 것이 어떻게 보면 농촌에서 소 키운 사람, 그 아래의 ..

회진면 2017.11.09

[회진면] 더갓너메 이야기1 ― 국만 떠라, 국만 떠

더갓너메 이야기1 ― 국만 떠라, 국만 떠 ▶ ‘더간’이라는 이름의 아들을 둬서 ‘더갓네’, ‘더갓너메’로 불리는 아짐이 있었다. 남편은 술이나 좋아할 뿐 평생토록 집안 살림엔 무관심한, 무책임한 가장이었다. 어느 날 시아버지에게 드릴 고깃국을 푸는 며느리에게 더갓너메가 이른다, 고기는 살이나 찌우게 개나 돼지에게 주고 시아버지 국그릇엔 ‘국만 떠라, 국만 떠’라고. 더갓네, 더갓너메(‘더간’이라 부르고 불리는 아들의 어미)가 상당히 고생하면서 이렇게 시골에서 인자 사시는데 그란다고 옛날에 너나 나나 다 할 것 없이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고, 그런데 더더욱이나 자기 남편이, 일명 더갓너메, 더갓네 아부지가 계시는데, 더갓네 아부지가 통 일을 안 해. 그 없는 시절에 그런다고 자기 집에 살림이, 유산이 있는..

회진면 2017.11.09

[회진면] 덕도와 뭍을 오간 뱃사공 이야기

덕도와 뭍을 오간 뱃사공 이야기 ▶ 1960년대 중반, 덕도가 간척되기 전에는 나룻배가 덕도와 뭍을 오가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대덕장날이면 덕도 사람들이 한꺼번에 배를 타러 나루터에 나와서 혼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배 타는 인원을 잘 조정하고 배 타는 사람들에게 엄하게 주의를 줘가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 했던 뱃사공 덕분이었다. 여기가 지금 덕산이고, 덕도라고 그러고. 간척되기 전에는 [바다 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덕도고 여기가 회진반도라고 [정자 쪽으로 손짓을 하며] 그랬다고 그래요, 회진반도. 저기 대덕에서 요렇게 해서 쭉 회진으로 해서 선자로 삭금으로 해서 대덕 가항으로 나오는데 양쪽은 바다의 만이고 해서 여기가 반도라고 했어요. 그리고 여기는 덕도라..

회진면 2017.11.09

[회진면] 된장물회의 원조는 회진이다

된장물회의 원조는 회진이다 ▶ 예전에 회진의 어민들은 바다에 나갈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으면 그것을 바로 썰어서 싸갖고 간 도시락에 든 김치나 된장 고추 등과 섞어 먹는 것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된장물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1970년대 후반 무렵, 회진의 한 식당에서 상품화하여 팔기 시작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된장물회라고 하면 우리가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겠지만, 저는 원래 된장물의 원조는 회진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들어왔고, 원래 우리 회진지역이 득량만의 풍부한 수산자원이 아주 풍부해요. 아마 어렸을 때 제가 들어본 이야기이고, 저희 아버님께 그리고 그 윗대부터 어르신들이 바다에 나갈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는데, 뭔 뭐 싸가지고 왔냐? 김치,..

회진면 2017.11.09

[부산면] 일제강점기 고초를 겪은 유량마을 유기장인들

일제강점기 고초를 겪은 유량마을 유기장인들 ▶ 유량마을은 주민들 사이에 ‘유기마을’로 통하는데, 조선중엽부터 1962년까지 마을전체가 유기를 제조하며 부유하게 살아갔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군들이 총알을 만들기 위해 유기 재료인 신주를 강탈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큰 고초를 겪었다. 한 유기장은 신주를 숨기고 일본군에 저항하다 절도죄로 유치장에 감금되었는데 억울함에 스스로 벽에 머리를 박고 자결했다. 옛날에 우리 마을이 집성촌이 아니라 타 성 간이 이렇게 모아서 사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마을 형성이 힘들었지. 그래 가지고 경주 김씨하고 여씨가 여그로 와 집촌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우리 마을이 조리 형국인데 담았다가 풀어 부니까 재산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어요. 그란디 우리 마을이 버드나무가 ..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재앙을 살피는 파수꾼 선돌

재앙을 살피는 파수꾼 선돌 ▶ 용반마을 주변에는 탕근바위와 각시바위를 비롯한 선돌이 여러 개 있었는데, 옛날부터 마을에 재앙이 많아 재앙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세웠다. 재앙이 오는 지를 살피고 미리 막아 주는 파수꾼 역할을 했다. - (옛날부터 마을에 재앙이 많았어요. 그래서요?) 저 위에 가면 탕근바구가 있고 각시바구가 있어. 저그에도 독이 있고 선덕골에도 독이 있어. 그런 것이 동네 모든 재액을 방지하는 방법이라고 했어. 당고개라고 있어. 거기에 별신당집이 있어. 신이 모셔져 있고 제를 지내려면 정월 보름에 지낸디 제를 지내려면 한 석 달을 지기를 한다고 해. 궂은 데도 안가고 인역 몸을 깨끗이 정결을 해. 애려서 보면 금줄을 쳐 놓고 고치도 달고 뭣도 달고 뺑뺑 둘러서 있었어. 그것이 일제 말이나 ..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길쌈으로 남매 키운 열녀

길쌈으로 남매 키운 열녀 ▶ 양촌마을 승강장 앞에 1987년에 세운 열녀비가 있는데, 자식인 김동기씨가 홀로 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세웠다. 어머니 홍점순씨는 24세에 시집와 남편을 여의고 주로 길쌈을 해 남매를 키웠다. 어머니가 열녀로 되었지요. 지가 돌도 안 되어 아버지를 여의였어요. 아버지 얼굴도 모르죠. 어머님이 24살에 혼담해서 저를 키웠어요. 어머님이 재가도 안하고 혼자서 누님과 나를 키웠지요. 승강장 밑에 비를 세웠어요. 그 전에 살림이 괜찮았어요. 그런데 큰아버님이 조부 돌아가신 뒤로는 술 먹고 노름으로 다 날려 버렸어요. 우리 집에 와서도 “막 너만 잘 살래?”하면서 그란 소리를 하시고 고생이 많았어요. - (어머님은 생계를 어떻게 하셨는지요?) 면배를 쌓지요. 길쌈을 해서 폴아..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독우재와 난정회

독우재와 난정회 ▶ 향토문화재 독우재는 구술자의 고조 할아버지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지은 초당으로 형제들과의 우애를 돈독히 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독우재를 중심으로 유림들 사이에 ‘난정회’라는 시유회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독]자가 옥편에 보면 한 열댓 가지 뜻이 나와 있다. 도타울 [독]자인데 도타운 놈은 거짓이 없는 놈이고 성실한 놈이고 두터운 놈이고 그런 뜻이 담겨 있어. [우]자는 우애 [우]자여. 근데 이 초당을 우리 5대조 할아버지가 초당을 지으려고 생각을 했어. 근디 힘이 부쳤든가 초당을 못 짓고 87세에 돌아가셨어. 그 아들이 아버지가 초당을 못 짓고 간 한을 갖고 있어. 그래서 아들이 초당을 지었어. 우리 고조 할아버지가 형제가 3형제인데 초당을 요 자리가 아니라 이 우에다가 짓..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대학자 이수하

대학자 이수하 ▶ 이수하라는 대학자가 있어 효자마을과 호계마을에서 사철 서재를 운영하였다. 훗날 후학 유림들이 서운사라는 사당을 지어 스승을 추모했다. 이수하라는 양반인디 그 양반은 대학자여. 일제 때 양반인디 해방 후에 돌아가셨어. 이 지방에 있는 유생들은 다 그 양반이 가르쳤어. 우리 아버님도 그 양반 제자여. 이 아래 효자마을에 의열사라는 강당이 있는디 그 곳에서 사철 서재를 했어. 옛날에는 몽학들은 겨울철과 봄철에 한가한 때 서재를 했는데 대학자는 사철 서재를 했어. 그래서 외지에서 온 유생들인 외학들도 오고, 결혼해서 공부한 사람들을 간자라 했는데 그 사람들을 와서 배웠어. 효자마을에서도 했고 호계에서도 서재를 많이 했어. 제자들이 후에 사당을 했어. ‘서운사’라고 창사를 하고 제자들이 모금해서..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남편 따라 죽은 용두산 백단초

남편 따라 죽은 용두산 백단초 ▶ 이태균 어른신의 진고모님이 혼례를 한 후 전통에 따라 1년 동안 친정살이를 했는데 부부가 사랑이 깊어 중간에 진고모부가 상사병으로 돌아가시자 진고모님이 용두산 백단초를 달여 마시고 남편을 따라갔다. 현재 진고모님의 비가 우봉마을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진고모님)이 결혼식을 올렸는데 1년 익혀가지고 한단 말이여. 옛날 결혼 방식은, 아주 어려운 사람들은 그라지 않는데 잘살고 가풍을 지키는 집안은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1년을 익혀서 가. 친정에 있었는데 진고모부님이 간혹 와 인자. 자기 부인 보고 싶으면 와야제. 그랑께 요새로 말하자면 연애도 아니고 사랑을 깊이 할 수 있는 기간을 준거여. 젊은 세대는 모른데 우리도 그라고 왔거든. 나도 1년 묵혀서 왔어. 그런 시대인데..

부산면 2017.11.08

[부산면] 거북이 살구나무 정자를 타고 올라간다고 등구정

거북이 살구나무 정자를 타고 올라간다고 등구정 ▶ 구정마을은 거북이가 살구나무 정자를 타고 올라가는 형국이라고 해 원래 ‘등구정’이었다. 마을 형국이 천석꾼이 나올 형국이라는 얘기가 전해 내려왔는데 실제로 천석꾼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신 농협창고가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이 거북 형국이라고 해. 그란디 옛날 구학도 좀 하고 하는 양반이 지나가시다가 여그서 하루 저녁 주무시게 되었는디, “거북이면 모래가 있어야 살 것인디”라고 했다고 해. 그래 “아니 여그 ‘매사등’이라고 있다”고 했대. 모래 [사]자, 거그가 모래등이여. 그라면 또 선비 말이 “살구나무가 있어야 쓸 것인디” 그라드라고 해. “아 여기 ‘살구쟁이’가 있다”고 했대. 이 뒤에가 살구쟁이여. ‘아 그래서 거북이 사는구나!’ 그 양반 말이 딱 맞아..

부산면 2017.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