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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관산읍

[관산읍] 당동 각시소

장흥문화원 2017. 9. 15. 10:15

 

 

 

당동 각시소
▶ 관산 당동마을에 있는 각시소 이야기. 고려 17대 황후 공예태후는 임원후의 둘째딸이었다. 그런데 첫째딸이 어느 날 왕비가 될 상서로운 꿈을 꿨다. 그러자 동생이 그 꿈을 자기에게 팔라고 해서 팔았다. 그 후 동생은 왕비가 되었다. 그래서 첫째딸은 자기가 왕비가 될 것인데, 꿈을 팔아버려서 왕비가 못되었다고 한탄하며 못에 빠져 죽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당동 각시소라는 이야기다.

 

 

각시소 얘긴데, 당동마을에 앞내에 있는 소 이름이 각시소인디, 지금은 다 메꿔져갖고 냇갓인데 옛날에가 소가 있었던 것 같애. 그 얘깁니다. 공예태후 임씨에게는 (고려)17대 왕후가 공예태훈데, 그 언니가 한 분 계셨어요. 두 형제였는데, 하루는 언니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꿈을 꿨다고 하면서 꿈 얘기를 자랑스럽게 동생한테 해 줬어요. 꿈의 내용이 뭐냐 하면 오색 구름이 영롱하게 빛을 내고, 땅에 가득하니 상서로운 그 기운이 돌더니, 자기 집 대문 앞에 갑자기 황금빛 비단폭이 멀리 펼쳐지면서, 그 위를 고운 옷을 입은 처녀가 사뿐사뿐 걸어오니까, 용상에 앉아 있던 임금이 환히 웃으면서 내려와 반겨 맞아서, 딱 보듬고 용상 옆에다 딱 앉히더라는 것이여. 그래 너무나도 꿈이 황홀했다. 이라고 이야기를 동생한테 하니까, 동생이 (듣기에) 보통 꿈이 아니거든. 그랑께 언니한테 “그 꿈을 나한테 팔소” 그랑께, “꿈을 다 어떻게 판다냐?” “내가 시집갈 때 장만한….” 옛날 처녀들은 (시집)가기 위해서 미리 조금씩 장만을 해놓는데, “그때 비단 한 폭 그것을 내가 언니에게 줄 테니까, 그 꿈을 나한테 팔아라” 그러니께 하도 성화를 내니까, 동생이 그러고 그러니까 귀엽기도 하고 그랑께, 그래라 그라고 비단 한 필을 받고 꿈을 팔았어. 그런데 훗날 고려 11대 인종조에 이자겸이가 관세가 득, 굉장했어 왜 그랬냐 하면 이자겸이가 딸 둘을 인종 왕한테 바쳤거든? 그랑께 왕후가 둘이여 두 딸이. 그러니까 이자겸이가 굉장한 권세를 갖고 있는 판이여. 그래서 그때 조정에서는 목자 성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된다네. 요런 말이 퍼지게 되야. 이자를 목자로 보잖아. 파자를 보면은. 그러니까 진짜로 이자겸이가 황홀해갖고, 내가 진짜 그람 왕을 한 번 해볼까? 하고 꿈을 가지고, 요새 말하자면 쿠데타 계획을 세운 거여. 누구랑 같이 세웠냐 하면 척준경이라는 사람하고 세웠는데 척준경이가 변심을 한 거야. 안 되겠구나 하고 이것을 고변을 해서 척결을 해. 이자겸을 해 그런 통에 왕비 둘을 폐위가 된 거야. 그랑께 왕비가 비어 있어. 그래서 간택을 하게 된 거여. 간택을 하게 되니까, 그때 탐진 최씨 시조이신 최사전이란 분이 조정에서 어의로 근무를 하는데, 마침 왕비의 아버지 임원후도 같이 조정에서 근무를 했던 것 같애. 그러니까 자네 그 딸을 이번에 간택령을 내리면 왕비를 하면 좋겄네. 그래서 채택이 된 거여. 그라고 나니까 언니가 기가 맥히지, 자기의 복을 동생이 가져가 버렸으니까. 자기의 경솔함을 한탄하고는 마을 앞 소에 빠져 죽었어. 그래서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거가 각시소다, 이라고 또는 한자로 아지, 한자로 아지소다, 이렇게 전해 내려와. 그래서 장흥 임씨들이 거기 동산을 만들면서 거기다가 각시소, 하고 푯말 표석도 해져 지금 있어. 그래서 지금까지 각시소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

 

 

 

 

 

 

 

 

                                                               당동 각시소

 

 

 

 

 

 

 

 

 


자료번호 / 06_12_02_FOT_20160725_WCR_0001
제보자(구술자) / 위철량(남, 71세, 와룡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