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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평면

[장평면] 용소 메워 보림사 창건

장흥문화원 2017. 10. 19. 17:48

 

 

 

용소 메워 보림사 창건
▶ 보림사 창건 설화의 변형으로 보림사 터가 소였는데 숯으로 메우는 과정에서 용이 나와 다쳐 피를 흘렸다. 용이 나와서 용소고 용이 피를 흘린 곳이 피재가 되었다.

 

 

대밭 형태를 보면은 자라가 이렇게 되아가지고, 물먹는 데가 넓고.
- (어르신 고인돌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그건 잘 모르겠고. 어렸을 때 고인돌이 있었고 조사하러 몇 번 온 적도 있었어요. 요 근래에는 안 왔는데. 직접적으로 가 보면은 고인돌이 그대로 있었어.
- (혹시 어르신들 중에 고인돌 많은 사연을 들어보신 분은 없으세요?)
몰라. 우리들이 어르신들한테 듣는 말만 해주는 거예요. 정확하게 알 수는 없고 늘 선후배관계로 내려오는 풍습으로 인해서 얘기가 배 [선]자 정자 [정]자 쓰는 이유는 지금은 배가 있지만 그전엔 뗏목으로 나무를 실어갖고 보림사를 지었다는 얘기도 있고. 또 옛날에 지금 보림사 절터에서 내가 들은 말에 의하면 거기가 용이 살았대요.
- (그 용 얘기 좀 다시 해주시겠어요?)
듣는 바로는 지금 보림사 절터 거기가 원래 쏘였대요. 쏘에 용이 살았대요. 보림사를 지을려고 터매기를 했는데, 물을 맑게 하기 위해서 숯으로 매립을 해가지고 보림사에 속에를 봐 보믄은 숯이 많이 들었다고 그래요. 매립하면서 용이 나왔는데 피재 자리로 나오면서 피가 나서 피재라는 전설도 있고 그래요.
- (좀 더 자세하게)
저는 그렇게만 알고.
- (쏘를 메울 때 숯으로 메웠어요?)
원래는 숯으로 많이 메꿨대요. 물이 좋게 할라믄 숯이 들어가야 맑으니까.

- (숯이 그렇게 많았을까요?)

전체적으로 숯으로만 메운 것은 아니었고 숯으로 메우고 스스로도 메였겄지요. 메꾸는 과정에서 용이 나왔는디 나오는 과정에 어디에 부딪혀서 피가 흐르니까 피재라고 그랬다고 그래요.
- (어디를 피재라고 해요?)
요기 장흥댐 넘어서 재가 있어요. 거기가 피재에요. 그 후로는 잘 모르겠어요. 나와가지고 부딪쳐서 상처를 입어가지고 피가 흘러서 피재라는 것만 들었어요.

 

 

 

 

 

 

 

                                                    보림사

 

 

 

 

 

자료번호 / 06_12_07_FOT_20160718_JDG_0001
제보자(구술자) / 조동기(남, 73세, 선정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