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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림의향 특집

[의향편] 석대들전투에서 전사한 한문선생

장흥문화원 2017. 9. 12. 09:29

 

 

 

석대들전투에서 전사한 한문선생
▶ 동학농민혁명 당시 용반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동학군에 참여하거나 그들을 도왔는데, 구술자의 증조 할아버지는 용산에서 한문 선생을 하다 석대들 전투에 나섰다가 체포되어 사살되었다. 조부님은 당시 용반마을 동장을 지냈는데 일본군에게 고문을 당해 큰 고초를 겪었다.

 

 

현 이장 6대 조부인 이사경 어르신이 동학 접주 어르신인디, 집안에서 이천 이가가 태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디, 그 양반이 접주를 하시니까 밑에서 안 도울 수 없었어. 근디 반면에 한 일가 집안의 한 분이 일본사람의 스파이 노릇을 해. 여기서 동학 행세를 일본사람한테다 다 까바치고 하는 양반이 있었어. 그 분 무서워서 갑오 동학 활약한 양반들이 기억산 똘밭에서 밤낮 생활을 하듯이 해. 그러꿈 애로가 있시 산디, 저기 보성 저쪽으로는 안담영이라는 갑오동학 접주가 있고 요쪽 우게는 현 이장 웃대 어르신 사자 경 그 어르신 보다 높은 신남일 이라는 접주가 대장이 있었어. 하루 저녁에는 신남일 접주 군사가 장평서 여그로 넘어와. 대장된 분은 최수일이 집에가 주둔해 갖고 있고 군사는 최충기씨 마당이 너른께 그렇게 주둔을 했어. 동학이 수 100명이었제. 거기서 하루 저녁 자고 신남일 대장이 나와서 천기를 보면서 “음~ 군사들 모여라” 해갖고 “오늘 일몰 전에 별 일이 날 것이니까 전부 전투 대세를 갖춰라”해서 그라고 준비를 하였어. 그란디 낮에 자꾸 신남일 대장이 이렇끔 나와서 보고 보고 하는디, 저기 우사 있는디 거리를 시암거리라고 하는데, 시암거리에 뭔 사람이 둘이 걸어와서 앉어. 상투를 쒸았는지 어떠한 사람인지를 몰라. 그랑께 요쪽에서 동학 두 분을 지게 바작에다 거름을 찡겨가지고 거기다 총을 넣고 가서 보고 오라고 했어. 바작에 총을 넣고 거름을 지고 그쪽으로 간디, 옛날 동학들이 여그다 행진을 쳐는데 그것을 안끄르고 가논께 거그 앉아서 보던 두 사람이 내빼. 내빼닝께 두엄을 부리고 불질을 했어. 요쪽에서 신남일이 군사가 막 그쪽으로 간께 요그가 먼지가 진동을 했다고 합디다. 한나는 저쪽 보고 ‘피애치식’이라고 하고 저그는 부산사람들 농사짓는 ‘어인보’라고 해. 한 사람은 거기서 피살시키고 한 사람은 피애치식에서 피살시켰어. 그래갖고 동학이 모두 유치로 갔는디, 한 갑오동학이 인자 몰리게 돼. 여기를 피하고 그 양반 비가 이 아래 여그 웃몰 한몰이라고 거기에 있어요. 혼자 사는 노인 집에 총 베냥을 묻어 놓고는, 일본 사람들 병사가 장평에 있고 병영에 있었는디, 장평 봉림 가서 자수를 했어. 총을 묻어 놓은 곳은 그 마을 동장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라고 보고를 했어. 일병들이 와서, 당시 이장은 민규 조부 최씨 어른이 했고 그 뒤에 동장은 우리 조부님이 했는디, 인자 동장을 찾아갖고 우리 조부님을 갈쳐내라는 것이여. 혼자 산 노인 집에다 총하고 베냥하고 묻어 놓고 자수 했는디 왜 모르냐고 두둘겨 팬 것이제. 전혀 모른 일이제. 몰라서 안 가르쳐준께 두 다리 두 손을 묶어 놓고 짝대기로 해 갖고, 그 전에는 회관 뒤에 통샘이라고 했는디, 그 샘 거기다 메달아 놓고 유지기를 씌워 불을 질르라고 해. 그랑께는 웃몰 한몰이 할머니가 오셔서 “우리 아제, 우리 아제, 아무 잘못 없다. 내가 알고 있다”고 해. 가서 본께 베냥도 있고 총도 묻혀 있고 해서 우리 조부님이 모면을 했어. 근디 조부님이 넋이 나가갔고 동쪽으로 가라면 서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라하면 동쪽으로 가고 집을 못 찾고 허덕이고 했다고 합디다. 그래갖고 동학이 결국에는 망하고. 인자 장흥읍에 석재뜰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디, 우리 증조부님이 용산 남면 가서 한문 선생을 하는디 석재뜰에서 전투가 벌였졌다고 한께 제자들 부모님을 오라고 해서 “이러꿈 갑오동학이 석재뜰에서 난리를 친단디, 낮치고 이렇고 있겠냐? 다음에 애기들 가르칠 거니까”며 양해를 구하고 석재뜰로 달라 들었어. 거기서 싸우다가, 저 알로 용산 가서는 이종찬이라는 증조부님이 접주 였는디 옛날에 대로 영끈 시레기 같이로 닭을 키웠는디 거기다 짚을 다뿍 넣어갖고 그것을 밀고 가면서 총질을 하고 했어. 증조부님이 거기서 체포를 당했어랑. 감옥에서 돌아가셨어.

 

 

 

 

 

 

자료번호 / 06_12_09_FOT_20160728_LCHO_0001
제보자(구술자) / 이춘옥(남, 86세, 부산면 용반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