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회진면 26

[회진면] 사람이 이쁘게 나와서 꽃섬

사람이 이쁘게 나와서 꽃섬 ▶ 남서해 쪽에 자리한 섬들 가운데 하나인, 미녀가 나와서 그렇게 불리어 온 ‘꽃섬’은 슬픈 전설을 간직한 섬이다. 옛날 옛적 꽃섬에 시집갈 나이가 된 큰애기가 아버지랑 살고 있었는데 이 한심하고 욕심 많은 아버지가 딸이 아무리 예뻐도 그렇지 딸한테 시집가지 말고 자신과 계속 살자고 했던 것이다.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던 딸이 어떻게 했겠는가. 그만 목을 매달아 자결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꽃섬하고 쇠섬하고 질매섬하고 서니에서, 서니서 그렇게 미녀가 나왔다 하지라이. 미녀가 나왔는디 그 저 꽃섬에서 나온 큰애기하고는 저거 아부지하고 사는디, 아부지가 어찌께 그 가이내가 이뻤던가 넘을 못 주고 자기가 데꼬 살라고 욕심을 부렸던갑디다. 그란께 하루저녁 데꼬 살았던가 몰라. 그란께 ..

회진면 2017.11.16

[회진면] 할미꽃으로 피어난 할머니의 넋

할미꽃으로 피어난 할머니의 넋 ▶ 옛날 시골 마을에 세 자매를 낳아 길러 시집보낸 후 혼자서 살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점점 더 연로해져서 혼자 살기가 힘들어지자 세 딸이 한 달씩 돌아가면서 할머니를 모시기로 한다. 그래서 큰 딸네와 둘째 딸네에서 각각 한 달씩 산 후 할머니는 셋째 딸네 집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셋째 딸네로 가는 고갯길에서 큰 눈을 만나 그만 얼어 죽고 만다. 겨울이 저물고 봄이 오니 그 자리에 꽃 한 송이가 피어났는데, 할머니의 넋이 꽃으로 피어났다 하여 할미꽃이라 부르게 되었다. 옛날에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 한 분이 딸 삼형제를 낳아갖고 살았는디, 인자 딸 서이 다 결혼식을 보내고, 결혼해서 보내고 인자 사는디, 그도 인제 힘이 든께 자석들이 모여 안거서(앉아서) ‘우리 한 달에..

회진면 2017.11.16

[회진면] 원님밥상 동학민요

원님밥상 동학민요 ▶ 장흥 회진 덕도 신상리에 살았던 한승원 선생이 어머니에게서 들었다는 노랫말 이야기다. 벽사 원님 밥상에는 콩잎 반찬이 12가지요, 만호 원님 밥상에는 감태 반찬이 열 두가지라’는 내용이 그것. 이 노랫말이 나오게 된 계기는 장흥에 장흥부사, 벽사찰방, 회진만호, 이렇게 세 권력자가 살고 있어서 백성들을 수탈했기 때문에 유독 장흥동학이 성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석대들전투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우리 어머니가 어린시절에 불렀던 동요를 나한테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것은 동학하고 관계가 아주 깊은데, ‘벽사 원님 밥상에는 콩잎 반찬이 12가지요, 만호 원님 밥상에는 감태 반찬이 12가지라.’ 만호는 회진, 회진에 만호가 있었어요. 그러고 여기 원도리, 옛날 교도소 자리, 거기에 벽사역이..

회진면 2017.11.16

[회진면] 자식이 죽으면 망태기에 담아 나무에 걸어두던 솔태거리

자식이 죽으면 망태기에 담아 나무에 걸어두던 솔태거리 ▶ 옛날, 선학동마을에서는 아기/아이가 죽으면 망태기에 담아서 숲으로 가져가 나무에 걸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아이/아기가 전염병 등으로 죽게 되면 그 죽음으로 인해 살아남은 형제자매, 부모라도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아이들의 주검이 나무에 매달려 있던 그곳을 ‘솔태거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솔태거리라고 아까 그 ‘아, 무서운 곳!’ 이렇게 얘기했죠? 그거는 정말로 있던 곳입니다. 솔태, 솔 태 거리. 저 건너편에 숲이 하나 있는데, 길을 오게 되면… 그 이따 내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뭐냐 그러면 자기 아기, 아이들이 옛날에 병이, 전염병이 심하고 했을 때 많이 죽잖아요. 자기 아들이나 딸이 죽으..

회진면 2017.11.16

[회진면] 더갓너메 이야기5 ― 나 살려라, 나 잔 살려

더갓너메 이야기5 ― 나 살려라, 나 잔 살려 ▶ 멜(멸치) 장사에 나선 더갓너메가 멜 잡이 배에서 아주 상태가 좋은 멜을 보고 한 밑천 뽑기 위해 싹쓸이하다시피 하여 그 멜을 사서 장사할 곳으로 실어가기 위해 소 등에 싣고 소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데, 무슨 일인지 소는 꿈쩍을 안 한다. 소를 계속 설득했으나 끝내 요지부동인 소를 보며 화가 날 대로 난 소 주인이 소의 뒷발 발목을 꽉 물어버리고, 깜짝 놀란 소는 날뛰며 달아난다. 때문에 소 등에 얹힌 채 묶여 있던 멜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한참 소를 쫓아가던 더갓너메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주저앉고 만다. 옛날에 주로 5~60년도에, 70년도까지 그런 상황들이 벌어졌는데 멜을 멜이 보통 4월 말에서 6월 한 중순경에 멜이 주로 많이 나와요, 이쪽에서. ..

회진면 2017.11.16

[회진면] 더갓너메 이야기4 ― 오메, 내 풀차두

더갓너메 이야기4 ― 오메, 내 풀차두 ▶ 노름에 빠져 사는 아들을 둔 더갓너메. 이 웬수같은 아들이 금고며 지갑이며 가방 역할까지 하는 자신의 풀차두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음을 잘 알기에 24시간 이것을 허리에 둘러매고 지낸다. 어느 날, 이 풀차두 속에 든 돈을 두고 더갓너메와 옆집 아짐이 주고받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된 아들, 더간이 풀차두를 훔칠 요량으로 안마를 해주어 더갓너메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리게 되고, 더간은 이 틈을 타 면도칼로 풀차두를 잘라서 가져가 버린다. ‘오메, 내 풀차도’인데…. 풀차두라는 것이 뭐냐면 옛날에는 이렇게 여름 같은 경우 되면 옷을 갖다가 까칠하고 이렇게 예쁘게 단정하게 하기 위해서 풀을 맥여, 풀을, 전부다. 인자 이렇게 밥을 이렇게 해가지고 이렇게 이런 포대가 있잖..

회진면 2017.11.09

[회진면] 더갓너메 이야기3 ― 씨라도 좀 갖다주제, 씨라도 좀 갖다주제

더갓너메 이야기3 ― 씨라도 좀 갖다주제, 씨라도 좀 갖다주제 ▶ 더갓너메가 애지중지 돌보던 호박이 있었다. 씨앗을 받아서 내년에도 심으려고 절대로 따 먹지 않고 남겨두었던 그 크고 좋은 호박이 세상에, 어느 날 아침에 깨어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더갓너메, 너무나 속상하고 원통하여 “씨라도 좀 갖다 주제, 씨라도 좀 갖다 주제”라고 탄식하였다는 이야기. 더갓너메네 헤르빠께 보면은 인제 헤르빠께라 그래, 인자 입구라고 그러는데…. - (세, 세팍….) 뭐 세팍이라고 그라나 헤르빡이라 하나, 우리는 헤르빡이라 그래, 우리 촌말로. 헤르파께라고 뭐 그런, 그러는데 일명 칙간이라고, 칙간, 우리는 칙간이라고 그래, 칙간…. - (칙간은 화장실 아니에요?) 화장실, 화장실. 거기에 인자 이렇게 호박을 이렇게 옛날..

회진면 2017.11.09

[회진면] 더갓너메 이야기2 ― 내 5천원, 내 5천원

더갓너메 이야기2 ― 내 5천원, 내 5천원 ▶ 소를 사서 키울 형편은 안 되는 더갓너메, 아쉬운 대로 돼지라도 한 마리 키워 보려고 어렵사리 돈 5천 원을 모아 새끼 돼지를 사게 되는데, 집에 와 하룻밤을 지내고 보니 상태가 영 시원찮다. 옛날에, 더구나 더갓너메에게 5천 원은 아주 큰돈이었으니 그 돈 생각이 나서 시름시름 앓는 새끼 돼지의 등을 두드리며 자꾸만 “내 5천 원, 내 5천 원…” 했다고 한다. 아, 뭐 평야 인제 더갓너메… 뭐 한(恨)인데 옛날에는 우리는 돼지가 집에서 키운(키우는) 것이, 물론 소는 인자 돈이 있는 사람들이 쫌 키운 것이고, 그래도 소가 큰 재산이고 쪼끔 거기 인자 소가(소를) 살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은 돼지 키운 것이 어떻게 보면 농촌에서 소 키운 사람, 그 아래의 ..

회진면 2017.11.09

[회진면] 더갓너메 이야기1 ― 국만 떠라, 국만 떠

더갓너메 이야기1 ― 국만 떠라, 국만 떠 ▶ ‘더간’이라는 이름의 아들을 둬서 ‘더갓네’, ‘더갓너메’로 불리는 아짐이 있었다. 남편은 술이나 좋아할 뿐 평생토록 집안 살림엔 무관심한, 무책임한 가장이었다. 어느 날 시아버지에게 드릴 고깃국을 푸는 며느리에게 더갓너메가 이른다, 고기는 살이나 찌우게 개나 돼지에게 주고 시아버지 국그릇엔 ‘국만 떠라, 국만 떠’라고. 더갓네, 더갓너메(‘더간’이라 부르고 불리는 아들의 어미)가 상당히 고생하면서 이렇게 시골에서 인자 사시는데 그란다고 옛날에 너나 나나 다 할 것 없이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고, 그런데 더더욱이나 자기 남편이, 일명 더갓너메, 더갓네 아부지가 계시는데, 더갓네 아부지가 통 일을 안 해. 그 없는 시절에 그런다고 자기 집에 살림이, 유산이 있는..

회진면 2017.11.09

[회진면] 덕도와 뭍을 오간 뱃사공 이야기

덕도와 뭍을 오간 뱃사공 이야기 ▶ 1960년대 중반, 덕도가 간척되기 전에는 나룻배가 덕도와 뭍을 오가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대덕장날이면 덕도 사람들이 한꺼번에 배를 타러 나루터에 나와서 혼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배 타는 인원을 잘 조정하고 배 타는 사람들에게 엄하게 주의를 줘가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 했던 뱃사공 덕분이었다. 여기가 지금 덕산이고, 덕도라고 그러고. 간척되기 전에는 [바다 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덕도고 여기가 회진반도라고 [정자 쪽으로 손짓을 하며] 그랬다고 그래요, 회진반도. 저기 대덕에서 요렇게 해서 쭉 회진으로 해서 선자로 삭금으로 해서 대덕 가항으로 나오는데 양쪽은 바다의 만이고 해서 여기가 반도라고 했어요. 그리고 여기는 덕도라..

회진면 2017.11.09

[회진면] 된장물회의 원조는 회진이다

된장물회의 원조는 회진이다 ▶ 예전에 회진의 어민들은 바다에 나갈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으면 그것을 바로 썰어서 싸갖고 간 도시락에 든 김치나 된장 고추 등과 섞어 먹는 것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된장물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1970년대 후반 무렵, 회진의 한 식당에서 상품화하여 팔기 시작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된장물회라고 하면 우리가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겠지만, 저는 원래 된장물의 원조는 회진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들어왔고, 원래 우리 회진지역이 득량만의 풍부한 수산자원이 아주 풍부해요. 아마 어렸을 때 제가 들어본 이야기이고, 저희 아버님께 그리고 그 윗대부터 어르신들이 바다에 나갈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는데, 뭔 뭐 싸가지고 왔냐? 김치,..

회진면 2017.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