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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문림의향 특집

[의향편] 귀양 간 천관산

장흥문화원 2017. 9. 11. 09:14

 

 

 

귀양 간 천관산
▶ 천관산이 이씨조선이 들어선 이래 고흥의 옛이름인 흥양으로 귀양을 갔다는 이야기다. 관산은 고려 때 주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조가 성립되면서 새 왕조에 불만을 품고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흥양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귀양이라는 것은 고려시대, 또 고려조 때, 뭐 조선조 때 행해지던 형벌 중의 형벌인데. 옛날에는 방축향리다, 하는 정도로 형을 한 거여. 말하자면 죄를 지으면 벼슬을 띠고, 어느 지역 일정 장소의 바운다리 안에서만 거주하도록 그런 것이 가벼운 형을 했는데, 훗날 도배, 뭐 유배 뭐 이런 형식으로 먼 곳으로, 그 원지에다가 보내면서 최소한도의 지역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도록, 이렇게 좀 강화된 것이 유배형인데, 우리 천관산을 흥양 천관산으로, 흥양으로 귀양을 보내 부렀는데, 흥양은 지금의 고흥군을 고호가 흥양군이었는데, 흥양으로 천관산을 귀양을 보냈어. 누가 보냈냐 하면, 태조 이성계가 보냈는데, 그래서 귀양을 가게 됐는데, 귀양을 가게 된 동기는 뭐 였냐?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해서 정권을 잡고, 고려조를 머시기하고 조선조를 창업을 하기 위해서, 무학대사의 이야기를 듣고, 말을 듣고, 전국의 명산을 다니면서 산신한테 허락을 받아라. 그래야 조선조 건국을 해 갖고 순탄한 정권이 될 것이다, 말을 듣고 전국의 그 산을 인자 명산을 다니면서, 산신의 허락을 받는데, 인제 어느 해에는 천관산까지 와서 산신한테 고하면서, 내가 조선조를 건국했으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드리니까, 천관산 산신만이 불응을 해 불어. 지금까지 아무 데도 불응한 산신이 없었는데, 천관산 산신만 불응을 하니까, 괘씸하고 막 분이 극에 달해 부렀지. 아, 우리 천관산은 호남 5대 명산 중의 하나라고 했는데. 어디 어디가 인자 호남 명산으로 들어가냐 하면 전라북도 부안에 있는 능가산이라고 있어, 그 능가산이 하나요, 능가산도 천관산보다 조금 낮은데, 거기도 명산이라고 해, 내려와서 지리산, 또 내장산, 무등산도 안 들어가요. 영암으로 와서 월출산, 그러고 관산에 있는, 대덕하고 경계에 있는 천관산, 이렇게 해서 호남의 5대 명산인데, 천관산 산신만 안 들어 줘, 천관산이 하도 명산이니까, 89 암자가 있었어. 천관사를 위시로 해서 탑산암을 위시로 해서 89 암자가 그때 있었는데, 그런 명산이었기에 전국의 수도승들이 천관산에서 수도를 하고, 또 천관산은 하도 경치가 아름다우니까, 리틀 마운틴이다, 다이아몬드 마운틴이다, 작은 금강산이다. 그래서 금강산 다음 가는 것으로 보는 산인데, 근자에 좀 등산객들한테 알려져 가지고 전국의 산행을 좋아하는 등산객들이, 봄 가을에 많이 찾아와요. 왜 그러냐 하면 산을 오르면서 다도해, 바다를 점점이 참 순화되어 있는 다도해를 구경할 수 있는 산이, 이 천관산이여. 정상에 올라가면 날 좋은 날은 무등산도 보이고, 제주도 한라산도 보여. 내가 중학교 때 제주도 한라산을 봤어. 그때는 자연이 아조 훼손이 안 된 때라, 맑은 하늘이 가을이 가끔 있어. 그때는 그래도 한라산이 보여, 내가 소풍을 가서 한라산을 봤는데, 지금은 모든 면들이 찌그러져 갖고 항상 하늘이 어두와. 그래서 잘 보인 적을, 성장을 해서는 못 봤어. 그런 천관산의 산신이 허락을 당연히 안 하지. 그 역성혁명을 한 태조 이성계를 허락할 리가 없어. 명산의 천관산 산신은. 그래 인자 흥양으로 귀양을 보냈는데, 남해 있는 보리암, 그 산은 원래는 보광산이었어, 남해 산이 보광산. 그런데 거기는 인자 산신이 허락을 해줬어. 약속하기를 이성계가 기도할 때, 만약에 산신께서 조선 그 왕조를 건국하는 창업을 허락을 해주면 내가 비단으로 옷을 해서 산을 싹 입혀 주겄소, 산신한테 약속을 했단 말이여. 좋다, 그라문 조선 건국을 한 번 해 봐라. 그래 인자 조선국이 건국이 됐는데, 고민이여. 남자가 약속을 해서, 한 나라의 임금이 약속을 했는데, 비단을 그 산을 다 덮어 줄라믄 그때도, 그때만 해도, 중국서 갖고 와야 됐 거인디, 우리나라 비단은 별로고, 중국 비단 비싼 비단 사다가 이놈을 덮으자니, 나라가 망하게 생겼고, 이 일을 어쨌으면 쓰겠느냐, 신하들한테 타합을 하는데, 한 신하가 영특했던가, 그렇게 염려할 것 없소, 이름을 비단 금자 써 갖고 금산이라고 고칩시다. 그러면 비단 옷을 입힌 거하고 똑 같소, 그래서 보광산이 지금은 금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런 산은 명산이지만, 천관산에 비할 수가 없다. 천관산은 워낙 명산이기 때문에, 역성혁명한 사람들에게는 절대 동조하지 않는다. 그런 전설에 의해서 흥양으로 천관산이 귀양을 가 가지고, 산을 불복산이다, 불복을 해 가지고. 그 이제 천관산이 천관산, 지재산, 천풍산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데, 불복산이다 하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자료번호 / 06_12_02_FOT_20160726_WCR_0001
제보자(구술자) / 위철량(남, 71세, 관산읍 와룡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