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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용산면

[용산면] 부용산 바위와 석굴, 그리고 한국전쟁

장흥문화원 2017. 9. 20. 09:32

 

 

 

부용산 바위와 석굴, 그리고 한국전쟁
▶ 부용산은 물이 좋다. 전설 같은 바위도 많고 석굴도 있다. 동학란, 왜정, 해방, 해방후 좌우익 한국전쟁 등 나라에 변란이 생기면 고동바위가 울고. 사람들이 부용산에 깃들어 피신하고 잡혀 와서 많이 죽었다. 하지만 당산제를 정성스럽게 지낸 덕분인지 운주마을사람은 한국전쟁에서도 죽은 사람이 없다.

 

 

참 물이 좋아요. 이분은 봤죠. 거기 올라가면 물맛이 좋아요, 좋죠. 참 좋아. 물 먹기가 힘들어. 거꾸로 서야 돼. 떠 묵든 하면 좋은데. 야픈데도 큰 돌이 가라막아가지고 좁고 좁고 좁아. 안 말라 그래도. 큰 석간수에 나온디 그 일상一相(으뜸)이 물이여. 참으로 명천이야. 그야말로 용시암, 용천, 허허허허 용천. 참 좋아.
- (여기 고동바위라고도 있다며요.)
고동바위는 저 바위[오른쪽 산을 가리키며] 저 산에. 옛날에는 변이 오거나 변이 나면 울었다는 전설도 있고 그래요. 울었다고 그래요. 우리도 많이 들었죠. 그런데 우리는 직접, 이상한 소리는 들리긴 들려요. 8.15무렵엔가 울었다고 그래. 저 마치 저 뱃고동소리, 바다에 뱃고동 소리 그 비슷해. 웅웅 하면서 굉장히 울어. 우리도 듣기는 들었어. 그기 고동 우는 소리를 내 헤헤에. 저 바다에서 뱃고동소리 들리지 않잖아요. 뇌성도 안한디 그런 소리 있었어. 그리고 당산제를 지내고 잡숴 그런가 모를지만은 6·25때에 저기 저 참전한 사람들이 마을에 전사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이 마을, 저 건네 작은 마을, 접정 저런 데, 계산, 많이 죽었는데, 전사자가 많았는데 우리마을엔 한 사람도 직접 가서 전사한 사람이 없어. 훈련소에서 병 걸려서 한 사람 죽은 사람 밲에 없어. 단지 부상 입은 사람, 한 서너시 있었는디. 여그서 군대 많이 갔었죠.

- (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정성스럽게 지내 와서… 당산할머니가 많이 도와줬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잉. 글로 우리는 인정을 하죠. 차마 시안케 하나도 안 죽었어. 그란데 에, 인공 때 또 재미난 일화가 있어. 이 좌익들이 모다 갖다가 할 것이 없으닌까 달아다 잡수면서. 인자 우리 아부지하고 고재숙씨라고 그 노인 한 냥반이 계셨는디. 그냥반이 화주를 하고 우리 아버지는 측관 밖이 안 하셨는디. 딴 사람 다 땡겨불고 우리 아부지하고 네이 밀고를 해가꼬. 아 다들 잡수면서 가서 저 좌익들, 산에 피해댕기는 사람들 붙잡게 잡히게 해주씨요, 그렇게 고했다고 그 모략을 해. 그래가지고 그 노인양반들 새내끼로 묶어가꼬. 저 그 사람이 고인이 되았고만, 팔모라고 인팔모라고. 전부 저 마을 산 사람들 그 사람이 어떻게 해가꼬는 막 새내끼로 묶어가꼬. 분주소 그때 인공때 분주소라 했서. 분주, 분주소, 분주소 소장이면 머대. 뭔 그런 일을…. 이북에서도 거시기할 때 그런 이가 더러 있었어요. 지양터가 홀렁홀렁해요, 허허. 그런 일이 있어. 그런데 그 후로 싹 잽혀서 군 인판군 부대라고, 부대가 와가지고 좌익가담한 사람들 저기 데려다가 저 관산 가믄 솔칫재가 있어. 다섯 명을 죽여부렀어. 그때 그게 천필육지(天必戮之)여. 아 그런 사람들 모략을 해보들 안 한디. 마을 사람들 무사태평하게 안전하게 지내라고 고사 지낸 양반 보고, 찬물에 목욕재계한 사람들한테 그런 모략을 해야 쓸것이요. 천필육지여. 그런 사람 다 죽었어. 다 죽어.

- (이 마을사람이었는데….)
그렇지 다 죽었어. 아이, 마을 사람들 좌익에 가담한 사아부지하고 고재숙씨라고 그 노인 한 냥반이 계셨는디. 그냥반이 화주를 하고 우리 아버지는 측관 밖이 안 하셨는디. 딴 사람 다 땡겨불고 우리 아부지하고 네이 밀고를 해가꼬. 아 다들 잡수면서 가서 저 좌익들, 산에 피해댕기는 사람들 붙잡게 잡히게 해주씨요, 그렇게 고했다고 그 모략을 해. 그래가지고 그 노인양반들 새내끼로 묶어가꼬. 저 그 사람이 고인이 되았고만, 팔모라고 인팔모라고. 전부 저 마을 산 사람들 그 사람이 어떻게 해가꼬는 막 새내끼로 묶어가꼬. 분주소 그때 인공때 분주소라 했서. 분주, 분주소, 분주소 소장이면 머대. 뭔 그런 일을…. 이북에서도 거시기할 때 그런 이가 더러 있었어요. 지양터가 홀렁홀렁해요, 허허. 그런 일이 있어. 그런데 그 후로 싹 잽혀서 군 인판군 부대라고, 부대가 와가지고 좌익가담한 사람들 저기 데려다가 저 관산 가믄 솔칫재가 있어. 다섯 명을 죽여부렀어. 그때 그게 천필육지(天必戮之)여. 아 그런 사람들 모략을 해보들 안 한디. 마을 사람들 무사태평하게 안전하게 지내라고 고사 지낸 양반 보고, 찬물에 목욕재계한 사람들한테 그런 모략을 해야 쓸것이요. 천필육지여. 그런 사람 다 죽었어. 다 죽어.

- (이 마을사람이었는데….)
그렇지 다 죽었어. 아이, 마을 사람들 좌익에 가담한 사 가마 대고. 자기들이 안 퍼. 주인보고 퍼주라 해가꼬 고거 짊어지고 산에 낮에 올라가. 그런 일도 있었어. 할 수 없지. 신고하면 와 봤자 머라꺼여. 산에 올라가 버리는디. 14연대, 여수 14연대 반란군도 저 골창 가서 이 골창 가서 은거하다 살다가… 자수해가꼬 내려갔지. 그래가꼬 자수해서 산 사람 있었어.
- (용산에서는 그러믄 부용산으로 사람들이 뭐 난리가 나면 많이 모였겠네요.)
그랬제. 왜정 때도 그러고 옛날 동학 때도 그러고 해방 후로 좌우익이 공산당하고 싸울 때도 많이 그랬제. 은거하고 살았제. 저 상봉 가먼 큰 암골이 있어. 들어갈 때는 이정도[두 손을 바닥으로 내리며] 밖이 안 된디, 들어가면 사람이 앉젓술 정도 된댜. 한 칠팔 명 앉을 정도, 석굴이 있어. 그곳으로 6·25때 피신한 사람들이 더러 있어. 여기서도 뭐야. 청전, 열자씨 거그서 살았드만. 용천 물 떠다 밥해묵고. 거 굴이 있어. 상봉 바로 옆에 해엣 돌아가면. 거 석굴이 여러 개 많이 있어. 여러 곳이 많이 있어. 그 절 바로 앞에도 굴이 있네. 큰 놈이 있네. 물에 물이 똑똑 떨어지는데, 바로 아캐 배틀바우 우게 큰 바우가 어그르하게 있던가, 거그도 굴이 있어. 거기서도 살았어.

 

 

 

 

 

 

 

 

                                    운주마을 사장나무 아래에서

 

 

 

 

 

 

 

                                    부용산

 

 

 

 

 

 

 

 

 

 

자료번호 / 06_12_04_FOT_20160705_KJH_0001
제보자(구술자) / 고재현(남, 84세, 운주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