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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면

[용산면] 한국전쟁으로 엇갈린 독립운동가들

장흥문화원 2017. 9. 25. 13:48

 

 

 

한국전쟁으로 엇갈린 독립운동가들
▶ 장흥지역에도 일제강점기 농민회 사건 등 독립운동이 활발했다. 그 중에는 친일로 변절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해방 공간에 독립운동가들 다수가 좌익에 가담했다. 좌익에 연루된 독립운동가는 보훈 대상에서 제외되고 친일을 했더라도 먼저 죽은 사람은 보훈 대상이 되었다.

 

 

대구 고법 판결문 있어. 글로 해서 보훈대상도 되고. 또 그란디 그분들이 나중에 전부 좌익을 했어. 그래갖고 좌익을 해가지고 그 혐의로 해서 감옥에 간 사람들은 원호 대상이 안 되고. 그 중에서 나중에 변절 되야갖고 친일한 양반도 있고 이. 끝까지 주장하다가 잡혀서 한 사람 보훈 대상이 안 되고. 유재승씨라고 그 양반이 수두(首頭-우두머리)고 저그 석동. 그라고 인암 정진수씨라고 그런 양반, 그 두 양반이 주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고 봐야제. 그 자손들이 다 있어요, 지금. 그랑께 6·25가 닥치기 전에 좌익 활동하기 전에 죽어븐 사람은 보훈 대상이 되고 좀 더 살아가지고, 허허 좌익 활동을 해갖고 조금이라도 찍힌 양반은 안 되고. 그랑께 저 이영권 의원이 국회에서 발언을 했거든. “그때 좌익 안 한 사람이 어디가 있냐, 독립운동 한 사람 치고.” 억울하니 말하자믄 엄청난 활동을 했어도 자손이 대접을 못 받는 경우가 많에요. 그라고 내중에 변절된 사람이 진짜 대접 받고. 와 그걸 보믄 세상은 다 고를 수는 없는데. 친일이 그랑께 이쪽에가 유물이 없어요. 옛날 유물이 없어. 왜 그러냐 그라믄 옛날 왜구들이 여그 와서 뭐 돌라가고 불질러블고 그런 지역이여, 우리가 볼 때. 옛날 그 뭣이 없어요. 그라고 인자 친일, 그랑께 우리가 여그 월산재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고, 요랬으면 저 월산재 빛이 난디. 거기서 좀 공부 거기서 쫌 하다가 신식공부 쫌 하고. 거기서 최고 한 사람이 장흥군 농잠학교, 들어보셨죠? 농잠학교. 그 농잠학교 출신들이 지금 한 백열 살 모도, 그 우그로 알로 해서 한 이십 년 이 나이로 해서 한 반 했닥 한디. 거그 출신들이 인자 면서기도 하고. 그랑께 어떤 양반은 농민회 사건에 관련돼 대구에서 대구 고법에서 판결문, 신문 있어갖고 글로 하드라고. 판결 받아갖고 독립운동 대접을 하고 그 뒤에 면서기로 들어가갖고 너무 정직했어 그 냥반. 위에서 그 이중 과세, 설에 떡 못 해묵께 국가 우게서 시키거든, 곡식 인자. 그란디 그 냥반이 인자 마을로 돌아 댕겨 우에서 시킨께. “흙 집어 여브러라.” 지시를 했어. 절구통에다가 쌀을 떡 할라고 빤디. 그랑께 인자 다 대답만 그렇게 한닥하제 실제 인정상 못한디, 어떤 양반 한 양반은 해뿌렀어. 그랑께 지금까지도 그런 얘기가 나와. 여그서 서당에서 하고 농잠학교 쫌 농잠학교 분명히 다녔드라고. 그라고 면서기로 들어가서 얼마 안 되얐는디 집어 여브렀다, 쪼매 안 없어지더라고. 그란디 보훈, 아들 손자가 보훈 대상 혜택을 받어. 그럴 수가 있나.[허허허] 그런 것은 내가 생생히 기억한디 거의 모를 것이요.

 

 

 

 

 

 

 

 


자료번호 / 06_12_04_MPN_20161128_KYK_0003
제보자(구술자) / 김용길(남, 77세, 모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