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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림의향 특집

[의향편] 정유재란 때 일본군을 물리친 각왜동(却倭洞) 김응원

장흥문화원 2017. 9. 11. 17:22

 

 

 

정유재란 때 일본군을 물리친 각왜동(却倭洞) 김응원
정유재란 시 마을에 살던 김응원이 강진까지 쳐들어온 왜군을 골짜기 나무마다 등을 달아 군진지로 속여 물리쳤다. 그래서 그 골짜기 마을을 각왜동(却倭洞)이라 부른다.

 

 

또 그러고 인자 한 가지 유명한 게 머냐며는 각왜동이라고 각왜동. 왜정 거시기 임진왜란하고 정유재란 때, 정유재란 때 그랬다고 한 것 같어. 거시기 정유재란이라고 그랬던 것 같더라고. 이 위에 골짜기가[동네 안쪽을 가리키며] 동네 있었드만이요. 그때는 인자 야지로 안 나오고 골짜기에서 주로 집을 짓고 살았던가. 그래 가꼬 그때 집이 어딘가 그전에 황씨들이 살았던 집인가 모른디 저 어딘가 저쪽 강진 땅으로 해서 그게 기왓장이 요렇게 뚜꺼운 기왓장이 많이 출토되고 그랬어. 지금도 저기 묻힌 게 있을 꺼야. 그란디 거가 황씨들이 살았등가 어쨌든가는 모른디. 그 정유재란 때, 이 아래[마을 서쪽 강진 땅을 가리키며] 중산리 부인들이, 경주 김씨들 이 우게 제각 예남사 잉, 예남사 제각에가 제사를 모시고 있는 잉 이름이 김 먼 원인디. 그 냥반이 강진까지 왜군들이 주둔하고 있는디 강진까지 와서, 이 산 밑으로 등을 싸악 해 달아가지고 여그가 머 주둔지, 군인들 주둔지 모냥으로 해서, 해가꼬 강진서 여기를 못 쳐들어왔어. 못 올라왔어 이 장흥 쪽으로. 못 올라오고 결국은 거기서 있다가 퇴진했는데 각왜동이라고 인자. 물리칠 각(却)자, 각왜동이라고. 이렇게 계곡 옆에 누워있는 바위에다가 새겨놨드라고.
- (그럼 그 당시에 새겼을까요?)
잉 그 당시에 새겼더라고. 그라고 난 댐에 그 등 삼을라고 누가 새겼다고 봐야제. 그 분이 새겼는가. 누가 누굴 시겨 새겼는가 모른디. 김응원씨 김응원씬데 에 그 냥반이 그렇게 해서 물리치고. 그 냥반 기념하게 이 아래 요리 보면 이짝으로 나무 밑에 거가 비각이 있어. 각왜비, 비각이.

- (거기 지금은 집들은 없고요?)

응.
- (다 이쪽으로 나왔네요.)
응, 그라지.

 

 

 

 

 

                                                   금안마을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0628_ABI_0001
제보자(구술자) / 안병일(남, 79세, 장흥읍 금안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