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고경명, 한말 항일의병 고광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고영완
▶ 고경명 장군은 임진왜란 때 3부자가 왜와 싸우다 순절했다. 고광순은 한말에 의병을 일으켜 일제와 싸웠다. 고영환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다.
그 임진왜란 때 제봉 고경명 그 할아버지께서는 60세에 밀양부사를 하셨어요. 그래가꼬 그만두고 여기를 오셨는데 광주죠, 지금 잉. 거그 막 오셨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난 거예요. 그래서 그때 당시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 자기 큰아들 종자 후자 그분하고 둘째아들 임자 후자 그분 세 분이서 인자 임란에 참여를 했는데. 막둥이인 용자 후자 할아버지가 있어요. 막둥이. 거가 여섯째였는데 거기서 그때 당시 14살이였는데 “나 따라 갈란다” 말고삐를 잡고 따라갈란다, 한께 “너라도 남아 있어야 어린 조카들을 거두고 너라도 살아남아야 나중에 후일을 도모할 것 아니냐” 해서 그 아들은 띠어놓고 금산 전투에 인자 참여를 했는데. 금산전투에서 인자 불행하게도 다 돌아가셨는데 그때 종자 후자 할아버지는 안돌아가셨어요. 큰아들. 왜 그랬냐 군량미를 또 대야 되잖아요. 7천 의병을 했으니, 7천 의병을 먹여 살려야 되니까. 군량미 걷으러 다니다가 금산전투에서 아버지하고 동생이 전사했다는 말을 듣고 인자 복수를 해야 쓰겠다 하고 찾아간 곳이 진주성. 거기 가서 삼 장사가 죽었다는 고종우 최경회 또 한 분 있죠. (삼 장사는 김천일 황진 최경회) 그 3분이서 죽었을 때 거기서 같이 전사를 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4월, 매년 4월 15일이면 국가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즉, 표충사에서. 거기서 우리는 제사를 지낼 수가 없어요. 그 세 분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그렇게 지내니까. 그래서 매년 4월 15일에는 광주 시장이 저희들을 초청을 하면 저희들은 거기에 가서 저희가 제사를 지내고 그라고 옵니다. 그렇게 돼서 인자 그 할아버지는 의병으로 해서 그렇게 돌아가셨고, 그 후로 300년이 흐른 후 녹천 고광순이 또 일제 거시기를 했는데. 근께 제봉 할아버지는 61세에 그때 돌아가셨지요. 녹천 고광순도 60세까지 의병활동을 하셨어요. 그래가꼬 돌아가실 때가 또 61세였습니다. 녹천 고광순도 항일운동 그것을 쭉 하시다가 결국은 인자 돌아가셨는데 지금은 담양 그 거기에가 고영준이라고 종손이 살고 계십니다. 그 종손이 이 마을에서 양자를 갔어요, 그 마을로. 그래서 그때 인자 지금까지 그 고영준 그 종손 형님께서 인자 집안 대를 이어오고 있죠, 지금. 그리고 나서 그 할아버지 돌아가신 다음에 고영완, 요 형님께서 인자 그때 20세 조금 넘어서부터 그때 청년활동 그런 것 하기 이전에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한 2년간 옥살이를 했어요. 그래서 한 2년간 옥살이를 하고 내려와서 여기 와서 인자 그때 인자 해방은 됐는데, 그때 인자 6·25 일어나기 전에 인자 일어나고 할 때 그 빨갱이들 나오고 어쩌고 하다 보니까 청년활동도 하고 이런 거 저런 거 하다가. 그 형님께서 2년 옥살이 하고 난 다음에 내려 오셔가지고 여기서 장흥군수를 쪼끔 했을 거예요. 초대군수를. 쪼금하고 그땐 미군정시대 때니까. 그 하고 나서 인자 나중에 2대 때 국회의원 당선이 됐죠. 인제 당선이 되가지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6·25가 난거예요, 6·25가. 그래서 인자 그만두고 6·25 난 다음에 세월이 쫌 흘러서 있다가 그 다음에 인자 군사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고, 군사정변 일어나기 전에 그때 또 5대 때 당선이 됐었어요. 당선이 돼서 했는데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니까 또 그만두고. 그래서 사실상 두 번 국회의원 하셨다 하지마는 몇 년 하덜 못했어요. 그 전에 순전히 독립운동을 하다 보니까 야당에 몸담다 보니까 긴 거시기는 하지 못하고. 1978년도 전두환 아니 81년도죠. 그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렇게 거시기 할 때 그때는 모든 것을 접고 여기 내려오셔 가지고 인자 생을 마감하셨는데.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특별히 제가 아는 바는 없어요.
고영완 가옥
자료번호 / 06_12_01_FOT_20161205_KYC_0002
제보자(구술자) / 고영천(남, 69세, 장흥읍 평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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