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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평면

[장평면] 청재 자르니 피가 솟고 우물 퍼내니 검은 소가 나오고

장흥문화원 2017. 10. 19. 17:29

 

 

 

청재 자르니 피가 솟고 우물 퍼내니 검은 소가 나오고
▶ 보림사 창건과 관련된 설화로, 한배비와 홍거리란 곳이 무척 부유하게 잘 사는 곳이었는데, 어느 날 나병에 걸린 묏자리 잘 보는 거지가 마을에 동냥하려 들어 왔는데, 동냥을 안줬다. 그러자 그 자가 청재를 자르고 마을우물을 퍼내면 마을이 더욱 더 번성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주민들이 청재를 자르는데 땅속에서 피가 솟았다. 또 우물물을 퍼내니 그 안에 검은 소가 엎드려 있다가 보림사 터로 갔다. 이후 마을이 망하고 보림사가 세워져 흥했다고 한다.

 

 

유가들이 한배비에서 많이 살아가지고 다 결세브리고(권세부리고) 살고, 홍거리라는 곳은 홍씨들이 많이 있어가지고 결세브리고 살고. 그래갖고 밥상을 이쪽 홍고리에서 거기를 갈라면 솔찬해도. 냇도 건너고 그란디 길을 안 막고 밥상을 들고 갔다혀. 그렇게 옛날에는 그러고 잘살혔다혀. 그랬는디 동낭치가 와서 이를테면 동낭치인지 알았는데 문둥병, 문등아치더라해. 문등병에 걸렸더라해. 나중에 알고 본께, 문둥이 왜 문둥병이 걸렸냐면, 어찌게 산을 귀신같이 알아갖고 산을 대한민국 산을 멧자리를 싹 팔아 묵게 생겨서 하느님이 문등병을 찌그러부렀다고 어른들이 그 말씀을 하시더만. 그래갖고 문등병이 되았는디, 이제 동낭치 그랑께는 한배비마을에서 동냥을 안줬어. 줬으면 숭이 대접해서 줬으면 할껀디, 안 준께는 “여기가 부자가 더 될 것 인디, 참말로 웃골랑(?) 동네인디”, 저 산 넘어가 재가 있어요. ‘청재’라고. “그 길(청재)을 짤라라 딱 짜르면 여기가 진짜 웃골랑 부자가 되것다”고 했다 해. “진짜 한 3개월도 안되어서 이 동네가 일어날 것이다”그러고 해서. 대체나 그 말을 듣고 동낭치 말을 듣고 인자 쌀도 많이 주고 뭐를 많이 주고는 인자 그 재를 짤랐제. 마을사람들이 그 재를 짜른디, 어째 땅에서 피가 나오더래. 땅속에서 그 재 짜른 가운데가 피가 나와서 이상하다 했제. 그 마을 앞에 한가운데가 큰 놋강 시암이 참 진짜 좋아요. 얼마나 따숩고 좋아. 우리도 그곳에서 몇 개월 살았는디, 인공 때 그 마을로 피난와가지고 거기서 몇 개월 살았는디, 그 물이 어떻게 따숩고 좋은 게 그 도랑에 빨래하고, 아무리 눈 속에 손이 얼어도 거기물에 가면 따뜻하게 녹아라. 그렇게 따순 물 매일 흘러서 빨래하고 김장하고 그 마을에서 시암이 있는디, (동냥치가 또) 세상에 그 시암도 이렇게 갈아서 뿜아라 해서, 그 물을 따라내고. 많이 나온께 따르기가 힘들어서. 그 때는 기계도 없고 그랑께. 근디 검은 소가 이렇게 반이나 무릎을 꿇고 있드래요. 물속에서. 긍께 그 소가 안 나왔으면 진짜 그 마을이 좋을 것인디. 그런께 망할라고 그랬다고 어른들이 하는 말이 그래. 그래갖고 어디로 갔냐면 우리 집 짓고 사는데 거 흙 파낼 때 바우가 있는가 그랑께 그 바우가 있는가 그랑께 그로 해 가지고 까치골로 해 가지고 까치골 이렇게 내려가갖고 홍부리 거 그 전에 연사숙 논인디 바우가 또 깔렸어. 거기 좋아. 논의 터가. 그리 해갖고 보림사로 넘어갔어. 그랬는디 보림사로 넘어갖고 그래갖고 보림사가 절이 되아갖고 그렇게 보림사 절이 일어났다네. 시방 거기가 절이 될 것인디, 소발자국이 진짜 있어요. 바우에가. 이렇게 발자국이 그라고 지금 문바우 서다빠꾸 발때죽이 있고. 어른들이 가서 뵈인디 참말로 딱딱 있대야. 그래갖고 보림사로 딱 넘어갖고 보림사가 절이 일어나갖고 그렇게 좋았다가 인공 때 불이 나서 글지 절중에서는 큰집절이여.

 

 

 

 


자료번호 / 06_12_07_FOT_20160720_JGR_0002
제보자(구술자) / 정감래(여, 81세, 우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