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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면

[부산면] 할머니가 반란군 노릇을 하거소? 금메!

장흥문화원 2017. 11. 8. 10:38

 

 

 

할머니가 반란군 노릇을 하거소? 금메!
▶ 한국전쟁 중 유치면 오복리 사미동과 부산면 성자마을 인근 지역에서 겪은 경찰에 의한 피해에 관한 증언이다.

 

 

6·25 때 내가 8살인가, 10살은 못 되어. 여그 부산면 물 건너 산 밑에 집 두 채가 있었는데 내가 거그 살았어. 우리가 8남매 인디 놈의 집으로 소개 나와서 산디 그 우게가 총을 놓고 난리가 나 갖고 우리 아버지는 영락없이 죽게 생겼다 싶었지. 죽지는 않았는디, 우리 집 사는 할머니하고 우리 아버지하고 둘이만 어른이라고 어째게 두들겨대든지. 다 기억해요. 큰방 아재가 친척이었어. 그 아재가 지게 삐빵끈을 해 갖고 짊어지고 어디 갈려고 했는디 어쨌는지 삐빵끈을 만들어서 놓아뒀어. 순경들이 그 삐빵끈을 보더니 반란군 짐 맡아 놓았다고 어디 짊어지고 갈라고 했냐고 우리 아버지하고 그 할머니하고 디지게 두들겨. 죽든 안했어요. 그 추운 겨울 인디 농사짓는 또랑 물에 빠쳐서 디지게 두들겨 팼어. 순경들이 집을 다 태웠어. 어찌 내가 순경들이 태운 줄 아냐면, 반란군 산다고 그랬거든. 반란군 나쁘다고 해도 실지로 반란군들은 사람 죽이지 않았어요. 반란군도 없었고. 반란군이 누구냐면 평상 부락 사람들이여. 유치에 살 때 오복리 사미동에서 살았는데, 우리 동네에서도 당했어야. 그 사람이 경찰인가 야문 사람이었어. 지둥나무에 묶어 놓고 총을 싸부렀다고 하데. 그 사람이 문 가였어. 그것은 반란군이 죽였어. 경찰인지는 몰라도 우익이었어. 또 우리 할머니가 경찰서에 잡혀 갔어. 할머니는 피난을 안 가고 집 지킨다고 남아 있었제. 그란디 반란군 밥해 주고 반란군 편들었다고 순경들이 저그 부산지서에 가둬 버렸어. 근디 할머니 동생이 좀 야물었어. 지서에 가서 어찌고 저찌고 해 갖고 할머니는 무사히 나왔어. 할머니가 반란군 노릇을 하거쏘, 금메. 당시에 할머니가 왜 집을 지키고 있었냐면, 부산면 사람들이 다 가져 가 부러. 쌀이고 뭐고 다. 순경들이 앞을 서고 가면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서 집에 갔어요. 근디 자기 것도 아닌 것을 다 가져가고 그랬어. 그래서 할머니가 집을 지키고 있었어. 그러다 잽혀 갔제. 할머니는 묘하니 살았지만 딴 사람들은 집 지키다 많이 죽었다고 하든만. 부산면으로 피신하기 전에 유치는 밭이 다 산 밑이라 뽕을 따 갖고 온디 총알이 눈앞에 뚝뚝 떨어졌어. 반란군인줄 알고.

 

 

 

 

 

 

                                                            구술중인 박경림씨

 

 

 

 

 


자료번호 / 06_12_09_MPN_20161116_PGR_0001
제보자(구술자) / 박경림(여, 75세, 성자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