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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문림의향 특집

[의향편] 부용사에서 죽은 동학농민군과 일진회 밀고자

장흥문화원 2017. 9. 12. 11:18

 

 

 

부용사에서 죽은 동학농민군과 일진회 밀고자
▶ 부용산에는 절이 많았다. 그 가운데 부용사는 동학란 때 폐쇄되었다. 1894년 장흥석대들전투 후 농민군 패잔병들이 부용사로 피신하였는데, 그 당시 일진회에 가담한 마을사람이 밀고하여 모두 죽임을 당했다.

 

 

옛날에 우리 알기에도 호랑이 물린 사람이 더러 있었죠. 우리 알기에도 저 나들 씨 어머니라고 그 냥반이 저 창고 뒤에 쪼고만 오두막집에 살았는데, 할머니가 어깨를 물려가지고 감고 다니고 그랬어요. 오래 신고(辛苦)했죠, 고생을 많이 했죠. 우리 한 78살, 89살 먹었을 때. 지금 나이가 84지요. 계유생. 이 냥반하고[옆에 한 어르신을 손짓하며] 동갑이죠. 여그 절이 컸는데, 이 부용산에 절이 문헌에 나타난 거는 중대사 석대사 석수암이라고 있어. 석수암은 저 골창 보고 석수암이라고 그래. 저저저저 큰 골창[부용산 가운데 큰 골짜기를 가리키며] 절터가 있어요. 지금 현재 있는 게 아마 중대살꺼요. 석대사라는 것이 아마 얼음바위골, 빙암골인데 빙암 글자 그대로 얼음바위골이제. 얼음박골. 우리 어려서 빨리 하면 얼음박골, 얼음박골, 얼음바위골, 빙암고, 거가 절터가 있어. 축대가 차아악 싸졌죠. 여전히 있어. 아. 우리 여거 중대사, 부용사가 없어진지는 동학난 때, 동학란 이후에 없어졌어요. 저기 저 뭐야. 의병들이 장흥석대에서 섹때뜰(장흥읍 석대들)에서 예 해가꼬 패잔병들이 패전해가지고 자울재 넘어서 은거, 숨어가꼬 있었는데. 일진회 가담, 우리 마을에서 일진회 가담한 분이 있었어. 나 씨하고 박 씨라는 사람이 일진회. 그 사람들이 밀고를 해부렀제. 의병들이 숲 저 숨어가꼬 있는데. 그래가지고 저 저산 봉우리에서 걍 지멱을 한께. 어르신들 말씀에 많이 돌아가셨다고 해. 수는 모르제. 섹때뜰에 숨어가꼬, 솔찬히 많이 참변을 당했다고 그랫싸. 그 후로 이자 갑오동학 후로 절이 한 몇 년 있다가 폐쇄됐다고 해. 절 운영을 못하니께. 거 옛날 한옥 지왓장도 많고 그래. 나씨랑 박씨라는 사람이, 아까 그 호랭이 물렸다는 사람, 그 냥반 남편이 밀고를 해부렀어. 나00 씨라고. 그랑께 동학군들이 많이 죽었지. 이 골짜기가 절 유래가 굉장히 많아요. 베틀바위라고 거서 동학할 때 거그서 베틀 짰다고 베틀바우라고. 절 문 아캐(앞에)가 있었어. 베틀바위도 있고 그래.

 

 

 

 

 

 

 

                                                   운주마을

 

 

 

 

 

 

 

자료번호 / 06_12_04_FOT_20160705_KJH_0002
제보자(구술자) / 고재현(남, 84세, 용산면 운주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