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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림의향 특집

[의향편] 천도교로 인해 혼연일체가 되다

장흥문화원 2017. 9. 12. 11:26

 

 

 

천도교로 인해 혼연일체가 되다
▶ 동학 때, 덕도의 소년뱃사공 윤성도 할아버지의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그분의 개인적 노력도 있었지만, 당시 덕도 주민들 대부분이 믿었던 천도교의 영향이 컸다는 이야기다. 당시 덕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덕도분들이 참, 전부가 그렇게, 그때는 천도교를 다 했는데, 천도교 하신 분들이 거의 가 했어요. 거의 하여튼 안한 사람이 별로 없다시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라면서 동학혁명군들이 그렇게 쫒겨서 오고 그렇게 피신을 하고 그런다 하더라도 다 숨겨주고 전혀 외부로 발설이 안 되야요. 그것만 본다고 하더라도 이 지역이 얼마나 하여튼 강하게 뭉쳐져 있었으까, 하는 것을 우리가 지금도 짐작할 수가 있고, 또 거기 그렇게 600명이 그렇게 피란골에 있었다 한닥 하더래도 그것이 누설이 안됐기 때문에 가능했고, 또 여기 부락민들이, 할아버지 혼자서 이렇게 모시고 다 갈 수가 없어. 자, 어느 때 물이 만조가 되니까, 이 시간에 옮겨야 된다, 사람들을 피신을 시켜야 되니까, 이번에 그 어느 때 몇시경에, 달이 어느 정도 떴을 때, 그때 거시기 사람 피란을 몇 명안, 10명이면 10명, 20명이면 20명, 많이 싣고 가다가 어떠한 문제가 있을까마니 많이는 안 델꼬 가가꼬, 그렇게 하여튼 여러번 그렇게 움직여서 그렇게 피신을 다 시켰는데, 그 일을 할 때 지역사람들이 협조를 안 해줬다 하면 어떻게 할 거여. 못하지…. (덕도는) 전부가 혼연일체가 됐기 때문에 감히 했고, 또 이 부락민들이 자 몇시경에, 달이 어느 정도 떴을 때 물이 만조가 될 것이다, 그라면 그때 사람을 몇 명만 좀 데리고 온나, 그라고 거시기를 하면 그리 데려다 주면, 거기서 배로 실고 거기서 가고, 그런 것을 본다 하면 이 지역 사람들이 또 아까도 사공 얘기를 했지마는 그분들이 그렇게 철저한, 그런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전부가 피신을 시킬 수가 있고 무사히 구출 할 수가 있었지, 글 안 한다고 그라믄 어떻게 해서 했겠느냐. 참 여기 이 지역은 참 대단한 지역이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해봐요, 지금도…. (일본이 순시선을 보내서) 요 득량도에 띄어갖고 여그서 왔다갔다 하고 이렇게 순시를 했어요. 그래도 그것을 무릅쓰고 여하튼 그걸 한 거여. 그라니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하든지 그사람들은 어느 때 와 갖고 어느 때 대개 철수를 하고, 이런 것을 잘 간파를 해 갖고 저녁에 얘기를, 피신을 시킨다든지, 새복(새벽)에 거시기 한다든지, 할아버지 직감에 어느 시간이 좋것다 그라믄 그 시간을 이용해서 피신을 시킨 것이여. 할아버지가 몇시경에 피신을 시킬라니까 몇 명만 보내라, 그라믄 여기서 보내. 작은집 할아버지라고 흥도씨, 윤흥도씨라고 그분하고, 홍의법씨, 이 양반들이 그 2분이 주축이 돼서 피란골에 숨어있는 분들을, 이분들이 주동이 돼 갖고 죽도까지 10명이면 10명, 몇 명이면 몇 명 이렇게 해서, 그분들이 주축이 돼서 협조를 해주고… 그래서 세분이 감사서 이렇게 한 것이제… 혼자서는 못해요, 혼자서는.

 

 

 

 

 


자료번호 / 06_12_10_MPN_20161126_YBC_0002
제보자(구술자) / 윤병추(남, 84세, 회진면 장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