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림의향의 향맥을 지키며,장흥의 문화를 일구어 갑니다

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문림의향 특집

[의향편] 아직도 집 뒤안 대숲에 묻혀있는 항일의병장군 고무래 정(丁)씨의 갑옷

장흥문화원 2017. 9. 12. 11:29

 

 

 

아직도 집 뒤안 대숲에 묻혀있는 항일의병장군 고무래 정(丁)씨의 갑옷
▶ 고무래 정 씨 항일의병 장군이 살았던 집은 소쿠리 형국인데 분명 부자 터다. 이화학당까지 나온 고모는 할아버지가 대단히 풍채가 좋은 장군이었다고 기억했다. 한 번은 일본군을 피해 보성 회천 정 씨 본가의 항아리 속에 숨었다고도 한다. 지금도 예전 장군이 살았던 집의 뒤안에 장군이 입었던 갑옷이 묻혀있다고 한다.

 

 

제가 인제 이 집의 네 번째 주인인데. 어, 이 집터가 거 풍수로 말하먼 여기도 유명한 소쿠리 터라고 그러 드라고요. 결국 소쿠리 터는 소쿠리 어퍼 논 것이지 않습니까, 어퍼나서. 결국 소쿠리라는 것은 머 용도가 물건을 담고 모으는 이제 의미닌까. 여기는 부자 자리 터가 맞는 거 같습니다, 보닌까. 그런데 이제 그때 왔을 때 이 울타리가 엉망이 됐었어요. 집안이 결국 이제 가세가 기울면서 쉽게 말해서 소쿠리의 테두리가 다 터졌다는 형국이 되죠. 겨우 인제 안채만 남아 있는 거를 갖다가, 지금 30년 넘게 수습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인제 동네 들온 지가 한 11년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인제 동네 분들하고 이런저런 이제 얘기도. 주서들은 들은 걸로 인하면 처음에, 다 추정입니다, 절대적으로 추정인데. 첫 주인들이 정씨, 고무래 정 가. 본집이 이제 회령에 있는 회령에 있는 그 고무래 정(丁)자를 쓰는 정 씨인 걸로 추정이 되요. 그 집에서 처음에 이 집을 인제 짓기 시작했습니다, 지었는데. 송전에 바로 옆 동네, 인제 한 동네가 됐지만. 이제 옆에가 송전 동넨대. 며칠 전에 우연히 일 하러 갔다가, 인제 이 집 자손이 되시는 그 아짐이 고무래 정 가 신데. 그 아주머니한테 엄청난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기 고모한테, 살아 계신 데요 지금. 아주 그 연세가 많으셨고 옛날에 이화학당에도 다니셨대요. 그때 유지들이셨겠죠. 그래서 그 고모님이 연세가 많이 드셔도 어릴 때부터 주서들은 얘기가. 많이 들은 얘기가 예전에 할아부지가 엄청난 그 장군이었다, 그럽니다. 그래서 등치도 대단했었고 머 왠만한 담벼락도 한 손으로 푸욱 날라다니고. 그 정도로 풍채가 우선은 컸었죠. 컸었는데 어 정확한 년도나 시기나 역사적인 사건은 머 도저히 기억들이 희소하닌까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 장군이셨대요. 그래가지고 갑옷을 받았든 장군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갑옷을 이집의, 그 지금 저쪽 대나무숲에다가 묻었대요. 그런데 그냥 묻지는 않았을 것 같애요. 어떤 머 궤짝, 최소한 궤짝이나 해가지고 썩지 않게 해가지고 아마 묻었다고 그러는데. 그것을 저보고 찾아달라 하면, 그게 진짜 나오기만 하면 어떤 역사적인 증거물이 될 것 같은데. 일단 이제 여기 그 정 씨들이 이집을 처음 지으면서 회령 회천에 있는 고무래 정 씨들 본집, 정해룡 씨가 본집이죠. 제일 큰 집인데. 거기 하고도 친인척 관계인 것 같구요. 예전에 이제 피신을 할 때 그 집에 가서 항아리에서 피신을 해서 일본군들을 피했다, 라는 그런 얘기 까지도 들었습니다. 그 아마 일제 땔 것 같애요. 일본군들이 일본 순사들이 이제 찾으러 수색을 했다고 그러닌까. 그래서 인제 그 때부터 역시 항일하고 어떤 민족적인 운동이 역량이 있는 그런 집이었던 것 같고.

 

 

 

 

 

 


자료번호 / 06_12_04_MPN_20161212_KYD_0001
제보자(구술자) / 김연대(남, 47세, 용산면 송전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