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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문림의향 특집

[의향편] 김재계 선생과 양영학교

장흥문화원 2017. 9. 12. 11:41

 

 

 

김재계 선생과 양영학교
▶ 장흥 회진 덕도초교 전신인 명덕학교의 설립과 그 이전의 상황에 관한 이야기다. 천도교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사립학교운동이 한창 일어났던 1925년 무렵에 간이학교로서 양영학교가 만들어졌는데, 김재계 선생이 누군가의 밀고로 감옥에 들어가고, 바로 그러던 무렵에 학교가 폐쇄가 됐다. 당시 학생들은 한 50명 정도 됐는데, 구술자인 한승원 선생의 아버지는 한문선생이었고, 당시 어머니는 유일했던 여학생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분이 우리집 바로 이웃집이여. 내 생가라고 하는 바로 그 옆집에서 김재계 선생이 나고 자랐는데, 그분이 그 아버지도 동학활동을 하고 했지. 그분이 일찍이 서울로 가가지고, 동학 후손들하고 만나고, 손병희하고 만나면서. 동학군에 가담했거나 그 후손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이렇게 모아서 낸 것이, 천도교 재단이잖아. 천도교 재단을 만들었는데, 천도교가 손병희 선생이 일본에서 있다가 감형으로 일본으로 도피해 있다가 들어와서 천도교를 만들었는데, 그러기 때문에 동학의 후신이제. 그래서 동학후신인데, 그러기 때문에 천도교는 구파와 신파로 나누어져. 신파는 최린을 중심으로 한 친일세력이 되고. 구파는 전통동학 후신으로서 굉장히 저항적이지. 그래 가지고 독립활동도 하고 자금도 보내주고 그런 활동을 했제. 그런데 1925년 그 무렵에는 사립학교운동이 일어난다고. 우리나라 전체에. 그니까 이화학당이라든지, 선교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 수피아, 이화학당, 연세, 세브란스 그쪽에, 거기서 그것들이 일어났을 때, 김재계 선생은 섬에서 나고 자랐잖아. 김재계 선생이 뭣을 했냐면 손병희 밑에서 중앙금용관장을 했어. 지금으로 치면 총무과장.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제. 천도교 구파 살림살이를 다 했으니까. 그런데 그분이. 그 당시에 천도교 구파가 기독교는 타협을 했지. 일본하고. 그런데 이분은 굉장히 핍박을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 독립을 할려면 민족이 깨어나야 된다, 그래가지고 사립학교 운동이 일어났는데, 덕도라고 하는 조그만 섬이 그 당시에 인구가 한 2천명 됐는데, 거기, 새텃물, 중촌이라는 데가 있어. 중촌. 중촌, 새텃몰, 중촌, 대리. 대리하고 새텃몰 그 사이에. 지금은 우리 신상리하고 대리하고 그 사이에 중촌이라고 있었는데, 거기다가 학교를 만들었지, 사립학교를. 그래가지고 2년제 사립학교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양영학교라고, 양영. 영재를 키워내는 학교라, 그래서 2년제 학교를 만들었어. 그러니까 10 몇 살 먹은 애에서부터 한 18, 19살 먹은 사람들까지 해서 한 50명씩 그렇게 해서 키웠는가 봐. 그것을 우리 아버지가 거기 한문 훈도를 했어. 한문선생을 했어. 그러니까 한문선생을 하면서 서무, 학교 살림살이를 하고, 덕도초등학교 그러니까 지금 명덕학교가 생기기 이전의 학교였어. 그것을 이제 강제로 폐교를 시켰지. 일제가. 김재계 선생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을 누가 이렇게 밀고를 해가지고 들어가서 전기고문 받고 그래가지고 돌아가셨어. 그래서 독립유공자 대접을 받고 있는 거야. 그래서 김재계 선생이 감옥 들어갔다가 들어감과 동시에 학교가 폐쇄되고, 그 당시에 우리 아버지는 가지고 있는 모든 책들 다 불태우고 그랬다고. 그래가지고 탄압이 심해지고 그러니까 천도교라고 하는 종교로서만 남고 그랬던 거지. 그러고 이제 그 학교 학생 가운데, 유일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그 학생이었고,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스승과 제자로서 만난 거지.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에 전처가 있었는데 우리 큰누님이 있지. 유일한 우리 아버지 전처 소생으로서는 딸이 하나 있는데, 이혼을 하고, 그러고 인제 새로 장가 간 여자가 우리 어머니라. 그러고 그 전처는 관산 동촌으로 재가해가고. 좌우간 그러니까 그 당시로 본다면 동학이 뿌리로 교육을 받게 되고 그런 거지.

 

 

 

 

 

 


자료번호 / 06_12_10_MPN_20161201_HSW_0002
제보자(구술자) / 한승원(남, 80세, 회진면 신상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