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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림의향 특집

[의향편] 일본군도 토벌대도 꼼작 못하게 한 박쥐약 어르신

장흥문화원 2017. 9. 12. 13:08

 

 

 

일본군도 토벌대도 꼼작 못하게 한 박쥐약 어르신
▶ 일제강점기 별호가 ‘박 쥐약’이라는 어르신이 있었는데, 늘 쥐약을 품고 다녀서 붙여진 호칭이다. 쥐약을 먹고 죽을 각오로 일제의 단발령에 반발하였다. 또 한국전쟁 중에 토벌대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 5명을 총살시키려고 할 때도 나서서 맨 몸으로 가로막아 주민들을 구명했다고 한다. 어르신 손자가 현재 광주 서예원 원장이다.

 

 

그분이 별호가 ‘박 쥐약’이여. 쥐약을 항상 품에다 싸가지고 다녀. 쥐약을 왜 싸고 다니냐면, 옛날 일제 말에 단발령 내렸을 때 머리를 안 깍을라고. 머리를 깍으면 먹고 돌아가실라고. 그랑게 일본사람보고 나쁘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은 양반이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디지던 말던지 하고 머리를 자를 것 인디 그 사람들은 머리를 안 잘라. 하루는 지금 같으면 경찰서에서 소환장이 내려왔어. 그랑께 아들한테 가마니 메는 거 챙기게 하고 같이 가. (순사가) “왜 당신만 오라니까 아들하고 같이 왔소” 그래. (박 쥐약 그 양반이) “나 죽으면 당신들이 초상 치를 것이요? 나 죽으면 그래도 자식이 짊어지고 가서 묻기라도 해야제” 했대. 그랑께 머리 안 자르고 가시라고 했대. 그때 머리를 안 자르고 자기 아들도 머리를 안 자르고 지금 손자까지 머리를 길렀어. (그 손자가) 지금 광주 서예원 원장 한다고. 지금은 고문서 번역한디. 지금은 우리 대한민국 삼인방에 들어가요. 한문으로. 그분 할아버지 인디 그랑께 아까 토벌대를 지나간디 장평지서에서 나왔어. 그랑께 인자 밤에는 힘을 못 쓴게 낮에 나와 그분들이 나와갖고 불을 지른거여. 전부 인자 밤에 그 사람들 활동 못하게 할라고. 그란디 불을 지르고 젊은 사람은 저리 끄집어 가고. 그란디 다섯 사람이란 말이여. 그때 다섯 사람을 모아 놓았는디 인자 방아쇠를 당그면 죽을 판이여. 그랑께 그분이, 그때 몇 살을 자셨는지 몰라, 딱 이렇게 [팔 벌려서 가로막음] “이 사람들 죄 없어. 죽일라면 나를 죽애. 나는 살만큼 살았어” 그랬어. 그라면 60남짓밖에 안됐을 꺼여. 그 양반이 “이 사람들은 죄 없어. 죽일라면 나를 죽여. 나는 살만큼 살았응께 죽어도 여한이 없어”하고. 그런 찰나에 상사등급이 “무슨 일이냐?”고 한께 이래 이래해서 이 사람들 총살시키려고 한께 못하게 한다고. (상사가) “그래 놔줘”해서 그분들이 살았거든. 그라고 그 모퉁이에 비가 있는디, 우리는 모른디, 그 비에 그 내용이 적혀있다고 그래.

- (그분 성함은 어떻게 되요?)
자는 봉화 씨고, 기현 씨고, 호는 강제고 강할 [강]자. 별호가 ‘박쥐약’이고 그래.

 

 

 

 

 

 

 

자료번호 / 06_12_07_FOT_20161123_MOH_0003
제보자(구술자) / 문욱헌(남, 80세, 장평면 녹양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