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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흥읍

[장흥읍] 고싸움과 중로보기

장흥문화원 2017. 9. 13. 11:18

 

 

 

고싸움과 중로보기
▶ 보림문화제 고싸움은 대단했다. 우리 마을에서 새끼줄로 꼬아 고를 만들었다. 마을 앞 들판에서도 내안리와 원도리 사람들까지 와서 고싸움을 했다. 마을 처녀들은 이웃 마을 처녀들과 강강수월래 중로보기를 하면서 놀았다.

 

 

행원에 지금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멫 분 안 되지만은 항시 고 제작을 맡어서 했기 때문에 지금도 고를 꼬아라 하먼 딱 만들어낼 수 있어 지금도. 그란데 그 행사가 없어지고 지금 멫 년 안 만들고 그러닌까 그 요령이 자꾸 저 헷갈려지제. 우리 마을에서 모도 만들어가지고 나갔으닌까. 그라고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고. 또 인제 고가, 그 고가 행진을 하다 보면은 이 새끼줄 이라나서 옆으로 쓰러진다든가 머 그라먼 가서 바로 잡아주기도 하고 인제. 고 사용하는 방법도 그 타는 사람들이 전부 그 교육을 시켜가지고 했는데. 그 후로 인제 그 고만 만들어서 주면서 행사를 해라, 주면은 고가 막 엉망이 되아부러. 또 가서 다시 다시 해서 주고. 그 문화제 때. 옛날에는 보림문화제를 할 때 그 고가 나가제. 근데 그 고가 없어지먼, 문화제도 그 고가 없어져불먼 관객들이 없어져부러. 처음에 그 고를 만들어갖고 띄우고 인자 머야 그 공화당 모도 길현주, 쩌그 저 누구여 모도 그 분들 있을 때는 고를 마악 크게 만들라 하제. 인원은 우리가 얼마든지 대마. 그래갖고는 고를 크게 만들어서 해보기도 하고 사고도 나고 난리였어, 그 당시에. 그때 세상만 해도 그거이 그렇게 그 놀이문화로 거 상당히 각광을 받았는데 지금은 그런 고된 일을 누가 할라고 그러겄어. 그 무거운 저것을 짊어지고 고싸움을 할라 하것어. 얘들도 안 할라 한다고 요즘은. 그라닌까 그 고를 인자 그 연습을 하면서 이렇게 한 것이다, 그라고 시연만 해라 그랬는디. 아 그 갖다 인자 붙쳐 불먼 이렇[두 팔을 맞대어 높이 올리며] 올라가 불고든, 파악 올라가. 겁이 나닌까 나두고 전부 도망가분단고. 고가 떨어지먼 인자 밑에 깔려가지고 그런 수가 있고. 일을 하던 일꾼들이 짚을 거더가지고 와서 꼰다고 이렇게 줄을 꼬아. 지금 기계로 꼬고 그러지만은 그때는 손으로. 꼬아가지고 그 고를 만들어서, 그 머여 그것 보고 인자 동네 그 골목줄이라고 하제 인제. 그래가지고는 인자 여그서 쫌 만들고 쩌그서 쫌 만들고 해가지고 갖고 나오먼 그놈을 합해서 큰 고를 만들어. 그라먼 인제 그 외동은 외동대로 그렇게 만들고 내동은 내동대로 만들어가지고. 상당히 큰 행사였어. 그라믄 저쪽에는 저쪽 그 원도리 그쪽 사람들이 와서 줄을 당기고 이쪽에서는 부산면 내안리에서 많이 오고. 그 간단한 다과를 준비라 할까 머이라 할까 다과 준비도 하고. 그래가지고 음식도 나나 묵고. 그거이 하나의 저거제 저거이 없으닌까. 요즘같이 텔레비전 같은 것도 없고 뭣도 없고 그러닌까 답답하닌까 강강수월래라도 해가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인자 왔다 갔다 하면서. “아, 거 저 누 집 규순가 참 저 좋게 생겼더라, 그거이 중신 좀 해라.” 그래가지고 중신도 하고 그런 거여 그거이.[웃음] 그란디 인자 어머니들이 보제. 어머니들이 봐갖고 “아 거 저 규수가 누 집 규수냐.” 그래가지고는 그 마음에 들먼 거그 중매를 좀 해라, 그라고 매파를 보내고 그라제.

 

 

 

 

 

 

 

 

                                                                고싸움

 

 

 

 

 

 

 


자료번호 / 06_12_01_MPN_20161205_WHJ_0002
제보자(구술자) / 위현종(남, 80세, 행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