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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장흥읍

[장흥읍] 강진 군동사람들과 맞짱떴던 송암마을 박영감

장흥문화원 2017. 9. 13. 14:09

 

 

 

강진 군동사람들과 맞짱떴던 송암마을 박영감
▶ 송암은 강진 풍동과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풍동 사람들은 가까워서 장흥 장을 보러 송암을 지나다녔다. 군 경계인 사인암 앞에는 주막거리가 셋이나 있었는데 풍동사람들이 와서 위세를 부리고 놀았다. 옛날에 풍동은 반촌이고 송암은 옹기를 굽는 민촌이었다. 어느 날은 송암에 사는 박영감을 혼내주려고 풍동 사람들이 때로 와 중보에 숨어 있었다. 힘이 쌘 박영감은 때로 몰려온 풍동 사람들을 헛기침 하나로 물리쳤다.

 

 

저희 그 외할아버지되신 분이에요. 그래서 인자 이름은 제가 인자 그냥 박영감, 우리 어머니 성이 밀양 박 씨기 때문에 박영감인데. 여기서 그 군동 쪽 3개 마을이 이용하는 그 농사 물이 그 이케 저 감천교 위에 보가 있어요. 거기서 이렇게 우리 들을 경유해서 내려가고 있어요. 그러고 인제 군, 이렇게 면이 연계된 마을 위치였어도 거기가 옛날에 주막거리가 세 군데가 있었어요. 경계에서 너머 강진 쪽으로 치우친 데가 둘이 있었고 이쪽 장흥 쪽 땅에가 하나가 있었고. 그런디 언제나 거그 인제 풍동 모도 그쪽 군동면 사람들이 거그서 윷놀이도 하고 술도 즐기고 그렇게 놀다가 대고 그랬었는데. 그 이전에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그 이케 그 중보라고 그랬는데, 이 물 그 인수로 거그서 해서 이렇게 물이 일정기간 저장 역할을 하는 그 이케 중보가 있어요. 우리가 일컬어 중보라고 그럽디다. 그 가을 같은 때믄 고기가 얼만큼 많이 살았는지 그쪽 사람들도 오고 우리 마을 80호 주민들이 거의 50호가 나가서도 자기가 만족할만하게 고기가 잡혔어요, 그러게 바구니로. 그런 그 보가 있었고 그랬는디.  그 보가 이께 처음에는 송암 소유였는데 말이 그래, 우리 할아버지가 그 사람들에게 풍동 사람들에게 팔아먹었다고, 그런 전설이 있는데.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그 지금도 그렇습니다만은 그 군동면 쪽 사람들이 강진 장 보다는 장흥 장을 많이 지금도 애용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장길이 이렇게 내려간다 하면 그 아마 지금 같에서는 아마 옛날에 장군처럼 힘이, 외할아버지가 박영감이 엄청 쌔셨나 봐요. 그래서 그 분들이 오늘 저녁에는 박영감을 한번 혼내줘야 되겠다, 그라고 거그 인자 이렇게 수로 밑에 가서 숨어갖고 몇 사람들이 장 장군들이 있는 건데. 그 몰래 그래잖애 아마 오늘 저녁에 박영감을 한 번 혼을 낸다 하고 공개적으로 한 모냥이여. 그런데 우리 그 어머니한테 들었는데 외할머니 되시는 분한테 외할아버지가 맹기베에요 맹주, 지금 실크라고 그러잖아요. 그것을 한필을 내놔라, 그래갖고 몸 전체를 그걸로 전부 동여맸대요. 얼굴만 냉게놓고. 그래고는 나가셔서 박영감이 인자 가가꼬, 누구가 나를 저기 할라고 잠복해 있다, 그 근처 가서 헛기침을 크게 하시믄 거기서 나타나서 그렇게 가해를 못했대요. 그 기침소리에 놀래서 그냥 그 가버리고. 그래서 아마 그 위풍이 그렇게 저기 한디. 그렇게 악질적인 그런 저기는 아니셨다고. 그런데 마을을 보호하는 차원. 우리는 못 느꼈습니다만은 옛날에는 양반, 상놈 그래가지고 양반촌은 반촌이라 하고 일반 상인들, 사농공상 그래서 그 이렇게 장사를 하나 그라먼 농사짓고 그러는 계급별로 사 계급으로 있었잖아요. 그래서 유일하게 옹기를 구웠던 그 만들었던 송암의 성촌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양반촌에 못 들고 반촌, 여그는 민촌이라고 그랬다는디 그때 말로. 그랬는데 그래서 그 민촌의, 근데 풍동 삼 개 마을은 전부 반촌이어요. 그래서 아마 그런데서 그 옛날에 그 사상적인 그런 저기를 아마 차별을 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저기를 부렸나, 지금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 유래가 남았는지 지금 그 한 60대 70대 되신 우리 후배들이 저기서 열댓 명씩 때를 지어가지고, 자전거가 간다든지 하여튼 그 쪽 사람들이 내려가는 길목을 막어갖고 주먹질을 하고 그렇게 위세를 부렸어요. 그래가지고 경찰들이 송암 애들 전부 잡어가야 되겠다, 하는 저기를 내가 정보를 입수해가지고 그 피신도 시켜서 모면하고 그런 저기도 있었는디. 근디 아마 일시적으로 생긴 그런 저기가 아닌 거 같에요. 그런 역사가 있었대요.

 

 

 

 

 


자료번호 / 06_12_01_MPN_20160920_CYS_0001
제보자(구술자) / 최육수(남, 76세, 송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