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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문화원(문림의향 장흥설화)

관산읍

[관산읍] 관산 풍수

장흥문화원 2017. 9. 15. 17:18

 

 

 

관산 풍수
▶ 장흥 관산읍 각 마을들의 지형을 토대로 한 본인의 생각과 주변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종합해 구술했다. 천관산을 중심으로 해서 각 마을들의 형국을 풀이했고, 각 마을마다에서는 그런 형국에 부합하는 일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어느 동네에서는 무슨 형국이어서 인물이 난다거나 화를 입지 않았다거나, 부자로 산다는 등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내가 산 고향이 옛날 산연이라는 터 잡은 디 산서서 사요. 관산읍 산서서 살고 있는디, 옛날에는 산연 대 벼루를 써서 산연이었거든요? 그라믄 천관산 이하 그 내에 어르신들이 계산공파 경주이씨 문중 자자일촌을 해요. 자자일촌하고 있는디, 거기서 내가 태어났어. 어르신들이 얘기나 풍수 갖다가 지리학을 한 디 본께 저그 재밌등마, 구성진마. 천관산 형국이라는 것이 큰 바늘실 형국이예요. 갓 관(冠)자에 바늘실 형국인디, 우리 산연이란 마을은 산세가 용골이라고 그랬어. 용골.

- (용 용(龍)자?)
용 용자 용골이 있는데, 거가 큰 독, 이런 사이가 크나 큰 동굴이 있어요. 용이 나왔다 어거여. 그래서 용골이라고 하고. 산세를 타고 내로믄 저 산이 이렇게 기러기 나르데끼, 구봉이 하나, 둘 싯, 닛… 이렇게 구봉이, 구봉산이 이렇게 쭉 펼쳐 있어요. 봉우리가. 그 담에 산세로 내려오머는 일제 강점기에 큰 한이 맺힌 자리예요. 일제강점기에. 그 산세를 잘렀데여 일본놈들이 산세를 짤라 불었어. 밑을. 밑을 잘라 갖고 인자 그렇게 일본놈들이 사람, 백성들 못할 일을 많이 시켰어. 할아버지 할머니들 종 부려먹데끼 30년 일세기를 빌어 묵고, 사람 다 죽이고, 그래 어르신들 얘긴디 내가 현실, 현 실로 죽고 내가 또 산세를 배웠어요. 해강 선생님하고 같이. 그래 산세를 잔 돌아보니까 천관산에서 제일 좋은 자리가 용전이요. 거가. 위인들 많이 나오고, 박사 많이 나오고 검판사 많이 나온 디, 사람 많이 나온 디가 여그 용전이요. 그러면 천관산을 올라가서 보머는? 옛날에 여그 저 구룡봉이라고 구룡봉이 있어요. 거기다 깃대를 세와서 깃대봉이 있고, 구룡봉이 있거든요. 깃대를 세와서 봉화로 사방디 연락을 하고 그렇게 한 자리가 있어요. 그렇게 한 자리가 있는디, 그리 거까지 가 갖고 돌이, 돌이, 섰는 돌이 숙어도 전부 용전으로 숙었어요. 용전 내다봐요. 돌이.
- (돌이?)
그렇죠. 천관산 여가 앞면이거든요. 요쪽이 앞면으로 보고 그란디, 돌이 전부 용전으로 숙었어. 그래서 거가 대신다고 그란 거여. 굵은 사람도 나오고. 유물들이 다 나와 이쪽에서. 그라믄 거가 장흥 위씨들이 살고 계시는 고장인디, 거그서 장흥 의씨들이 다 나오요, 사람들이. 다 나오요. 다 나오고, 산서로 내려오면 산이 짤러졌다는 거가 용골에서 거그 보고 부안동이라고 그래요. 부안동 기러기 안(雁)자 뜰 부(浮). 뜰 부, 기러기 안, 부안동이라고 그래요. 그란디 거가 일제 때부터 방죽을 막은 닥 했는디, 저 방죽이 대차나 재작년에사 끝났오. 방죽을 막었어요. 그랑께 부안동에 뜰 부자 기러기 안자, 기러기가 앉아서 쉬었다 간 자리가 됐어. 방죽을 물을 막어 놔서. 그래서 저그 나가자면 척다리가 있는디 척다리게 방죽도, 저 우리 박정희 대통령, 5·16 그 양반이 서들어서 엊그저께사 준공이 됐어, 도로갓에가. 산정이 욱에가. 그란디 우리 삼산 부안제 방죽은 인자 완공이 됐그등요? 그라믄 그 산세 짜른 데가 산이, 우리 마을 뒷산 동산으로 보고 큰, 존 산이여요. 그 산이 우리 아조 거, 중내락 한디, 중내. 중내락 한디,

- (가운데 산)
중내락 한디, 거가 구룡정(九龍亭)이라고 그래. 도로를 따악 타고 돌아가믄. 구룡정. 용이 아곱마리가 감고 있는디, 어디로 머리가 나왔냐, 모리가 나왔냐? 그거이 구룡정이라고 그란디, 대차나 알기는 알어, 산세 거짓말 못해요. 거기다 요, 여여여, 방촌 그 어르신들이 거가 저 선산을 이리로 옮겨놨거든요. 그래 인제 국면이 나와요, 그 구룡정에서. 그래 감고 도는 용 머리에서 산세를 찾아갔거든요. 대인이 나오고 있고, 우리 마을은 부안제가 돼 갖고, 뜰 부 기러기 안, 기러기가 앙거서 쉴락 한 자리가 돼서, 뭐 사람 한나나, 한나는 나오긴 나왔어. 판사 한나는 나오긴 나왔는디, 아까도 말씀하시다시피 간척사업을 해 갖고 대비 년자 산년이라고 썼는디, 산서라고 쓰거든요. 산서라고 쓰고 있고. 그라고 거기서, 산서서, 그리 돌아가자믄 수동이란 디가 있어, 수동. 내동 이후 수동마을이 있는디, 거그는 천관산에서 따악 산세가 내롸 갖고 쇠머리봉이라고 있어요. 소 머리봉 우두봉. 그라믄 그 밑에가 수동이요, 수동. 옛날은 경천이락 했는디 지금은 물 수(水)자 수동이그든요. 그란디, 수동인디 거가 소머리봉 거가 그륵케 산이 잘 생갰어요. 잘 생갰어. 거그서 큰 대인이 나와요. 사람이 소인이 나온 것이 아니라 체력이 크고 큰 대인이 나와, 장사가 나온디, 대차 그거 맞데. 그라믄 이놈을 옛날에 누가 지었드라냐 그랑께 수동이라는 마을을 이름을 고친 것은 고려말기 정감록 선생님이 이름을 짓데, 정감록이. 정감록 비결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들었어요. 그 마을에서 그렇게 사람 하나썩이 나와. 그라믄 새께, 앞에 아까 우리 이 말씀하신디 있습디여. 간척사업 원을 막었거든요. 박대통령 때, 원을 막어서 밥을 먹고 살게 되었는디, 그리 천관산에 쩌 건네 그 농장, 외동 3구로 돌아가자므는, 그때 거그 저 강점기에, 우리 저 백성들 델꼬 원을 막었어, 일본놈들이.

- (뭘 막어요?)
원, 농지를 막었어. 그 다음에 5·16 박대통령이 거그 회진을 막었어, 회진이라고? 거가 이순신 장군, 거가 역사가 솔찬히 짚은 자리여, 회진이라는 데가. 울둘목마니로. 그란디 그 앞에가 덕도란 산이 있어. 덕도란 산이 있는디, 그거이 갑오년 난리 때 덕도가 크게 덕을 봤드래여. 그래 덕도락 했드래여. 섬인디 안개가 콱 끼여 갖고 왜적들이 거그를 못 들어왔드래여. 왜적들이. 그래 덕을 봤다고 그래서 정감록에 이름을 지어 놓고, 그라믄 회진은 어채서 회진이라고 그랬냐 그라믄 물이 뺑뺑 돌았그등요, 터져 갖고, 원 안 막었을 때, 돌 회(回)자를 썼는디 입 구 둘 돌, 회자를 썼는디, 지금은 마을 이름이 변경됐어요. 회진이. 회진면입니다, 인자. 회진이 분면돼 갖고. 회진면인디 인자는 모일 회(會)자를 쓴답니다.
- (모일 회자?)
모일 회자. 새께가 우리 삼산 산 데가 새껜디, 새께란 말이 사이 사이 섬이 있고, 사이 사이 막으믄 원이 되꺼인디, 그래서 새께락 했등갑디다. 그란디 대차 거그를 딱 막은께. 새께가 연륙 하니, 새께가 갱물이 못 들어오게 막어부니, 우산이 무인이요, 우산 노란 데가 사람이 안 나온다 이 말이여. 물이 앞으로 지내 댕기믄 했으믄 사람이 나오꺼인디, 우산이 무인이라. 수동, 우산가 재갰다, 수동이란 데가 동에 맞어 부렀어. 수동 물 수(水)자 삼 수변에 마을 동(洞)자 쓰거등?

- (막을 독자?)

그란디 수동이란 데가 양쪽을 방죽을 딱 막어불었네? 물 딱 그 찰뚝그륵을 맹그라 부렀어. 물을 다 퍼서. 그래 갖고 수동이 관산읍내에서는 대 부자제. 지금은 젊은 놈들이 뭐 돈을 잘 못썼는가 금융계론가 어려와서 그란디 몰라도 우리 삼산 1구 하고는 못 따러와, 부흥이, 정부 빚이나 뭐 이른 것을 최대로 해보믄. 그란디 경지정리 답도 많고 그란디, 수동이란 디가 딱 동이 맞어 부렀네? 진짜 동에 맞었어. 저 정감록이 그렇게 이름을 잘 지었단 말이여. 옛날에. 허허이.

- (다 맞어 떨어져 불었다?)
딱딱 맞어 떨어져부러. 떨어져 나간다고. 그러고 요쪽으로 와 갖고 저 박사님게서 산동가 얘기를 해줬는디, 우산서 산동으로 돌아오거든요? 삼산 2구 우산이 삼산 3구거든요? 덕도 요렇게 회진으로 돌아온께 이. 그라믄 요쪽이 산동이란 말이여. 산동이 아까 말씀하신대로 여자 치마 형국이라. 내 정 안부모 정이 질 크거든요.

- (부모 정이?)
그러제. 내부모, 안부모 정이 큰께, 그 난리 변란이 일어났어도 우리 삼산 1구, 삼산 3구, 그 산이 노적봉이라고 그래 산도 봉산을 보거든. 그란디, 그 덕으로 6·25 때도 사람 한나 실패가 안됐어. 여 대덕 같은 데서는, 대덕 산정이 같은 데서는 그 옹암 같은 그 물바우 그라고, 사람을 실고 가서 독 싸서 물에 빠치고, 마을 사람들끼리. 그렇게 내란이, 내란이 그렇게 인제. 우리 요쪽으로 와서는 관산 읍내 와서는 사람 손 하나도 안 가졌제, 우리 관산 읍내에서는. 그라고 산지 알었는디, 요쪽으로 요리 내려가자믄 이 앞에 큰 산이 서산봉이 있거든? 서산봉이 있는디? 그 산 보고는 옛날에 우리가 보기를 그 산이 서산봉이라. 서산에 우뚝 선 봉이다 그랬는디, 실지 서산봉 밑에서는 그르케 대인이 없어, 안 나와. 그 다음에 고마, 이 아래 고마 연륙을 했다, 연륙이 됐고. 그라믄 신동 3구? 이 아래 신동 3구가 그렇게 산세가 좋다, 기가 멕힌 자리여. 신동 3구가. 거기서도 검사 판사 대인이 나오거든. 거그서도, 그란 것 보믄 대차. 크으 진짜여. 거그서 들어가서 봐 봐. 기가 멕힌 산이 좋아, 산세가. 그라믄
- (그 산 이름이 뭐여요? 그라믄)
서산봉 밑에 그 줄기제. 줄기가. 똑 떨어지제. 그란디, 그래놓고는 여그 고마, 이 아래 고마까지 돌오온 거여 잉? 고마는? 거그는 죽청, 죽청 고마 죽청 그라거든요? 죽청은 일제강점기 때 간척사업을 해 만든 자리고, 막은 자리고. 이 아래 죽교 1구 남창 거까지 옛날에 배가 들어왔드래여 배가. 큰 돛배가 들어와서, 우리 저 우리 선조 할아버지들 농사 짓어 논 놈 일본놈들이 강매로 전부 해서 실고 여그서 나갔어. 여, 포여 포.

- (남창이?)
남창이.
- (남창이라는 말 자체가 그 창고란 얘기죠? 창고가 있었다 이 말이죠?)
그란디, 그렇게 생겼고, 우리 관산 읍내에가 다 잘 살었을 거인디? 인제 여리 쭉 올론다, 산세를 보믄. 솔치재를 안 짤러야 써, 저 도로 내면서….
- (4차선 도로?)
그렇제. 거그를 동산도 왠만 하면 동산도 뚫은디, 경남 저쪽으로 가서 보씨요마는 댕개봐 봐, 요만한 산도 등을 안 짜르고 다 뚫없다? 우리 전남 호남 요쪽으로 보믄 존 산을 동송 짤라서 이 모양을 해 놨으니 호남에서 뭔 사람이 나오것는가? 잉? 생각해 봐. 그 모양이 돼 갖고 있고, 실지 우리 관산 읍내에가 6·25 때도 사람 한나 상 친 데가 아니여. 같은 값이먼 대덕 가서는 난리 몰래 죽엄을 했제. 내란인디 몰매죽엄을 했는디, 우리 관산읍은 그런 것이 없이 원활하니 튼튼하니 서로 아끼고 살어 나왔어. 오늘날까지 살어 나왔는디, 으째서 그른 것이 다, 그 저 고담이나 산세지리학이나 이런 것을 개발 한 것이 아니라, 실로 그리 경남 쪽으로 가서 보머는 묘지도 그렇게 예쁘게 잘 해놨다. 우리 전남 요쪽으로 옴스로는 뭔 빙인가 모른디, 뭔 시대를 맞었는가 모르것는디, 화장해서 화장터 맨들어 갖고 화장해서 그 돌이 오염이 더 된 것이여. 돌이란 거이 오래 가믄 물 묵은 돌이라 더 되고. 차라리 묘지를 써서 벌추 안하고 미게 불먼은 자연 그대로 더 나슨 거여.
- (그렇죠. 몇십 년 지나면….)
아, 더 나슨 것이여. 더 낫제. 벌추 안하고 이런 나무가 솟고 벌추 안 하고 산 형국 주령 봐서. 그렇게 된 것인디. 원 세상에, 경남 저쪽으로 가서 보믄, 그렇게 잘 해놨는디 경상북도 경상남도 그리 가믄 산세도 좋을 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그른 것으로 유제적으로 살고, 사는 백성들이 산디, 우리 호남 요쪽으로 들옴스로는 딱 칼로 괴기 꼴랑지 짤라불데끼 괴기가 뭐시 뭣이 것인가? 죽제. 그래 동댕이 짤러서 그 모양을 해놓고 있고, 여그 관산 저거 안 짤렀으믄. 저거 짤러 갖고 우리 관산읍 재미 못 봐. 산세 저거 짤라 갖고 재미 못봐. 재미 존 일 있을 수 없어. 인구를 각처가 다 같이 줄어들지 알제마는, 저걸 안 잘렀어야 쓸 자리고. 그래 갖고 저 아래, 우리가 건너다 보믄?
- (남송 쪽으로 이렇게 가면….)

남송? 뺑 돌아서? 남송은 용정 건너 남송으로 저리 올라가자믄, 참 남송이 존 자리여. 존 자리여, 자리가. 존 자리여. 잉, 존 자리라고. 산세가 그렇게도 잘 짜여 있어. 거그는 옛부터 주씨들이 주도를 많이 하고 살었는디.
- (어디 주씰까요?)
상주 주씨들이. 거그는 오씨, 오씨 주씨가 살고 있었는데, 의식을 안 개러.
- (뭘 안 개린다고요?)
의식주를 안 개린다고. 안 가레. 항시 부자여. 그 마을 그 저 터가. 큰 사람 한나는 나온지는 몰라도. 의식을 그렇게 풍족하게 묵고 산 자리여. 풍족하니 묵고 산 자리고. 그러고 저리 돌아서 올라가믄 쩌그 여 저저저, 용전 욱에 농안, 진짜 농안은 참말로 괜찮한, 산이 좋아.
- (우리가 봤을 때는 마악 산세도 험하고 막….)
아, 산세 험하고 그란 거 아니라, 실로 고리, 거가 자리가 존 자리여. 존 자리. 그랑께 옛 말이 북풍 대지보다 남한 원오지가 낫닥 했그등?
- (북풍?)
북풍 대지. 북풍 대지, 큰 자리다 그 말이여. 좋은 자리다 그란디, 남쪽의 따뜻한 자리만 못하다. 그란디, 자리는 좋은디, 바로 거가 북풍 대지여. 북풍을 막 받고 있거등? 그라고 산디 우리 관산읍이 어디 가도 따뜻 안 해. 안 빠져 다 자글자글 해. 다 야물어. 다 야물고 다 잘 해. 자글자글해. 어디 궁글려도 아무리 기스 안 나. 아무리 기스 안 나.

 

 

 

 

 

 

 

 

                                                   수동마을

 

 

 

 

 

 

                                               남송리 솔치재

 

 

 

 

 

 

 

 

 

 


자료번호 / 06_12_02_FOT_20160723_LIH_0002
제보자(구술자) / 이일희(남, 77세, 산서마을)